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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눈별 Nov 26. 2023

그러니 살아주세요

그 부탁이 나를 살게 했다

택시를 타고 가던 길이었다. “사고 다발 지역입니다. 주의하세요.” 내비게이션에서 안내가 나왔다. 그 순간 ‘아, 사고가 나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자살을 하기 위해 번개탄을 사고, 날짜를 정했다. 함께 자살할 사람을 구하기도 했다. 17살부터 이어진 우울증은 나을 기미가 없었다. 늘 죽고 싶었고, 죽는 게 사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애인 몽글의 얼굴이, 엄마, 아빠, 언니의 슬퍼하는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죽지 못해 살 던 나날이었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숨이 안 쉬어지고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이런 고통 속에서 더는 살고 싶지 않았다. 죽을 결심이 섰고, 슬픔은 남은 자들의 몫이라는 마음도 들었다. 나는 사놓은 자살 도구를 들고 동반 자살을 하겠다며 연락 준 사람을 만나러 나섰다.


떨렸다. 무서웠다. 그때 상담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지난 상담에서 죽을 계획이 있다고 말했던 참이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 계획인지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는데 딱 맞춰 전화를 했다. 나는 담담히 내 상황을 설명했다. “선생님 전 이제 죽을 거예요” 선생님은 다급히 여러 말들로 날 설득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나는 정말 죽고 싶었다. “제가 죽어도 힘들어하지 마세요. 이건 제가 원하던 일이니 오히려 축하해 주시면 좋겠어요” 진심이었다. 선생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한참이 지난 후 선생님은 말했다. “아니요. 전 힘들 거예요. 봄눈별님께서 돌아가시면 전 많이 힘들 거예요.” 나는 이 말이 나의 자살을 막기 위한 상담사의 기술적 노력이라고 느꼈다.


“선생님. 이제 전화 끊을게요.” 나는 전화를 끊으려 했다. “저는 많이 힘들 거예요. 상담사를 그만 둘 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니 살아주세요.” 이게 진심인지 상담의 기술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 말이 계속 남아 전화를 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살아주세요, 그러니 살아주세요…’ 그 말은 죽지 말라는 말보다 강력히 내 맘을 흔들어 놓았다. 자신을 위해 살아달라고 말하는 상담사라니. 나도 이상한 내담자지만 선생님도 웃긴 상담사다. 상담에서 나의 감정은 주제가 되지만 상담사의 감정은 드러나지 않는다. 자신이 얼마나 힘들지 솔직히 말해준 게 웃기고 또 반가웠다.


자살이 얼마나 이기적인 건지 아냐고, 그렇게 죽어버리면 남은 사람은 어떻게 사냐고, 나도 너를 따라 죽어버릴 거라고 말하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나를 붙잡겠다는 간절한 마음들이 오히려 나를 힘들게 했다. 나는 죽어서도 살아서도 곁에 있는 사람을 힘들게 하는구나 싶어 더 절망하던 순간들이었다. ‘당신이 쉽게 버린 이 삶은 어제 죽은 환자가 간절히 원하던 하루입니다.’, ’ 누구보다 소중한 자신을 함부로 버리지 마세요’ 죽지 말라고 설득하던 많은 문구들. 다정했지만 아프던 말들. 상담선생님의 말은 다정하지도 아프지도 않았다.


“일단 자살 도구를 버리세요. 그리고 동반자살 하기로 했던 사람과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벗어나세요.” 선생님은 섬세히 그러나 강력하게 안내했다. 나는 고분고분 그의 말을 따랐다. “어쩌면 살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어요” 집에 돌아와서 선생님께 문자를 보냈다. 부끄러웠다. 죽겠다고 그렇게 난리를 쳐놓고 살아서 또 살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선생님의 반응은 의외였다. “축하드립니다” ‘너 사실은 다 관심받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니야?’ 종종 자살을 호소하면 듣던 말이 아니라서, 진심으로 살고 싶다는 말에 기뻐해주어서 나는 살고 싶었다.


살고 싶은 마음으로 기쁘다가도 다시 우울하고 또다시 살아 볼만하다가도 죽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은 감정이 반복됐다. 그때마다 나는 자살을 하겠다며 소동을 부렸고, 선생님은 나를 붙잡아 주었다. 휘청거릴 때마다 발 붙일 곳을 안내해 주었다. 입원 치료를 권하고, 행동치료인 DBT상담을 알아봐 주시고, 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상담 초반, ‘이 얘기를 왜 내가 저 사람한테 해야 하지?’ 싶은 마음에 “말하기 싫어요”라고 틱틱거리기도 했다. “오늘은 컨디션이 어떠신가요?” 묻는 질문에 “네”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네’라면 좋다는 뜻인가요?”라고 다시 질문하면 “네”라고 대답하는 식었다. 워낙 낯을 많이 가리고 말이 없는 성격 탓에 상담이 쉽지 않았다. 마음이 놓이지 않아 상담에서 더 말을 아꼈다. 하지만 선생님의 부탁이 나의 벽을 허물었다. 상담을 받은 지 3년 만에 생긴 변화였다. ‘그러니 살아주세요’ 나는 이 말을 붙잡고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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