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전화가 오면 심장이 떨린다.
언제부턴가 엄마가 더 불편해졌다.
"너는 시어머니랑 왜 그렇게 되어서 엄마를 부끄럽게 만들어 이 쳐 죽일 년아!"
이번엔 쳐 죽일 년이 되었다.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는 분노의 응어리가 가득했다.
23년 12월, 둘째 출산, 첫째와 나의 감기, 그리고 가정보육으로 모든 것이 버거웠던 때에 시어머니와 나는 크게 틀어졌다. 지금 생각해도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였고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나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더한 행동도 했을 것이다.
어긋나 버린 이 상황에 대해 남편의 이해 따위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등 비빌 언덕을 찾고 싶었다. 엄마는 내 편이 되어줄 줄 알았다.
하지만 엄마는 언덕이 아니라 절벽이었다. 나를 보기만 하면 사과하라고, 납작 엎드려서 죄송하다고 하라고 앵무새처럼 이야기했다. 반복되는 이야기로 나를 몰아세웠다.
결국 나는 시어머니에게 영혼 없는 사과를 했다. 그러나 진심 없는 사과는 진정한 관계의 회복을 이뤄낼 수 없었다. 얼마 뒤 시가에 방문했을 땐 시어머니와 같이 있기 불편해 아이와 남편을 두고 친구네로 도망쳤다.
엄마는 이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와 시어머니와의 관계, 본인에게 전화하지 않는 사위, 그 모든 것이 불만이었다. 엄마는 '아쉽다'는 본인의 마음을 어지간히 전달하고 싶었나 보다. 피곤에 절어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남편에게 엄마는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냈다.
너무 민망했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연락하는 엄마도,
나에게 전화 왔다고 문자 왔다고 따박따박 이야기하며 마치 불편하니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느낌을 주는 남편도.
엄마에게 황급히 연락했다.
내가 더 연락을 자주 하고 아이들 사진도 많이 보낼 테니 대리효도는 바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했지만 엄마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렇게 난 쳐 죽일 년이 되었다.
전화를 끊고 엄마의 연락처를 차단했다.
그리고 며칠 뒤 분노가 침전되고 차단을 풀었다.
그 후 이상한 일이 생겼다.
휴대폰에 엄마 알림이 뜨면 심장이 쿵쿵댄다.
손에 땀이 나고 마음속 깊은 곳부터 알 수 없는 짜증과 불안이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