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자의 동병상련
생강과 나 그리고 애기위아가씨는 코드에프이다. 코드에프는 정신병 분류 코드로, 모두 정신병을 앓고 있는 나와 내 친구들의 모임명이기도 하다.
“오늘 너네 사무실 앞으로 갈게 같이 점심 먹자”
오늘은 생강에게 대뜸 연락이 왔다. 3일째 약을 먹지 못해 골골 대던 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점심에 얼굴이라도 보자는 것이었다. 친구는 바쁜 점심시간을 쪼개서 내게 밥을 먹이고서 다시 회사로 들어갔다. 회사로 들어가는 친구의 어깨가 나보다 더 처져있어 내심 미안했다. ‘너도 힘들지’ 소리가 목까지 나왔으나 삼켰다. 얼굴만 봐도 안 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우린 열심히 준비한 시험에서 낙제했고, 꿈이 무참히 무너지기도 했다. 병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기도 한다. 우린 실패할 때가 더 자주 있다. 그럴 때마다 속시원히 이야기하는 곳은 코드에프의 카톡방이다. 병 이야기나 우울한 이야기를 나눌 때도 많지만 대부분 그냥 헛소리를 나눈다. 오늘의 주제는 지리산에 아파트를 지어서 같이 살자는 이야기였다. 우리 아빠가 목수였으니 아파트 짓는 방법은 내가 배워오기로 했다. 그러다가 지리산에 아파트를 짓는다고 하면 환경운동가들에게 매 맞고 쫓겨나는 건 아닌지 하는 이상한 소리로 3시간 동안 300여 통의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주로 연애이야기를 많이 나누지만… 이 모임이 특별한 건 인사에 있다. “약 잘 챙겨 먹고 자자” 마지막 인사는 언제나 서로의 복약지도로 끝난다.
“난 조피스타정, 인데놀, 팍셀, 자낙스정…”
“난 인데놀, 아리놀라정, 트리티코정…”
“렉사, 사카톤피알정, 쿠에타핀정, 인데놀”
우린 자주 서로의 복약정보를 공유한다. 공황장애, 불안장애, 우울증 등 비슷한 병을 앓고 있어서도 있지만, 어떤 약에 부작용이 있는지, 어떤 걸 경험하는지, 약이 잘 드는 거 같은지 등을 논의하기 위해서이다. 상담에서 나눈 이야기를 자세히 나누기도 한다. 서로의 선생님이 건넨 말들을 서로에게 건네며 대리(?) 상담을 해주기도 한다. 3명이 합쳐 정신병 경력 20년. 이 정도면 전문가 집단 아니겠는가.
“TMS를 받아봐” 얼마 전 애기위아가씨는 내게 진단했다. TMS는 전두엽에 자극을 주어 뇌를 활성화시키는 치료이다. 약도 잘 먹고 상담도 잘 가는데도 불안함때문에 잠 못 이루던 나를 보며 진단했다. 못 이기는 척 병원에 갔더니 당장 TMS를 맞아야한다고 했다. 진짜 인정. 이 정도면 의사보다 족집게인걸.
“자신을 사랑하려면 너를 인정해야 해”
“우리 잊고 산 지난 세월의 나를 안아주자”
상담 선생님이 하라고 했을 땐 하기 싫었는데 친구들이 하라니까 또 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요즘 우린 행복일기를 작성하기도 한다. 하루에 3개씩 행복했던 일을 쓰는 것이다. (이것도 상담샘이 하랠 땐 싫었는데) 하루에 3개가 많아 보이기도 했는데 요즘은 척척 행복한 일을 써낸다. 같이 앓는 사람이 있어 너무 좋다. 3일간 약을 먹지 않는 게 얼마나 힘든지, 어떤 경험을 내가 하게 되는지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람들이 있어 너무 다행이다. 어지러움증을 느끼고 먹고 먹어도 배가 고프고 자도 자도 잠이 오는 이 상황에서 “네 문제가 아니라 약을 못 먹어서야”라고 단단하게 말해줄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 든든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코트에프 친구들은 웃기다. 친구들은 나를 ‘연탄재아가씨’로 저장해 놓았는데, 이유는 내가 연탄을 피워 자살시도를 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애기위아가씨’인 애도 있다. 얜 약을 먹고 자살시도를 해서 위세척을 여러 번 했다. 자살시도 방법으로 나를 부르는 모임은 여기밖에 없다.
물론 우리 사이에서 “죽고 싶어”라는 단어가 제일 많이 오간다. 다행히 한꺼번에 모두 죽고 싶었던 적은 없다. 한 명이 나아지면 다른 한 명이, 그러고 나면 내가, 서로 돌아가며 죽고 싶다 하소연한다. 여기에 하소연한다고 대단한 답이 나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같이 버텨줄 사람들이 있다는 건 어쩌면 너무나 든든한 일이다. 장난처럼 진심을 내뱉을 수 있는 사이. 코드에프가 좋은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