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드의숲 Feb 15. 2019

맘충 소변 사건

우리가 살아가면서 잊지말아야 할 감정 : 부끄러움

 출근길 서울 지하철역을 빠져나오니 눈이 부실 정도로 온 세상이 투명했다. 젖은 아스팔트 바닥 위로 솟아난 건물들. 실에 매달린 바늘처럼 가느다란 빗방울들이 바닥에 솟은 건물들에 폭격을 가하듯 떨어졌다. 어느새 어스름이 물러나고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남대문시장 끝자락을 따라 시작된 남산은 희뿌연 안개를 내뿜으며 남산타워를 흰 테로 둘렀고 도로 사이사이마저 하얀 입김으로 채워 넣었다. 힘차게 달리던 버스도 비탈길에 다다라서 남산의 스산한 안개와 마주치고는 두 눈을 깜박거리며 느릿느릿 바퀴를 굴려 겨우겨우 앞으로 전진했다. 


 호텔에 도착해 잘 다려진 유니폼을 멋스럽게 차려입고 고객 맞을 준비를 시작했다. 우선 당일 입실 예정인 VIP 명단 리스트를 살펴봤다. 별다른 특이사항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이어 VIP 고객들을 위해 정성스럽게 준비된 과일과 초콜릿이 객실에 들어갈 채비를 갖추었는지 룸서비스팀에 전화를 걸어 확인했다. 모든 준비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옷매무새를 다듬고 오피스에서 나와 로비를 한 바퀴 돌며 고객들의 표정을 관찰했다. 모두가 평온해 보였다. 이어 조식 뷔페식당으로 향했다. 10시가 넘어섰는데도 조식당은 주말을 맞은 내외국인들로 붐비고 있었다. 식당을 둘러보고 나니 스마트폰 화면의 시계는 어느새 11시를 가리켰다. 로비로 눈을 돌리니 고객들은 이미 체크아웃을 위해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다.


 그때였다.


"아니 그럼 어떡하라고오!!!"


 어딘가에서 여자의 앙칼진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굉음에 가까웠던 그 목소리는 이윽고 로비의 벽과 천장을 타고 호텔 전체로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져갔다. 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분수대를 향해 한 걸음에 달려갔다. 또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게 분명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분수대에서 솟구쳐 오른 물줄기가 바닥을 치며 박살이 나고 있었고 그 깨지는 물소리와 함께 한 여성의 공격적인 말투가 귓속을 침투해 들어왔다. 그곳엔 이미 소규모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으며 그 한가운데에는 호텔 보안팀 팀원과 고객으로 보이는 한 모자(母子)가 대치하고 있었다. 그 여자는 팔을 뻗어 두 번째 손가락을 뽑더니 보안팀원의 얼굴을 향해 찌를 듯이 삿대질을 해대며 소리를 꽥꽥 질러댔다.


"그 먼 곳을 애보고 어떻게 가라는 거예요!! 급해 죽겠는 애한테! 지금 장난해요?"


그녀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윽박을 지르며 얘기했기 때문에 보안팀원은 다소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할 수밖에 없어 보였다. 듣고 있자니 은연중에 그들 사이에 갑과 을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래도... 여기서 이러시면... 곤란하세요!"

"그럼 가까운 곳에 화장실을 만들던가!"


그 여자는 냉소를 터트리며 조롱 섞인 목소리로 보안팀원의 말에 곧바로 응수했다. 다섯 살가량으로 보이는 남자아이도 엄마와 협공이라도 하듯 두 다리를 앞뒤로 벌리고 빤히 보안팀원을 노려보았다. 두 모자는 물러날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멀찌감치 서있던 한 중년 남성이 그들에게 다가와 조용히 속삭였다. 


"이제 그만하고 가자. 사람들 있는데!" 


 그는 두 모자에게 손짓하며 갈 길을 재촉했다.

무슨 일인지 사건의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나는 그 고객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안녕하세요. 이 호텔 매니저입니다. 혹시 무슨 일이신지 여쭤 봐도 될까요?"

"이 호텔 매니저요? 무슨 화장실이 이렇게 멀어요? 고객 편의 시설이 전혀 편리하지가 않잖아요. 그리고 직원 교육 좀 제대로 시키세요. 손님한테 이따위로 얘기해도 되는 겁니까?" 


