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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그래퍼 May 08. 2020

런던의 여덟 번째 조각 [Are you OK?]

당신의 성적 취향은 안녕하십니까?

 내가 일하던 레스토랑에는 Bea라는 이름을 가진 홍콩에서 온 동갑내기 여자 친구가 근무하고 있었다. Bea는 일하는 도중 나에게 "Are  you OK?"라는 질문을 종종 하곤 하였다. 레스토랑 주방 오픈 시간이 새벽 5시였고,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나를 걱정하였기 때문이었다. Bea가 그런 질문을 할 때마다 나는 "물론이지" 혹은, "죽겠어"라는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전달해주었다. 몇 음절 안 되는 한 문장이 서로를 오가는 동안 우리의 간격도 부쩍 가까워졌는지, Bea는 내 얼굴을 볼 때면 시도 때도 없이 "Are you OK?"를 외치는 지경에 이르렀고, 나 역시도 "Why not?" 하며 심플하게 받아치게 되었다. 이 짧디 짧은 한 문장이 어떤 문제를 야기하게 될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크리스마스를 살짝 넘긴 어느 날, 일을 마치고 Bea가 물었다.




 "너 오늘 매장 크리스마스 파티 갈 거야?"


 "아니"


 "왜?"


 "그냥 집에서 쉬면서, 플랏 애들이랑 놀려고. 넌?"


 "난 가서 잠깐 앉아 있다가 집에 가려고"


 


 다음날 새벽 5시, 지난밤의 과음 탓인지 많은 동료들이 지각을 하였다. Bea도 그중 한 명이었다. 많은 동료들이 지각을 한 바람에 새벽의 주방은 서로 인사를 나눌 수 없을 만큼 바빴다. 시계의 시침이 어느덧 '8'을 가리킬 즈음, 드디어 숨을 돌릴 만큼의 틈이 생겼고, 주변을 돌아보던 중 나의 시선은 Bea의 시선과 마주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Bea의 입에선 매일 반복되는 그 한 문장이 뿜어져 나왔다.


 


 "Are you OK?"


 "Of course, why not"


 


 그녀의 쳇바퀴 도는 질문에 나 역시도 쳇바퀴 돌리듯 답하였다. 한데, 오늘은 왠지 Bea의 리액션이 평소와는 달랐다. 마치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듣기라도 한 듯, 황급히 자리를 떠나버렸다. 그녀의 행동이 사뭇 이상하였지만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기에 다시 일에 집중하였다. 그리고 3분이 지났을까, 이번엔 같은 매장에서 일하는 한국인 동생이 뚱딴지 같은 질문을 던졌다.


 


 "오빠, 오빠 게이에요?"


 "뭐? 뭔 소리냐?"


 "Bea가 그러는데, 오빠가 오빠 입으로 오빠 게이라고 했다는데요?"


 처음에는 지금 무슨 놈의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가늠조차 하지 못하였다.


 "야 뭔 소리야, 나 오늘 Bea가 Are you OK라고 물어봐서 Of course, why not이라 대답한 게 전부인데!"


 


 한국인 동생이 자신의 옆에 있는 Bea에게 나와 나눈 대화를 자그마한 목소리로 나누더니, 갑자기 둘 모두 주방이 떠나가도록 깔깔되며 웃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모든 이의 이목은 그 둘에게 집중되었다.


 


 "오빠 'Are you OK?(아 유 오케이)'가 아니라, 'Are you a gay?(아 유 어 게이)'라고 물어봤다는데요?!"


 ".............................."


 "근데 오빠가 너무나 당연하듯이 '물론이지'라고 대답하니까, Bea가 오빠 진짜 게이인 줄 알았데요"


 ".............................."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전날 파티에서 한국 남자아이 한 명이 커밍아웃을 하였다고 했다. 그 사실을 흥미롭게 여긴 Bea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또 다른 한국인이었던 나에게 "너 게이야?"라는 질문을 하였고, 나는 "물론이지"라고 응답한 것이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대답한 3분 전의 대화가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내가 게이라니........  생각해 보니 곱씹을수록 웃기는 상황이었다. "Are you a Gay"라는 치명적인 질문을, 매일 주고받던 "Are you OK?"라는 안부의 문장 정도로 생각하고 "why not"이라 답했다니......... Bea가 슬금슬금 뒷걸음치며 달아나던 몇 분 전 표정이 떠올라 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몇 분간 누군가의 머릿속에 특별한 성적 취향을 가진 남자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이 사건을 겪고 난 후, 나는 안부를 묻는 "Are you OK"라는 질문을 누구보다 신경 써 듣는 버릇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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