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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북 | 도시와 산의 경계에서, 성북을 걷는 마음

성북 <기차순대국><길상사>





서울에서 내가 특별히 사랑하는 동네를 꼽으라면, 내가 살고 있는 마포가 으뜸이지만 성북구가 늘 그 뒤를 잇는다. 내가 선호하는 ‘동네’의 기준은 분명하다. 도시이면서도 너무 도시답지 않은 곳, 콘크리트의 결 사이로 자연의 결이 분명히 살아 있는 곳. 그 바로미터로 따지자면 성북구는 언제나 마음에 쏙 드는 곳이다. 성북구를 걸을 때마다 나는 도시와 산이 맞닿는 경계에서 잠시 방향을 잃은 여행자가 된 듯한 기분을 느낀다. 북한산과 북악산의 능선은 서쪽과 북쪽을 깊게 휘감고, 그 산자락에서 흘러내린 구릉들은 오래된 파도처럼 잔잔히 도시 곳곳에 자리한다. 고도가 높아 걸음이 가쁜 순간도 있지만, 성북구에서는 이상하게도 불평이 나오지 않는다.


낮고 완만한 시내로 내려오면 정릉천과 성북천이 실처럼 은근하게 흐르며 도시의 중앙을 갈라놓는다. 성북천을 곁에 둔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점심 식당으로 향하던 길, 골짜기를 따라 계단처럼 쌓여 있는 집들과 서고동저의 지형을 타고 흐르는 길의 기울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걷다 보면, 이 동네가 왜 늘 내 마음을 사로잡는지 자연스레 알게 된다. 높은 곳에서는 근린공원이 숲을 이루고, 낮은 곳에서는 오래된 주택과 새로 지은 아파트가 나란히 숨 쉬며 묘한 조화를 만들어낸다.


정릉천을 따라 시장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정릉의 오랜 주민인 이지혜가 ‘꼭 같이 가서 술 한 잔 하자’고 노래처럼 말하던 <기차순대국>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나 혼자 먼저 도착해버렸다. 출입문이 양쪽으로 난 오래된 한옥 구조의 가게는 반세기 넘게 같은 자리에서 국물을 지켜온 노포라 했다. 11시를 갓 넘긴 시간이었지만, 이미 등산을 마친 이들이 여기저기서 술잔을 부딪치고 있었다. 좁은 시장 통로에 있던 작은 가게가 ‘기찻집’이라 불리며 입소문을 탔고, 그 별명이 그대로 상호가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듣고 나니, 이 집의 역사가 국물만큼이나 깊게 느껴졌다. 돼지고기와 두부, 부추를 소창에 채워 만든 하얀 순대는 새우젓과 함께 입안에서 부서지며 소리 없는 풍경처럼 퍼져나갔고, 12시간 넘게 고아낸 맑은 국물은 들깨나 다대기를 넣어도 좋다지만, 나는 아무것도 더하지 않은 담백한 맛으로 밀고 나갔다. 특 사이즈 한 그릇이 세 사람 몫이라는 말이 괜한 소문이 아님을 단번에 깨달았다. 그릇을 비워가며 ‘술꾼이 추천하는 순댓국집은 틀리지 않는다’는 문장을 마음속에서 조용히 되새겼다.


그렇게 배를 든든히 채운 뒤 한성대입구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언덕을 오르니, 도시의 소음이 어느 지점에서 갑자기 뚝 끊기고 숲 냄새가 먼저 나를 맞았다. 매년 어느 계절이라도 한 번은 찾아오게 되는 길상사는, 올 때는 버스로 쉽게 올라오지만 내려갈 때만큼은 반드시 걸어서 주변의 숨결을 음미하게 만드는 곳이다. 특히 가을의 길상사는 유독 아름답다. 극락전 앞 황금빛 느티나무는 오래된 단청과 어우러져 마치 작은 불씨처럼 반짝이고, 계곡을 따라 선 나무들은 가을이 깊어질수록 붉은 색을 한 겹씩 더해가며 절이 품어온 오래된 이야기를 색으로 풀어놓는다. 대원각의 시절을 뒤로하고, 자야와 법정 스님의 사연이 기와와 돌계단에 고요히 배어 있어, 나는 이곳을 걷는 동안 현실과 문학의 얇은 막을 오가는 듯한 감흥에 잠기곤 한다. 아마 이런 이야기들과, 도심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깊은 정적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에 길상사를 찾는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것일 것이다.


전각들은 옛 건물과 새 건물이 자연스레 뒤섞여 숲과 계곡에 파묻히듯 서 있고, 발걸음을 천천히 옮기다 보면 오래된 인연과 인생의 잔향을 한 겹씩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나는 내려갈 때면 늘 걷는다. 성북동의 골목길, 성곽길, 그리고 바람에 일렁이는 여러나라의 국기와 낙엽 소리를 따라 내려오다 보면, 왜 길상사가 도심 한가운데서도 사람들의 작은 안식처가 되었는지, 왜 매년 가을이면 이 절이 유난히 또렷하게 마음속에 새겨지는지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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