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어려워요...
이번 주말엔 눈이 내렸다.
폭설 주의보라며 떠들어 대던 재난 문자 덕분에 올 해 첫 눈(?)은 기다림 속에 맞이했다.
새하얀 눈을 보니 어느새 겨울이 왔다는 것이 실감 났다.
무엇보다 한해가 거의 끝나간다는 생각이 찬 바람과 함께 와닿았다.
언제나 그러했듯 연례행사처럼 한 해를 되돌아보는데 참 아쉬운 마음이 든다.
2021년은 내게 '시작'의 해였다. 30대의 시작이었고, 직장 생활의 시작이었다.
친 누나는 결혼을 했고, 매형이라는 새로운 가족도 생긴 해였다.
무엇보다 나는 직장 생활을 두 번이나 다시 시작했다.
전공을 살려 취업을 했다. 첫 직장에서 4개월을 일하다가 다른 회사로 이직을 했다.
그리고 신입사원으로서 회사 업무를 시작했다.
두 번의 시작을 겪었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데 모르겠다.
왜 이렇게 요즘 시작이 어려운지 모르겠다. 시작하기 전에 자꾸 고민하고 재게 된다.
우물꾸물 나중으로 미루다가 결국 흐지부지 된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거 같은데 시작도 나이를 먹는게 아닐까?
내가 어떤 걸 잘하고, 어떤 걸 못하는지 몰랐던 시절에는 무엇이든 시작이 쉬웠다.
자기계발서를 읽은 날에는 공부 욕구가 샘솟아서 '새벽 2시까지 공부한다!'는 다짐을 하며 공부를 시작했고
몸짱인 사람들의 영상을 본 날에는 운동을 시작해야겠다며 바로 헬스장에 등록해서 운동을 시작하기도 했다.
한 번은 국토를 종주해보고 싶다며 해남에서 서울까지 걷기도 했다.
많은 시작을 했었고, 그 결과를 지금의 나는 안다.
시작은 많이 했지만, 제대로 이룬 건 없다는 걸
새벽 2시까지 공부한다던 내 다짐은 채 3일이 지속되기 어려웠고, 헬스장 등록은 매번 잘 해왔지만, 내 몸이 크게 변하진 않았다. 그리고 이젠 갑작스레 국토 종주할 시간도, 체력도 없어졌다.
시작이 '완결'로 이루어진 적은 많이 없었던 것 같다. 적어도 내 기억엔 그렇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무언가 시작을 하기 전에 그 결말이 뻔히 보인다.
나를 너무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일 새벽 5시에 일어나는 미라클 모닝을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이게 3일을 넘기기 어려울 것을 안다.
브런치에 글을 매일 쓰겠다고 다짐하며 하더라도, 그게 지속되지 않을 것을 안다.
매일 운동을 하겠다고 다짐을 해도 그게 쉽지 않을것을 안다.
나이를 먹고, 점점 나에 대해 알아갈 수록, 그래서 자기 객관화가 잘 될 수록
시작이 꺼려진다.
내년에는 조금 바보가 되볼까 한다.
시작을 할 때면 더욱 더 바보가 되보려 한다.
뭐가 어땠고, 예전엔 어떘고, 다 까먹으려 한다. 그렇다면 시작이 조금 쉬워지지 않을까
바보처럼, 어린 아이처럼, 아무것도 몰랐던 과거의 나처럼 '시작'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