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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드의숲 Feb 25. 2019

모 기업 회장의 호텔 이용법

내로남불

 살다 보면 몸보다 마음이 더 분주한 날이 있다. 그 날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출근해서 VIP 객실 준비로 숨 한번 돌릴 틈이 없었다. 그날따라 유난히도 신경 써야 할 VIP들이 많았다. 고객들이 밀려오는 체크아웃 시간 전까지는 반드시 VIP 객실 배정을 끝내야 했다. 


 먼저 VIP 등급 순서에 따라 차등을 두고 제일 높은 등급에 속해있는 고객의 객실부터 좋은 타입 순으로 골라서 채워 넣었다. 지난 투숙 때 클레임을 했던 VIP 고객이 있었는지의 여부와 클레임의 이유 즉 어떤 문제로 고객이 불편을 겪었는지도 정확히 파악해야 했다. 같은 문제로 고객이 또다시 불편을 겪는 참사는 생각만으로도 머리를 쭈볐 세우게 했다. 그 끔찍한 상황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나는 체크인 예정인 VIP들의 특이사항들을 꼼꼼히 살펴 나갔다.


 당일 VIP 리스트를 보니 한 손님이 지난 투숙 때 소음으로 인한 컴플레인(complain)을 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옆방에 투숙하고 있던 중국인들이 밤새 시끄럽게 떠드는 바람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만실 상황이라 바꿔줄 객실이 여의치 않아 다음 투숙 때는 좋은 객실을 배정해 달라는 메모도 덧붙여 있었다.  이 기록을 참고하여 이번 투숙 때는 그 손님이 묶을 객실의 옆방을 비우거나 조용한 코너 방향으로 잘 배정해 주는 게 핵심이다.


 그렇게 VIP 리스트와 컴퓨터 모니터를 번갈아가며 정신없이 보고 있는데 한 통의 전화가 이 부산함을 뚫고 오피스로 걸려왔다. 


"아 바쁜데 아침부터 누구야!!" 


내 입에선 볼멘소리가 흘러나왔다. 

전화기를 들어 숨이 차오르는 척 거친 목소리를 내며 바쁘다는 내색을 했다. 


"흐억 안녕하십니까 프런트 데스크입니다!" 

"얘 너 누구니?"


순간 나는 움찔했다. 이어 내 안면의 모든 근육들이 얼굴을 찌그러뜨리고 있었다.  


"하악 하필 지금... 내선번호는 또 누가 알려준 거야 진짜"


나는 송화기를 막고 한 숨은 푹푹 쉬며 말했다. 전화선을 타고 흐르는 목소리가 그가 아니길 바랐지만 내 귓전엔 이미 그가 내려앉아있었다. 그는 호텔에서 악명 높은 모 기업 회장이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대뜸 하는 소리가 


“얘 너 누구니? 당직 지배인 바꿔봐라!” 

꼬장꼬장한 그 목소리는 놀부의 고약한 심보를 떠올리게 했다.

“아 지금 미팅 중입니다! 끝나면 전화하라고 할까요?” 


이런 내 말이 뭐가 그리 기분이 나쁜지 그는 소리를 버럭하고 질러댔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미팅이고 나발이고 나 지금 가니까 객실 준비해놓으라고 해! 


순간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발끈했다. 


“이런 어이없는 놈을 봤나. 전화해서 밑도 끝도 없이 누군지 아냐고 물어보면 내가 어떻게 알아 이 썩을 놈아! 여기가 너희 집이냐. 안 그래도 정신없어 죽겠는데 다짜고짜 전화해서 소리 지르고 반말이야!” 


 이런 나의 일격에 그는 어찌나 열에 받쳤는지 입에 게거품을 물며 쿵하고 쓰러지는 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그런 그를 보고 난 이루 말할 수 없는 쾌감을 느꼈다. 


 이렇게 이야기가 진행되었다고 믿고 싶고 '그래서 난 행복하게 살았다'라고 글을 쓰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극한직업이 따로 없었다. 내 입은 어느새 자동응답 멘트처럼 그를 응대하기 시작했다.


“네 정 회장님 안녕하세요! 전망 좋은 높은 층에 엘리베이터와 적당히 가까운 곳으로 객실 키 준비해 놓겠습...!”


