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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루루루 Aug 22. 2020

연탄 지우개

어린 시절의 이야기

 아파트 입구, 파란 옷을 입은 아저씨들이 짐을 옮긴다. 하늘을 보니 <공간 아파트> 라는 이름이 써있었다. 트럭에 짐을 싣고 도착한 곳은 지붕이 많은 곳이었다. 파란색 지붕, 격자무늬 쇠문, 집은 다닥 붙어있었고, 벽지엔 낙서가 가득했다. 처음 이 집에 들어오고 좁은 바닥에 다 같이 누웠다. 공간이 부족했다. 그제야 이사한 실감이 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에 입학했다. 초등학교 1학년, 그 당시 학교 앞 문방구에는 메달뽑기라는 기계가 있었다. 100원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 꽝, 100, 200 ~~ 2500 숫자 중 하나가 선택된다. 어린이들의 도박장이었다. 입학식 날 엄마랑 같이 학교에 온 적이 있다. 엄마는 메달뽑기를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내게 말했다. “우리 아들은 저런 뽑기 하면 안 된다” 나는 엄마 말을 잘 듣는 학생이었다. 절대 안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학교는 멀었다. 매일 아침 집을 나와 언덕을 올라가면 그제야 도보가 나온다. 그 도보를 따라 내려가면 끝나는 지점에 논이 보인다. 논을 거쳐, 아파트 쪽문을 지나, 고물이 가득 쌓인 고물상을 지나야 학교에 도착한다.


 학교에 적응하고 친구가 생겼다. 친구는 종종 200원을 들고 학교에 왔다. 학교 앞 문방구에는 간식거리가 많았다. 아폴로, 꾀돌이, 차카니 등 우리는 종종 그 앞에서 군것질을 했다. 친구는 어느 순간부터 메달 뽑기를 했다. 종종 200원을 다 날리곤 했다. 그러면 우린 그냥 문방구 앞에서 다른 애들을 쳐다보기만 했다.

“유민아. 메달 뽑기 하지말자, 돈만 잃어버리잖아. 우리 엄마가 이거 하지말래”

“왜??” 유민이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어...” 나는 왜 하면 안 되는지 몰랐다.


나도 메달뽑기를 시작했다. 어느 순간 엄마의 말은 무뎌졌다. 메달뽑기를 하면 종종 200원으로 500원어치 과자를 먹을 수 있었다. 문방구 앞에는 과자뿐만 아니라 재밌는 것도 많았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지구용사 다간 피규어나, 세일러문 인형이 있었다. 그 옆에는 다양한 학용품이 있었다. 연탄모양 지우개, 20색 색종이, 축구 게임 필통 등. 거기서 난 연탄 지우개가 탐났다. 꼬챙이에 꽂힌 연탄이 멋있게 느껴졌다. 하지만 비쌌다. 내 돈으로 살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평소와 같이 친구와 문방구를 들렀다. 메달뽑기를 했다. 빨간 색 불빛은 화면 에서 세 바퀴 돌더니 25를 가리켰다. 깜짝 놀랐다. 메달 25개는 두 손으로 잡기 힘들었다. 순간 걱정이 되었다. 집에 가져가면 혼날 거 같았다. 나는 문방구 안쪽으로 들어갔다. 평소에 사고 싶었던 연탄지우개를 골랐다. 연탄지우개를 필통에 살포시 넣고 집으로 향했다. 아파트 쪽문을 지나, 논을 거쳐, 파란색 지붕집에 도착했다. 집엔 아무도 없었다. 거실에는 밥상 덮개가 놓인 상이 보였다. 덮개를 치우니 밥상과 편지 하나가 보였다.

“아들, 엄마 어디 갈 테니까 밥 먹고 있어”


이 짧은 문장 하나로 별의별 생각이 다들었다. ‘혹시 내가 연탄 지우개 산 걸 알고 계시나? ‘메달 뽑기 한 것도 알고 계시나? 항상 집에 계시는 분이 안계시니 걱정은 배가 됐다. 밖으로 나왔다. 뛰었다. 엉엉 울면서 연탄 지우개 산 걸 후회했다. 도보를 지나, 논을 지나, 아파트 쪽문을 지났다. 뛸 때마다 호주머니에 있는 메달이 흔들렸다.


하루종일 밖에서 뛰다 집에 들어왔다. 다행히 엄마가 돌아오셨다. 약속이 있으셨다고 했다. 눈이 빨개진 나를 보고 엄마는 왜그러냐고 물었다. 나는 그냥 엄마를 안았다.


연탄 지우개는 며칠 쓰다 잃어버렸다. 한동안 메달뽑기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초등학교 2학년이 되고, 다시 메달뽑기를 하곤 했다. 연탄지우개를 잃어버린 것처럼 그 날의 죄책감은 금세 잊혀졌다. 철없었던 어렸을 때, 제일 어렸던 초등학교 1학년때 나는 오히려 더 순수했고, 착했고, 엄마 말을 잘 듣는 학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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