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잘 버텨내는 것도 훌륭하다.
친구가 회사 생활로 힘들어했다. 그쪽 팀장은 정말 심각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마침 회사에 같은 직무의 자리가 났고 직원 추천 제도를 이용해서 친구를 추천했다. 친구는 이미 여러 사외 모임에서 회사 사람들을 알고 있었고 일 잘한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던 해당 팀 상무도 친구의 입사를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그렇게 6여 년이 지났다. 같은 회사지만 그렇게 자주 만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종종 안부만 묻곤 했다. 사내 메신저로 서로의 생존을 확인하거나 모르는 걸 알려주는 정도였다. 친구는 행여 내가 퇴사를 하지 않을까 종종 물어왔고 나는 별로 그럴 생각이 없었기에 별 일 아니라는 듯 지냈다.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의 분위기는 글로도 충분히 느껴진다. 괜히 떠보는 말에서 곧 무슨 일이 있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친구는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하게 되었다. 괜히 미안했는지 말이 조심스러웠지만 나는 잘했다고 축하해 줬다. 나 때문에 이 회사에 와서 고생만 한 게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했었다.
같은 회사 같은 고민을 품고 사는 삶들이었기에 서로의 기분을 충분히 이해했다. 나의 거취를 묻는 말에 아직은 쓰나미가 내 발끝까지는 닿지 않았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어딜 가나 세상살이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고 이 업계는 어딜 가나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물론 바로 프리랜서를 해도 된다. 하지만 그것 역시 쉬운 길은 아니다. 나는 완전한 은퇴를 꿈꾸고 있으니까. 5년은 더 필요하다.
지금 회사 분위기가 엉망이라도 여전히 월급이 나오고 있고 할 일도 있다. 적절히 조율하면 내 시간을 만들 수도 있다. 마음 같아서는 올인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인생은 도박하듯 하는 게 아니다. 성공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니까. 조금은 보수적이어도 괜찮다.
아이들이 자라 돈이 들어갈 곳은 점점 늘어 간다. 커리어는 정점을 찍고 넘어서는 것 같다. 노하우나 지식의 총량의 문제가 아니라 회사에서의 영향력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마음이 마구 흔들리는 마흔이라지만 체력도 정신력도 살짝 버거울 때가 있다. 동기부여도 쉽지 않다.
마음에 불안이 덮치면 그것을 덜어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함께 일하던 이들이 떠난 자리엔 마음 편이 얘기 나눌 사람도 많지 않다. 퇴사한 부장님들께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거나 더 일찍 다른 길을 찾아간 선배들에게 연락하여 수다를 떨어 본다. 불안감은 풀어지는 것이 아니라 잠시 벗어나는 것이다. 한참을 쏟아내면 다시 견딜 수 있을 만큼 에너지가 찬다.
오랜만에 오랜 친구와도 연락을 했다. 그리도 더 잘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친구의 하소연 속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시원하게 쏟아낸 친구 역시 마지막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너도 나도 좋은 일 하나쯤은 있어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도 남이 나보다 잘 사는 거 보면 기분이 좋지 않고 그런가 봐.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렇게 아내에게 푸념해 본다. 아내는 그저 "당신도 충분히 잘 살고 있어요"라며 위로한다. 맥락도 없이 던진 남편의 말에 아내는 최선을 다해 힘이 되는 말을 전한다.
그래, 그대야 할 때는 기대야지. 너무 나무처럼 뻣뻣하게 서서 남의 비밀 언덕이 될 수만은 없겠지. 괜히 마음이 시큰하다. 불안은 언제나 함께다. 방 한 칸 내어 잘 모셔두고 오늘을 제대로 살아내야지(자물쇠로 잠가 버릴까). 사람들은 저마다 노력하고 있고 자신들만의 속도로 살아내고 있겠지.
나들 열심히 살았을 테니까. 좋은 일 하나쯤은 있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