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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그래퍼 May 10. 2020

런던의 아홉 번째 조각 [서머타임]

[써머타임(summer time)]


지잉~ 


 출근길, 복스홀 브릿지를(Vauxhall Bridge) 건너는 87번 버스 위에 살포시 잠든 나를 깨우는 얄궂은 진동이 느껴진다.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 Danny로부터 온 메시지이다. 30분 정도 늦게 도착할 예정이라는 메시지다. 나의 버스는 아직도 20분을 더 달려야 하기에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다시 잠을 청한다. 하지만, 나의 아이폰은 또다시 주인님을 깨우는 못된 짓을 하고야 만다. 


 


 

                                            


 



 지잉~
 Danny의 메시지를 받은 지 채 5분도 되지 않았을 때, 이번엔 팀 리더인 Ester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역시 한 시간 가량 늦을 것이라는 메시지다. Ester 이후에도, 2명의 동료가 1시간가량 늦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아침부터 내 휴대폰에 메시지 창은 동료들이 보낸 메시지로 가득했다. 그리고 나는 출근길 5분도 채 눈을 부치지 못하고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절망적인 사실은 나와 함께 매장을 오픈해야 하는 4명의 동료 모두가 1시간 늦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이것들이 단체로 동양인 골려주기 몰래카메라 찍나?"라고 오해할 법한 이 상황, 하지만 내가 이 같은 상황이 일어날 것이라고 지난밤 정확히 예상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지난밤, 매장 문을 닫기 전 미팅에서 나는 동료들에게 말하였다.
 "내일 서머타임
 서머타임은 새벽 5시도 채 되기 전에 떠오른 태양이 밤 10시가 돼도 지지 않는 유럽의 여름 동안 일을 일찍 시작하고 일찍 잠에 들어 등화를 절약하고, 햇빛을 장시간 쬐면서 건강을 증진한다는 근거로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서 처음 실시한 제도이다. 그리고 현재에는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서머타임을 실시하는데, 3월 마지막 주 일요일 새벽 2시에 3시로 한 시간 당겨지고, 10월 마지막 주 일요일(당장 오늘이군) 3시가 되면 다시 2시로 한 시간을 되돌아가서 시간에 균형을 맞추게 되는 제도이다.

 나의 모든 동료들이 약속을 한 듯이 늦은 이날은 바로 올해 서머타임에 돌입하는 3월의 마지막 주 일요일이었던 것이었다. '아니 이것들은 서머타임 없는 세상에서 25년을 넘게 살아온 나도 안 늦는데, 심지어 어제 늦지 말라고 신신당부도 했건만!'이라는 생각이 매장 오픈을 준비하는 시간 내내 머릿속을 스쳐갔다.


 

 드디어 Danny가 도착했다. 서머타임 시작되는 걸 잊고, 알람 세팅을 다시 해놓지 않았단다. Ester도 도착했다. 물론, 같은 변명이다. 그 두 명 뒤로 줄줄이 들어오는 동료들에게는 변명을 듣기도 전에 "왜? 알람 잘못 맞춰놨다고 하지?"라고 불쾌한 기분을 담아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알았어?"라고 돌아오는 답변을 듣고 나면, '내가 왜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을 해서 속 터짐을 자초하는지'라는 자책을 하게 되었다. 



 헌데! 아이폰 아니면 갤럭시를 쓰는 이 녀석들. 휴대폰은 따로 세팅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서머타임을 계산하여 정확하게 바뀐 시간에 알람을 울렸을 텐데!! 우선 동료들의 지각으로 늦어져 지연된 오픈 준비를 서두르는 게 급선무였다. 


 '니들 다 죽었어'라는 마음으로 분노의 '일개미' 모드로 일한 결과, 다행히 매장은 제시간에 오픈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다시 취조의 시간. "야 니들! 내 휴대폰은 제시간에 울리던데, 너희 것은 아날로그 휴대폰이냐?!"라고 아주 분노에 찬 사자후를 내뱉는다. 그랬더니 Danny가 덧붙인다. 


 "난 휴대폰 알람 안 써. 시계 알람 써"


 ".............................................."


 '이 정도면 싸우자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때, 또 다른 리더인 Anna가 와서 묻는다.


 "무슨 일인데?"


 "Anna, 너 그거 알아? 오늘 쟤네들 다 늦게 왔어. 오늘 아침에 혼자 오픈 준비하느라 죽는 줄 알았어. 그래서 왜 늦었는지 따지는 중이야"


 Anna는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뒤, 다 이해한 다는 듯이 머리를 위, 아래로 끄덕인다. 그리고 덧붙였다.


 "서머타임 때문이지 뭐, 1년에 하루 있는 날이잖아. 네가 이해해줘. 그럴듯한 변명거리 대며 늦을 수 있는 유일한 날이잖아."


 Anna의 말을 들어보니 서머타임의 첫날이며, 심지어 주말이라 매니저도 안 나오는 날이니 자기는 애들이 다 늦을 줄 알았다고 한다. 그리고 나(유즈만) 역시도 늦을 줄 알았단다. 1년의 딱 하루 이날은 의도적으로 늦게 오는 게 관행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쳇! 그게 동료들에게 관행이었다면, 그 관행을 이해 못하고 오전부터 그들에게 엄청나게 짖어 된 나는 엄청난 X새끼였겠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매장이 한가해질 즈음에는 오히려 정시에 맞춰 출근을 한 내가, 지각을 한 동료들에게 미안하다며 사과를 건네었다. 




 그리고 갑자기 드는 생각이란, '우리나라가 어떻게 그 짧은 기간 동안 그만큼 성장할 수 있었는지 이해가 간다'라는 생각이었다. 한국인은 마인드부터가 다르니까. 그리고 Anna가 했던 말이 다시금 떠오른다. "너도 늦을 줄 알았어"


 쳇! 웃기지도 않아. 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대륙 동쪽의 한 나라에서 온 남자라고! 어떻게 하면 서머타임이을 이용 해 그 하루의 한 시간마저도 늦을까 생각하는 게을러빠진 너희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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