뚝! 


"아 진짜 확 그냥! 말하는데 끊어!"


 그를 응대할 때마다 분노와 혐오감이 느껴졌다. 생김새도 그의 마음보를 닮았다. 곳곳마다 곰보자국이 남아있는 큰 바위 얼굴엔 큼지막한 코가 중앙을 차지하고 있었고 숱이 짙은 눈썹 밑에는 단추 구멍처럼 옆으로 길게 찢어진 눈이 자리했다. 그 아래 두툼하게 부푼 입술은 언제 봐도 투박하고 상스럽게만 보였다. 큰 바위 얼굴 제일 윗 쪽에 자리 잡은 개미도 지나다니기 힘들어 보이는 비좁은 이마는 탐욕스러운 장사꾼 같아 뵈기도 했다. 


 반면 그는 그런 자신의 거북스러운 생김새를 잘 알기라도 하듯 늘 번지르르한 차림새를 하고는 호텔 로비에 나타났다. 강남의 값비싼 에스테틱에서 관리를 받는 모양인지 칠십의 나이에도 매번 얼굴에 윤기가 좌르르 흘러내렸다. 반 이상 벗겨졌지만 한쪽으로 멋스럽게 빗어 넘긴 머리와 칼 주름이 잡힌 양복바지, 하얀 셔츠는 그의 사회적 지위를 대변해 주기에는 충분했다. 다만 사람의 인격과 품성은 겉모습이나 지위 따위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언제나 확인 또 재확인 시켜주었다.  


 얼마 후 모습을 드러낸 그는 그날도 어김없이 때깔 좋은 자태를 뽐내며 로비로 걸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회장님! 여기 객실 키 있습니다!"


"응 그래! 근데 오늘 당직 지배인 누구야 대체? 어째 코빼기도 안 비쳐!"


"아 미팅은 조금 전에 끝났는데 지금 어떤 손님이 컴플레인한다고 난리를 쳐서 객실에 올라갔습니다."


"어떤 꼰대가 또 갑질이야 요즘 세상에!"


"아 그러게 말입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객실 키를 건네받고는 유유히 엘리베이터로 사라졌다. 

"진짜 내로남불이 따로 없네 허허 참!"

나는 그가 탄 엘리베이터를 보며 혀를 끌끌 찼다.


한 시간 남짓 지났을 즈음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얘! 나 객실 안 썼다. 키는 방에 있으니 확인해 봐라!” 


뚝!


"아 또야?"


 매번 이런 식이었다. 전화 한 통에 객실료를 퉁 치는 그의 뻔뻔함이 이젠 감격스러울 지경이었다. 체크인을 하고도 한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대뜸 전화를 걸어와 객실 사용을 안 했으니 돈은 안 내고 간다는 얘기였다. 이게 도대체 무슨 경우인지 처음엔 무척 황당했다. 그래서 객실 사용 흔적이 있는지 하우스키핑을 통해 확인해 봤으나 이상하게도 객실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했다. 하우스키퍼들 얘기로는 분명 어떤 여자와 둘이서 들어갔다고는 하는데 현장은 깨끗했다. 가끔 욕실에서 사우나 타월만 발견될 뿐이었다. 한 달에 서너 번 꼴로 와서 한 두 번은 꼭 이런 식으로 객실을 이용했다. 


 어느 날은 너무 궁금해 그가 들어갔던 객실의 상태를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나는 그가 빠져나간 객실 문을 천천히 열고 들어갔다. 역시나 하우스키퍼 말대로 침대 위의 침구류엔 주름 한 줄 보이지 않았다.  커튼도 소파도 객실에 들어가는 무료 생수도 객실 정비를 마친 상태 그대로였다. 사우나에서 사용하는 수건 한 장만 욕실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게 전부였다. 도대체 객실에 들어가서 무슨 짓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그런 그의 얄궂은 수법이 벌써 10년 넘게 이어져오고 있다.


 그렇게 그날도 정 선생을 고이 보내드렸다. 남은 업무를 보려고 자리로 돌아왔는데 이번엔 스마트폰의 진동이 책상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으악....



<다음 편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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