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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그래퍼 May 04. 2020

런던의 네 번째 조각 [런던에 비가 내리면 1.]






                                             

 [런던]이라는 두 글자가 내 안에서 꽃을 피운 것 언제인가.

 아마 그때부터는 아니었을까?



 비가 내린다.   

 그 친구가 좋아하던 그 비가 내린다.

 런던 하늘 아래 서 있는 나에게로 비가 내린다.

 비를 좋아하던 그 친구가 머물렀던 이곳 하늘에 비가 내린다.



 런던이라는 이름의 도시가 나의 머릿속의 한 공간을 차지하기 시작한 것은 학문적인 이유였다. 세계 시간의 중심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 삼아 경도 15도가 변할 때마다 1시간의 시간차가 존재하고, 그리니치로부터 135도에 위치한 대한민국은 영국과 9시간의 시차를 갖는다는 사실을 구구단처럼 외웠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나는 대학에서 지리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절대적 위치 이상의 런던을 알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절 런던만큼이나 설레는 한 친구를 알게 되었다. 내 애틋함이 묻은 떨리는 세음절의 유일한 주인이었던 그 친구... 유난히 비 오는 날을 좋아하였던 그 친구...


 "세상이 흠뻑 젖어가는 소리가 좋아. 그리고 그 젖어가는 소리 위에 살포시 얹혀 선명하게 들리는 세상의 소리가 좋아"


 비를 지독하게 싫어하던 내가 비를 좋아하기 시작한 이유. 나의 군입대와 맞물려, 그 친구는 런던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업무 이외에는 컴퓨터의 사용이 허락되지 않았던 막사에서 그 친구가 보내고 있을 시간의 흔적을 가늠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은 LONDON이라는 앙증맞은 필체로 감싸인 편지 봉투 속의 속삭임을 듣는 것이었다. 또 다른 속삭임이 도착하기 전까지, 하나의 속삭임은 매일 밤 몰래 켜놓은 개인용 손전등 아래에서 오로지 나만을 위해 속삭이고, 속삭이고, 그리고 또 속삭이고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나 역시도 LONDON을 향해 손끝으로 매일 밤을 속삭였다. 지금 내가 앉아 있는 바로 이곳으로.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 나의 속삭임은 네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까지 너의 집 우체통에서 잠시 비를 피하고 있었겠지. 그리고 세상이 젖어가는 소리와 그 위로 전해지는 진실된 세상의 목소리와 함께 내가 속삭이는 것을 눈으로 듣고 있었겠지.. 


 6년 후, 


 네 가보고, 듣고, 느꼈을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고, 그리고 너를 떠올리는 이곳의 누군가처럼.. 


 비가 내리면 네가 스쳐가 

 그리고 런던에 비가 내리는 지금 네가 그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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