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윰 Jul 25. 2021

백만엔걸 스즈코

2021, 제주




제주에 두 달을 살러 갈 거라는 나의 말에, 사촌 언니는 대뜸 <백만엔걸 스즈코>라는 일본 영화를 꼭 보라고 했다. 자꾸 어딘가로 떠나려는 게 영화 속의 스즈코와 내가 똑 닮았다는 감상을 덧붙이면서.

<백만엔걸 스즈코>는 백만 엔을 들고 새로운 곳에 가서 아르바이트하며 생활하다가 다시 백만 엔이 모이면 또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는 스즈코의 일상을 담은 영화다. 그녀가 집을 떠나 다른 도시에 가게 된 건 일종의 현실 도피였다. 하루아침에 억울하게 전과자가 된 스즈코가 동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자신을 모르는 사람들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내가 졸업을 유예하고 제주행을 결심한 이유도 스즈코와 다른 듯 비슷하다. 졸업과 동시에 취업 준비를 해야 하는데, 아직 마음의 준비를 못 했달까. 그렇다고 집에서 놀고먹기엔 나 자신도 그리고 지켜보는 가족들도 답답해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디론가 떠나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러던 중 예전부터 꿈꿔왔던 게스트하우스 스태프가 떠오른 거다.

영화 말미에 스즈코는 동생 타쿠야의 편지에 오랜만에 답장한다. 이다음으로 지내게 될 곳에서는 자신의 힘으로 떳떳하게 살아보겠다면서 말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도망치지 않겠다는 동생의 결심에, 많은 사람으로부터 도망쳐 온 스즈코가 용기를 얻게 된 것이다. 나에게는 바로 앞의 글 ‘대화가 필요해’에 그려진 그날의 대화가 타쿠야의 편지 같은 존재다. 안될 거라고 속단하며 도망쳐왔던 지난날들을 뒤로하고, 어떻게 되든 한번 부딪혀보자는 대담함을 가진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대화가 필요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