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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눈별 Oct 16. 2021

안경 벗으면 먼지 잘 안 보여

애인과 나의 집안일

오늘 파랑이 또 내 물건을 숨겼다. 나는 애인인 파랑과 1년 6개월째 함께 살고 있다. 파랑은 책상 위에 물건이 올라와 있는 것을 싫어한다. 글 쓰는 작업을 주로 하는 파랑은 책상과 환경이 깨끗해야 일에 집중할 수 있다고 한다. 문제는 본인 책상뿐만 아니라 내 책상도 깨끗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반에 나는 책상에게 자유를 주는 편이다. 책상 위에 물건을 꺼내 놓으면 언제든 필요할 때 물건을 집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파랑의 책상과 비교하면 내 책상이 어질러져 보이지만 착각이다. 나는 책상 위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다 알고 있다.      


“파랑!! 몬스터 양면테이프 어디다 뒀어!!”

동료에게 빌린 양면테이프를 가져다줘야 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 신경질이 났다. ‘또 어디다 숨긴 거야!’ 생각하며 씩씩 거리고 있었다. “거기 책장 맨 밑에 빔프로젝터 상자 위에 뒀어~” 파랑은 물건을 바로 찾아주었다. 아니 왜 양면테이프가 빔프로젝터 위에 있는 것일까. 일부러 숨기기에도 어려운 위치인데.   

   

어느 날은 머리끈을 찾기 위해 책상 서랍을 뒤지고 있었다. 근데 예전에 잃어버렸던 치실이 서랍 구석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 반가운 마음에 일단 책상 위에 올려두고 다시 머리끈을 찾아 헤맸다. 결국 그날 머리끈은 찾지 못했다. 아마 파랑이 어디다 잘 챙겨뒀을 텐데 너무 잘 챙겨서 나는 모르는 곳에 ‘정리’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며칠 뒤 치실질을 하려고 책상 위를 봤다. 분명 찾아서 책상 위에 뒀는데, 다시 보니 치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나는 분명히 치실을 책상 위에 ‘잘’ 뒀는데 사라지다니. 파랑이 또 내 물건을 숨겼구나… 이런 사태는 종종 파랑을 의심하게 만든다. 실제로 내가 물건을 잃어버린 경우에도 “파랑이 숨겼어”라고 생각하게 되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청소도 마찬가지다. 파랑 눈엔 계속 머리카락이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계속 청소기를 돌린다. 사실 안경을 쓰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먼지들인데 왜 굳이 찾아내서 미리 청소를 하는 걸까,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렇다 보니 집안일은 온통 파랑 차지가 되었다. 난 청소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으니 잘 안 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나는 빨래도 수건이 다 떨어지면 그제야 돌린다. 그런 이유로 빨래 역시 파랑 차지가 되었다. “집안일하는 거 너무 힘들어. 집안일하다 보면 하루가 다 가” 어느 날 집안일이 힘들다며 파랑은 내게 토로했다. 그래서 파랑은 나의 속도에 맞춰 조금 느린 마음을 갖기로, 나는 파랑 속도에 맞춰 조금 빠른 마음을 갖기로 합의했다.     

 

사실 정리를 좋아하지 않는 나의 습관 때문에 힘든 일이 많다. 그중에서 옷장 관리가 가장 어려운데 퇴근하고 집에 와서 벗은 옷을 제대로 걸거나 개키는 것보다 아무 데나 던져두면 참 편하다. 하지만 편함은 고리대금 같아서 다음날 두 배의 불편함으로 찾아온다. 입고 싶은 옷을 찾기가 너무 어려운 것이다. ‘오늘은 퇴근하고 오면 옷장 정리 꼭 해야지’ 매번 다짐하지만 항상 내일의 나에게 미루다가 영영 안 하고 만다. 청소와 정리에 대한 성실함을 그와 내가 반반 나눠 가지면 딱 좋을 텐데.   

   

그래도 나는 요즘 꽤 노력한다. 쓰레기통을 미리미리 비우고, 설거지도 밥 먹고 조금만 쉰 뒤에 한다. 내가 청소를 할 때마다 파랑이 참 기뻐하는데 나는 그 모습이 정말 좋다. 파랑을 계속 기쁘게 하기 위해선 내가 더욱 성실히 청소에 임해야 할 텐데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라서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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