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에 다녔을 무렵, 선생님들은 종종 일기 숙제를 내주셨다.
학년마다, 담임 선생님마다 내주는 빈도는 달랐지만 최소 1주일에 3번은 썼던 걸로 기억한다.
일기장을 아침에 제출하면, 종례 할 때쯤 일기장을 받을 수 있었다.
일기장에는 도장이 찍혀있을 때도 있었고 선생님의 코멘트가 적혀있을 때도 있었다.
참 잘했어요 도장을 못 받으면 집에 못 가게 하는 선생님도 계셨다.
그러면 남아서 어제 일기를 써야한다. 오늘.
나는 일기 쓰는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 어린 나이에도 매일 하루는 똑같았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에 가고, 끝나고 문방구에서 친구들이랑 놀다가, 피아노 학원을 가고 보습학원을 가고
매일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도대체 왜 일기를 써야 할지 몰랐다.
그리고 무슨 내용을 써야 할지 몰랐다.
선생님은 일기를 의무로 내주셨을 뿐, 왜 써야 하는지, 어떤 내용을 써야 하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도장이 잘 찍히거나, 칭찬을 받는 글 등은 대부분 엄청 긴 글들이었다.
하루 일과 중 의미 있는 걸 발견해서 그걸 굳이 말로 장황하게 쓰면 칭찬을 받는다.
나는 물론 칭찬받은 기억이 없다.
종례 하기 전, 선생님이 우리 앞에서 일기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나 참... 어이없는 일기장을 봤어요. 이 친구가 어제 집에 갈 때, 길거리에서 깡통을 발견했대, 그 깡통을 발로 치고 놀았대.. 그리고 집에 가서 쉬었다네"
내 일기장이었다. 어제저녁 책상에 앉아서 일기장을 펼쳐놓고 끄적이던 내용이었다.
선생님이 내 일기를 친구들에게 이야기한 건 이렇게 쓰면 안 되는 예시를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내가 썼다는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밝히진 않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그 이야기를 듣는 종례전의 나였다.
그 날 이후로 일기를 열심히 써야겠다는 다짐을 한 기억이 전혀 없다.
내 일기의 목표는 꾸중을 안 받는 정도였다.
조금 더 길게, 깡통 치는 것도 최대한 좋은 의미로 포장하는 것. 깡통의 알루미늄 성분 때문에 발차기를 하면 안돼요. 쓰레기를 버리면 안돼요라는 내 나름대로의 교훈을 억지로 꾸겨넣었다.
나의 초등학교 일기는 이랬다.
그 당시 담임선생님은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실까? 아마 지금은 쉰이 훌쩍 넘으셨을 것이다.
내 일기는 아마 기억도 못하실 것이다. 그분은 수많은 일기를 검사하셨을 것이고,
나랑 비슷한, 나보다도 더 어이없는 내용을 쓴 학생도 있었을 것이다.
그럴때마다 일기 내용을 지적하고는 했을까
난 그날이 기억난다. 깡통을 발로 찬 기억, 그 깡통이 빨간색이었던 기억, 학교 앞 책상에 서서 어이없는 일기장이라고 말하는 선생님의 얼굴이 기억난다. 십여년이 지났는데도 그날은 엊그제처럼 기억나 오늘도 그날의 일기를 쓸 수 있을 지경이다.
일기 쓰기 싫었던 기억을 떠올려 일기를 쓰는 오늘, 밖에 깡통이 있으면 한번 차 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