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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Jul 28. 2021

처음이자 마지막 일탈

2015, 오사카




이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심화반을 담당하셨던 지금까지도 정말 친애하는 D 선생님께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고등학교의 마지막 여름 방학을 앞두고, 친구 S가 나에게 뿌리치지 못할 제안을 하나 했다. 비용을 모두 대줄 테니 이번 여름 방학에 친구의 어머님과 함께 오사카에 가자는 것. 내한 공연을 포기하고 어머님의 여행 가이드가 되어주는 조건으로 친구 한 명을 데리고 갈 수 있게 해 달라는 친구의 간 큰 부탁을 어머님께서 흔쾌히 받아들이셨다고 했다. 아침 7시에 등교해서 한 시간 동안 아침 자습을 하고, 정규 수업을 하고 나서도 밤 10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해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던 열아홉의 숙명. 쳇바퀴 같은 삶을 살고도 방학마저 심화반에 출석 도장을 찍어야 할 신세였던 나에게 그 제안은 산소호흡기 같았다. 하지만 선생님의 허락은 고사하고, 가족들도 이 이야기를 들으면 ‘고3이 제정신이냐’며 반대할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엄마는 오히려 ‘외가댁에 가족 모임이 있어 혜윰이가 며칠간 학교에 나가지 못할 것 같다’는 알리바이를 만들어 선생님께 대신 연락까지 해주셨다. 그 며칠을 더 공부한다고 해서 갈 수 있는 대학이 바뀌지는 않을 거라는 엄마의 현명한(?) 판단 덕분에 피폐했던 수험 생활에 숨통이 트이는 순간이었다.

첫날은 친구가 SNS에 나를 태그해서 올린 사진 때문에 혹시나 선생님께 들킬까 조마조마하면서도, 둘째 날부터는 잠시 고3임을 잊고 신나게 놀았다. 대낮에 땀을 뻘뻘 흘리며 교토의 산넨자카를 걸어 올라가고, 저녁에는 눈앞에서 만들어주는 초밥을 배불리 먹고 친구와 오래도록 수다를 떨었다. 오히려 그게 일종의 리프레쉬가 되어, 수능 전날까지 주저앉지 않고 계속 달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만큼 놀았으니, 더 열심히 공부해야지!’라며 새롭게 마음을 다잡으면서 말이다. 아무튼, 이게 강물처럼 잔잔했던 내 청소년기의 처음이자 마지막 일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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