 그러자 곁에 있던 중년 남성은 또다시 두 모자를 손으로 끌며 그만 가자고 다그쳤다. 아마도 남편이자 아이 아버지인 것 같았다. 그제 서야 그녀와 아이는 남편의 손에 이끌리듯 출입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그렇게 가족으로 보이던 그 셋은 유유히 발걸음을 재촉하며 사라졌다. 고개를 돌리니 옆에 서 있던 보안팀원은 신트림이라도 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탄식만을 쏟아내고 있었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가고 나는 보안팀원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의 얘기에 난 얼굴에 헛웃음이 번졌다. 보안팀원이 로비에서 순찰을 돌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남자아이가 분수대를 향해 바지를 내리더니 오줌을 싸더라는 것이다. 마치 자신이 벨기에 브뤼셀의 오줌싸개 소년 동상이 된 것처럼. 그는 냉큼 달려가 그 아이를 제지하려고 했다. 그러자 그 여자가 어디선가 나타나 갑자기 버럭 하며 화를 냈다는 것이다. 화장실이 멀어서 여기다 싸게 했는데 뭐가 잘못이냐고 오히려 그녀가 큰소리를 치고 역정을 냈다고 했다. 기가 차서 한 동안 말이 나오지 않았다. 황당함을 넘어 기괴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목격자(?)들 몇몇이 지나가다 혀를 끌끌 차며 얘기하는 소리가 귓전을 채웠다.


"완전 또라이네!" 쯧쯧

"그러게. 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나 몰라. 분수대에 오줌을 누게 내버려두는 그 어미나 싸려는 그 새끼나..."

"저런 사람들을 보고 맘충이라 하지?"

"응 맞아! 얼마전에도 실시간 검색어 1위로 태권도 맘충 갑질사건이 올라왔었잖아!"

"응 나도 봤어 그 동영상! 그 여자도 진짜 어이없던데 참나! 그 맘충 갑질을 여기서 보네!"


 단순히 엄마로서 자식을 보호하려는 모성본능이 보안팀원에게 날 선 공격을 가했던 것뿐일까? 나는 분수대 주변을 서성이며 그 모자를 떠올려봤다. 입가에 쓴 맛이 맴돌았다. 


 안타까웠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녀는 사람들에게 맘충으로 낙인찍히고 있었다. 그녀가 지금껏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그녀라는 사람은 그들에게 '맘충'으로 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그들은 이 사건에만 돋보기를 들이대어 그녀라는 사람을 쉽게 판단하고 비난할 뿐이다. 혹여 이렇게 말하는 내게 "그 사람들이 내 앞에서 욕을 한 것도 아니고 어차피 피차 안 볼 사이인데 그게 뭐 대수인가요?"라고 그녀가 항변한다면 사실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그런데 표면적으로는 괜찮아 보이는 그녀의 일상이 내겐 위태로워 보이는 이유는 뭘까. 생각해보건대 이러한 도덕적 태만은 작은 암세포처럼 자라나 언제고 부지불식간에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삼켜버릴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뿐인가. 이러한 그녀의 행동은 결국 그 아이의 미래 또한 위협할 것이 자명하다. 가끔 뉴스나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맘충 보도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어쩌면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감정이 바로 부끄러움이 아닐까... 


 그녀의 지난 시절에도 그런 날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생각과 그녀의 신념과 그녀의 행동이 수직으로 곧게 선 나무처럼 올곧았던 날들이.

 

 나는 믿고 있다. 

그녀 어딘가에 여전히 품고 있을 것이라고. 오랜 세월 모진 세파에 끊임없이 상처 받아가며 견디고 버티다 자신도 모르게 닳고 달아 이젠 눈에서 지워져 버린 타인에 대한 마음씀을 그녀 어딘가에 여전히 품고 있을 것이라고.


 나는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장롱 깊숙이 숨겨 둔 그 양심을 그녀가 어서 다시 꺼내 들었으면 좋겠다고. 그녀뿐이겠는가.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조각나고 흩어져 있는 서로를 향한 사랑을 한데 모아 다시 우리의 가슴에 복원시켰으면. 


분수대를 빠져나와 로비로 들어서니 호텔 창으로 햇살이 하염없이 쏟아져 내렸다. 햇살 너머로 초록의 무성함들이 남산 여기저기를 수놓으며 사람들의 가슴을 풀빛으로 물들였다. 그래도 여전히 세상은 그 자리에서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호캉스 가족의 두 얼굴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