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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충형 요정 Jan 18. 2023

삶의 방향을 잃었을 때 나는 길로 나섰다

2022.12월의 어느날에 

오래오래 트레킹을 하고 싶었다. 오래라는 표현은 생각하기에 따라 상당히 모호한데 일단 트레킹을 시작하면 가급적 긴 거리를 걷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도 맞다. 하지만 본래적으로 따져보자면 나이가 많이 들어서 까지 오래라는 의미가 컸다. 그만큼 자연을 걷는 행위는 내게 존재의 이유가 컸다. 그랬기에 스스로 잠금장치를 둔 분야는 달리기였다. 누구나 알고 있듯 무릎에 주어진 연골의 총량은 정해져 있기에 주어진 모든 것을 소진하면 그때부터는 무연골자가 된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적어도 달리기는 안 해야 트레킹이라도 오래오래 할 수 있다. 그런 마음이었다. 그렇게 떠난 길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 이천킬로미터를 걷고 곧장 네팔로 날아가 안나푸르나와 에베레스트 트레킹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걷고자 하는 욕망의 발원이었다. 비로소 히말라야 쓰리 패스 트레킹이 마무리될 무렵에 ‘나는 달려보고 싶다’는 새로운 욕망이 생겨났다. 나는 왜 그토록 달리기를 경계했던 것일까. 무엇이 그토록 두려웠던 것일까. 마음이 명확하게 건네는 명령에 무조건 따르는 나는 다음 나라인 태국에서 곧장 달리기를 시작하겠다 마음먹었다. 그리고 치앙마이에서 대망의 첫 달리기를 시작했다. 구시가지를 구분 짓는 성곽길을 따라 한 바퀴를 뛰는 정확히 6km가 나왔다. 한 면에 1.2km씩 정확한 정사각형의 길을 뛰었다. 장소를 이동해 빠이에서 <충형문객잔>을 운영하는 중에도 달리기는 빼놓지 않았다. 점차 달리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귀국 후에도 달리기는 중요한 관심사였다. 트레일런 대회 스태프(구체적으로는 스위퍼)를 하며 산을 탄다는 것과 달리기를 한다는 것 사이의 미묘한 차이와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렇다면 내년에는 50km 이상의 트레일런 대회에 참가해 보겠다. 일단은 내년 봄에 열릴 동마(동아 마라톤, 국내 3대 메이저 대회의 하나로 셋 중 유일하게 봄에 진행) 풀코스에 도전해 보겠다. 그렇게 내년을 준비하려 했다. 마음의 변덕이 찾아온 건 그리 마음을 먹고 오래지 않았다. 양산전국하프마라톤 광고를 보자 마음이 흔들렸다. 사실은 요동쳤다. ‘이거다’. 12월에 열릴 이 대회에서 나의 각오를 시험하자. 어찌 보면 올해 달리기의 성적표라 여겼던 대회 출전은 당장 내년에 어딘가 새로운 곳으로 훌쩍 떠나 달리기와 동떨어진 삶을 살게 되더라도 마라톤 대회에 대한 열망을 삭혀줄 결정적 이유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2년에 든 생각이 2023년에도 여전히 유효할 것이라는 보장을 못한다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다. 그렇기에 이번 대회 출전은 올해의 기록표이고 이정표이다. 길에서 시작해 길에서 끝나는 2022년 여정의 마침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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