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든 어른이의 작은 깨달음
아침 출근길,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초점을 잃은 직장인들이 가득한 지옥철에 겨우 겨우 몸을 구겨 넣고 생각했다.
"아 진짜 순간이동 하면 좋겠다. 그럼 주말마다 유럽 여행도 갈 수 있을 텐데!!"
문득 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려 순간이동이라는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고작 편하게 출퇴근할 생각에 설레다니, 너무나도 K-직장인스러운 상상이다.
어렸을 때 나는 종종 내가 만화 속 주인공처럼 특별한 존재가 아닐까 라는 기대를 했다. 난데없이 집에 부엉이가 찾아와 마법학교를 가야 된다고 하거나, 어느 날 숨겨진 능력을 발견해서 위기에 빠진 세상을 구하는 그런 극적인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그렇게 자기 전 침대에 누워 창문으로 누군가 찾아와서 임무를 맡기는 상상을 하며 잠들던 어린이. 그 아이는 이제 창밖을 보며 출근길에 비가 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찌든 어른이가 되었다.
그 많던 꿈과 상상의 날개는 다 어디로 갔을까. 요즘의 나는 내일 점심은 뭐 먹지? 주말에는 어떻게 알차게 쉬지? 같은 소소한 생각으로 하루를 보낸다. 어릴 때 꿈꾸던 나와는 사뭇 다른, 특별하지 않은 내가 씁쓸한 때도 있었다.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 사람이 아닌데!'라는 패배자의 단골 멘트를 떠올리며. 솔직히 씁쓸한 기분이 전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별 탈 없이 무사히 보낸 평범한 하루에 감사하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기도 하다.
돌아보면 나는 '특별하다'는 반짝이는 단어에만 매달려서 정작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던 것 같다.
*특별하다: 보통과 구별되게 다르다.
결국 특별하다는 건 '보통'을 전제로 한 상대적 개념이다. 은연중에 무언가가 우위에 있다고 비교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모두가 특별할 수는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반짝반짝 빛나는 '특별함'이 아니라 '유일함'이다. 우리는 이미 세상에 단 하나뿐이라는 사실, 그것만으로 충분히 의미 있다.
좋아하는 음식을 챙겨 먹는 아침, 가족과 함께 걷는 산책길, 잊고 있던 명곡을 들으며 끄적이는 일기.. 오롯이 내가 선택하고 살아가는 나만의 삶이다. 비록 9와 3/4 승강장이 아니라 서울 한복판일지라도,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하나뿐이라는 건 오히려 제법 멋진 일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