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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희 Jun 27. 2022

1. 그러면 그냥 방 빼서 나가요

장마 시작 전에 맞닥뜨린 원룸 누수

  '또도 도독 똑똑 조로로로'

  처음에는 집에 벌레가 들어온 줄 알았다. 남자 친구의 공연에 가기 위해선 지금 당장 나가야 하는데, 집에 벌레가 있다고 생각하니 발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책상 아래, 서랍장 뒤 등 구석구석을 찾았지만 벌레 같은 건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들자 창틀 아래 물 웅덩이가 보였다. 벌레의 날갯짓이 내는 소리인 줄 알았건만, 창틀로 비가 새서 들어오는 소리였던 것이다. 장마의 첫날, 누수가 시작됐다.

  

  물이 떨어지는 지점에 플라스틱 통과 수건을 깔았다. 당장 집주인에게 연락을 했고, 바로 윗집에 사는 집주인이 내려왔다. 상황을 보시더니 내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시고는 올라가셨다. 하지만 내가 듣고 싶은 건 사과가 아니라 대충의 보수 공사 일정이었다. 내일모레부터는 정말 장마가 시작되는데 임시 조치는 없는 건지, 보수 공사는 어떻게 되는 건지, 언제 업체에 연락을 하실 건지에 대한 정보는 하나 없이 올라가버리는 집주인에 답답하기만 했다. 이 집은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은근한 하자가 많았다. 싱크대 누수, 물 역류, 인터폰 고장, 욕실 물 안 내려감, 조명 나감 등 다양한 문제들이 많았지만 한 번도 업체를 불러 해결해 주신 적이 없었기에 이번에도 참고 살아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부글부글 속이 끓었지만 일단 나도 당장 가야 할 곳이 있으니 원만히 대화를 끝내고 곧장 남자 친구의 공연장으로 향했다. 


  다시 집에 와보니 통에는 물이 제법 찼고 수건은 흠뻑 젖어있었다. 다음 날,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업체와 통화를 했냐 물으니 처음에는 몸이 안 좋아서 업체와 통화를 못 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당장 내일부터 장마가 시작인데 마음이 조급해졌다. 집주인은 실리콘 공사는 비가 그치고 바싹 말라야 할 수 있다고 하며 장마기간 동안엔 공사가 불가능하니 일단 기다리라고 했다. 장마 기간 때문에 보수가 필요한 건데, 그 전엔 공사를 못 한다니...

  "그럼 그동안 임시조치 같은 것도 없는 건가요?"

  "아니, 내가 업체에 연락을 했는데 그 업체가 지금은 지방에 내려가 있어서 안되고 좀 더 기다려봐요. 어차피 내 돈 드는 거 아니고 내가 더 급하니까 최대한 빨리 해줄게요."

  아까는 업체에 연락을 못 했다더니 이번엔 업체가 지방에 내려가 있어서 보수공사가 안된다는 답변도 기가 찼지만 임시조치에 대해 물었는데 그에 대한 답은 없는 것도 화가 났다. 당장 빗물이 침대 바로 옆에 있는 창문에서 새고 있어서 잠을 편히 자는 것조차 불편한 상황에서 돌아오는 대답이 저렇다니... 

  "그럼 대충 언제쯤에나 보수공사가 진행될까요?"

  "업체가 지금 지방에 있어요. 그리고 장마 동안엔 공사 못하고 어차피 밖에서 공사하는 거라 학생 집에는 안 들어가니까 상관없어요."

  실거주자인 내가 왜 지금 이 상황에서 상관이 없다는 걸까. 대화를 하면 할수록 말이 안 통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일주일 뒤 나는 고향에도 내려가 봐야 했고, 집을 비워야 하는 순간도 생기니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대충의 일정을 알고 싶었다.

  "제가 장마 기간 동안 고향에도 내려가 봐야 하고, 집을 잠시 비울 수도 있어서 걱정이 돼서 그러는데요. 7월 몇째주 쯤 된다는 식으로 대충이라도 일정을 좀 알 수 없을까요?"

  "걱정이 되고 그러면 그냥 지금 방을 빼요."

  "네?"

일정을 알고 싶다는 나의 말에 돌아온 대답이 저랬다.

  "내가 보증금이랑 복비랑 그냥 다 주고, 피해가 생기면 피해보상을 해줄 테니 집을 구해서 나가요."


  그 뒤로는 무슨 정신으로 통화를 하고 끊었는지 모르겠다.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이게 내 집 없는 내가 받아야 하는 대우인가 싶어서 서러웠다. 이 집에 들어온 순간부터 계속해서 나오는 하자들이 어쩌면 나랑 이 집이랑 안 맞다는 신호였을까 싶었다. 옆에서 통화를 듣던 남자 친구는 나를 위로해주며 임시방편으로 본인이 비닐과 테이프를 사 와 바깥에서 비가 새는 곳에 붙여주겠다고 나섰다. 


  다음 날이 되자, 남자 친구가 비닐과 테이프를 사 왔다. 집주인에게도 집에 대충 이 정도 조치는 내가 하겠다고 알려야 할 것 같아 전화를 해 집으로 모셨다. 솔직히 나는 남자 친구가 정확하게 어디에 비닐을 붙인다는 건지 이해를 못 해서, 남자 친구가 집주인에게 설명을 하기로 했다. 남자 친구가 설명을 하자, 집주인은 너무 위험하다고 안 된다며 말렸다. 남자 친구는 절대 위험할 일도 없고 혹시나 걱정하시는 대로 사고가 나면 전적으로 본인이 책임질 테니 계약서를 쓰시거나 녹음을 해도 된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주인은 끝내 허락하지 않았고 그냥 이대로 살다가 피해가 생기면 피해보상받고 나가고 싶으면 나가라고 했다. 더불어, 내 남자 친구에게 어떻게 그렇게 바보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냐며 화를 내기도 했다. 남자 친구는 허허 웃으며 "고정하세요, 어르신. 걱정이 많이 되신다니 절대 안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다섯 번 이상은 했다. 그러면서 지금 몸이 안 좋은데 이 일로 스트레스를 받아 몸 상태가 더 악화되는 것 같다는 말을 남기곤 또 올라가버렸다.  


  정말 스트레스를 받는 건 물이 새는 집에 살고 있는 '나'아닌가? 당장 내 집이 없어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잃어버린 것 같은 '나'아닌가? 물론 집주인도 집주인의 스트레스가 있었겠지만 자꾸만 스트레스의 크기를 저울질하게 됐다. 남자 친구는 인생의 경험치를 쌓는다고 생각하라며, 너무나 고맙게도 긍정적 기운을 불어넣어 줬지만 우울한 기분은 어쩔 수가 없었다. 특히나 이 일을 엄마에게 전화로 말해드리니 울먹이던 엄마가 자꾸 생각나 더욱 서러웠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부모님한테 괜히 죄송했고 당장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결국 일단은 집 안 쪽으로 비닐을 붙여서 물을 바깥으로 통하게 조치를 해놨다.


  하지만 이 집에 더 살 자신은 없었다. 이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지금까지 집에 생겼던 하자들을 생각해보면 곧 다른 하자가 발생할 것 같은 데다, 또 하자 문제로 집주인과 입씨름하고 싶지도 않았다. 당장 내일부터 장마가 시작인데 아무런 조치 대신 기다리거나 나가라는 말만 하는 집주인이 또 다른 문제를 해결해주는 방식도 똑같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겨울에 보일러라도 고장 나면, 요즘 같은 때에 에어컨이라도 고장 나면... 온갖 생각이 들며 이 집을 떠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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