봉천동 중부 시장, 걸어서 5분이면 끝까지 갈 수 있는 아주 작은 시장이다. 이 조그만 시장은 빈 공간 하나 없이 가판대로 가득 차 있다. 시장 입구 횡단보도 앞에는 구두 수선 부스가 있다. 문은 반쯤 열려 있고 창문에는 노란색 스티커가 잔뜩 붙여져 있다. 부스 옆에는 파라솔이 펴져 있다. 그 아래로 상추, 고추, 부추, 마늘, 깻잎 등이 소쿠리 위에 얹어져 있다. 횡단보도를 기다리는 사람들, 시장으로 들어가는 사람들로 부스 앞은 분주하다. 신호등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시선이 종종 가판대에 닿는다. 2000원의 가격은 슬쩍 봤을 때 가성비가 괜찮다. 사람들은 이내 방향을 틀어 부스 앞, 파라솔로 향한다. “상추 2000원 어치 주세요” 꽤 자주 주문이 들어온다. 손님들은 잠시 햇빛을 피하러 파라솔로 들어온다. 파라솔이 만들어낸 그늘이 서늘하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 공간에 들어온다.
부스 건너편, 시장 입구에서 몇 발짝 들어가면 우산을 쓴 할머니가 앉아 계신다. 일흔쯤으로 보인다. 허리는 구부러져있고, 잔뜩 웅크러진 어깨는 마른 체격을 도드라져 보이게 한다. 계란형에 가까운 얼굴형, 정면을 응시하는 짙은 눈동자는 백태가 가득 차 있다. 돌출된 턱, 주름이 가득한 얼굴, 입술은 양 끝이 살짝 말려 올라가 있고 생기를 잃은 듯 푸르스름하다. 할머니의 옆엔 손수레가 놓여 있다. 그 위에 까만 우산이 고정되어 있다. 우산이 만들어 내는 이 작은 공간이 할머니만의 시장이다. 할머니는 마늘을 깐다. 옆으로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고개를 돌린다. 이내 손님이 아닌 것을 파악 한 후에는 다시 마늘을 바라본다. 마늘을 까느라 엄지손톱엔 섬유질이 가득하고, 이내 손으로 눈을 비비시더니 한동안 눈을 뜨지 않으신다. 눈을 감으면서도 사람들의 인기척이 들릴때마다 고개를 돌린다. 할머니는 항상 손님이 지나가면 눈치를 본다.
할머니는 차마 “마늘 사세요” 라는 말은 하지 못한다, 계속 다문 입에는 버짐이 잔뜩 피어있다. 우산이 햇빛은 가려주지만, 풍파는 막지 못한 듯 보인다. 얼굴엔 검버섯이 가득하고 파란색 줄무늬 티, 빨간 몸빼바지 밑단에는 하얀 실줄이 튀어나왔다. 이곳엔 사람들이 자주 오지 않는다. 아주 가끔 손님들이 지나가다 할머니를 쳐다보면 이내 고개를 돌린다. 한 평 남짓한 워낙 좁은 공간이라 누군가가 들어올 틈이 없어보인다. 할머니의 공간, 까만 우산이 만들어내는 그늘에는 할머니 혼자뿐이다. 할머니의 시장은 오늘 개업했지만 개업하지 못했다.
할머니 건너편에 가판대를 펼쳐놓고 생선을 판매하는 가게가 있다. “전복 사세요. 광어 한 마리 얼마” 종종 들리는 소리에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인다. 넒은 만큼 많은 사람들이 들어온다.
5분이면 끝에 다다르는 이 작은 시장에서도 공간은 나누어져 있다. 그 공간도 빈부격차가 있다. 가게가 있는 사람이 있고, 부스 앞 파라솔에서 앉아 있는 사람도 있다. 사람들이 많이 들어올 수 있다. 넓은 공간은 그들에게 그늘을 만들어 준다. 그에 반면 우산 하나 겨우 꽂을 수 있는 아주 작은 곳에 앉아서, 마늘을 까는 사람도 있다. 손님은 오지 않고, 그러면 주눅들어 더욱 더 쪼그라드는 곳, 좁은 공간 속에서 아무 말도 안 나오는 그런 곳. 좁은 공간은 공간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심리도 위축시킨다. 이 작은 시장에서 할머니의 자신감은 이미 팔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