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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루루루 Jul 27. 2020

이런 일기는 치워버리렴.

내가 초등학교에 다녔을 무렵, 선생님들은 종종 일기 숙제를 내주셨다.

학년마다, 담임 선생님마다 내주는 빈도는 달랐지만 최소 1주일에 3번은 썼던 걸로 기억한다.

일기장을 아침에 제출하면, 종례 할 때쯤 일기장을 받을 수 있었다.

일기장에는 도장이 찍혀있을 때도 있었고 선생님의 코멘트가 적혀있을 때도 있었다.

참 잘했어요 도장을 못 받으면 집에 못 가게 하는 선생님도 계셨다.

그러면 남아서 어제 일기를 써야한다. 오늘.


나는 일기 쓰는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 어린 나이에도 매일 하루는 똑같았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에 가고, 끝나고 문방구에서 친구들이랑 놀다가, 피아노 학원을 가고 보습학원을 가고

매일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도대체 왜 일기를 써야 할지 몰랐다.

그리고 무슨 내용을 써야 할지 몰랐다.

선생님은 일기를 의무로 내주셨을 뿐, 왜 써야 하는지, 어떤 내용을 써야 하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도장이 잘 찍히거나, 칭찬을 받는 글 등은 대부분 엄청 긴 글들이었다.  

하루 일과 중 의미 있는 걸 발견해서 그걸 굳이 말로 장황하게 쓰면 칭찬을 받는다.

나는 물론 칭찬받은 기억이 없다. 


종례 하기 전, 선생님이 우리 앞에서 일기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나 참... 어이없는 일기장을 봤어요. 이 친구가 어제 집에 갈 때, 길거리에서 깡통을 발견했대, 그 깡통을 발로 치고 놀았대.. 그리고 집에 가서 쉬었다네"

내 일기장이었다. 어제저녁 책상에 앉아서 일기장을 펼쳐놓고 끄적이던 내용이었다.

선생님이 내 일기를 친구들에게 이야기한 건 이렇게 쓰면 안 되는 예시를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내가 썼다는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밝히진 않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그 이야기를 듣는 종례전의 나였다.


그 날 이후로 일기를 열심히 써야겠다는 다짐을 한 기억이 전혀 없다.

내 일기의 목표는 꾸중을 안 받는 정도였다.

조금 더 길게, 깡통 치는 것도 최대한 좋은 의미로 포장하는 것. 깡통의 알루미늄 성분 때문에 발차기를 하면 안돼요. 쓰레기를 버리면 안돼요라는 내 나름대로의 교훈을 억지로 꾸겨넣었다.


나의 초등학교 일기는 이랬다.


그 당시 담임선생님은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실까? 아마 지금은 쉰이 훌쩍 넘으셨을 것이다.

내 일기는 아마 기억도 못하실 것이다. 그분은 수많은 일기를 검사하셨을 것이고,

나랑 비슷한, 나보다도 더 어이없는 내용을 쓴 학생도 있었을 것이다.

그럴때마다 일기 내용을 지적하고는 했을까


난 그날이 기억난다. 깡통을 발로 찬 기억, 그 깡통이 빨간색이었던 기억, 학교 앞 책상에 서서 어이없는 일기장이라고 말하는 선생님의 얼굴이 기억난다. 십여년이 지났는데도 그날은 엊그제처럼 기억나 오늘도 그날의 일기를 쓸 수 있을 지경이다.

일기 쓰기 싫었던 기억을 떠올려 일기를 쓰는 오늘, 밖에 깡통이 있으면 한번 차 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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