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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함 Mar 02. 2023

2022년 - 만남의 날

어젯밤 올리버에게 바람 맞았다 [제3편]


(...2편에서 이어서)


운명을 찾아서

어제 올리버와 내가 만났더라면.. 내 기억에 의하면 아마 9년 전 그 짧은 뽀뽀의 날 이후로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가 그 9년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거의 알지 못한다. 나는 그 9년 중 4년을 '운명'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내 인생 통틀어 가장 사랑한 남자와 연애를 했다. 결혼할 줄 알았다. 아직까지도 그때만큼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불가하다. 어떠한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4년간 만난 사람이 운명이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마음껏 사랑하지 못했다.


운명이라고 믿었던 사람과 헤어지고 난 직후 어느 추운 겨울날 혼자 해방촌에 술을 마시러 간 적이 있다. 잘못된 기억일 수도 있지만.. 술을 마시고 난 후 슬픔이 배로 차올라서 올리버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말 뜬금없이 몇년만에 건 전화였다. 앞뒤 설명도 없이 혹시 지금 만나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는 나오는 것이 불가하다고 했다. 그 대답에 난처함이 섞였는지, 아쉬움이 섞였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내 추측으로는 아마 그때 그도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었을거다.


나는 운명이라고 여긴 사람과의 관계에 실패하자마자 그 '운명' 프레임을 새로 덮어 씌울만한 사람을 찾아다녔던 것 같다. 즉, 이전에 사랑한 사람이 운명이 아니었다고 믿고 싶어서 재빨리 새로운 운명의 대상을 찾고 싶었다. 그러나 새로 알게 되는 사람들은 하늘이 정해준 인연이 아니라 내가 나의 노력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관계라고 여겨져 그 프레임이 통 들어 맞지 않았다. 회의감에 가득찬 나를 스스로 설득시키려면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했던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운명은 없어, 선택만 있을뿐

그렇게 운명을 찾아 헤메던 중, 나의 정처없음을 말리는 듯한 메시지를 접하게 된다.

요즘 뒤늦게 유미의세포 웹툰을 보고 있는데 유미가 잠에 들자 그녀의 세포 하나가 머릿속 생각을 정리해준다. 잠든 그녀의 머릿 속 수많은 생각 중에 하나, "OO이는 내 운명이다!"


그러나 유미는 이미 OO이와의 관계는 끝난 상태였고, 그것을 머리로 알고는 있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듯 했다. 세포는 그 생각 조각을 보고 "유미야, 운명은 없어. 선택만 있을뿐"이라고 다독이듯 말하며 그 생각조각을 버려준다.



다음날 잠에서 깨어난 유미는 더이상 OO를 운명으로 생각하지 않고 새로운 일상을 시작할 수 있을까? 그럴수만 있다면 나도 그런 세포가 머릿 속에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조각이라는 것이 버리고 나면 영영 흔적도 없이 없어질 수 있는건가? 그러나 현실에서는 어떤 생각이든 우리 안에 오랫동안 그 흔적을 남긴다고 본다. 설령 생각이 바뀌어도 이전의 생각이 남긴 영향은 어떤 식으로든 남아있을 것이라고 본다. 유미도 나도 그 이후로 다른 남자를 마음에 품게 되지만 아마도 우리는 운명 프레임을 번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올리버는 예외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이야기가, 지난 역사가 너무 아름답고 영화 같아서 새로운 운명 프레임을 씌울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나는 지금 그의 사소한 일상 하나 알지 못하지만.. 단 하나, 그가 운명에 배신당한 내게 더 멋진 운명으로 여겨질 수 있는 이야기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그 이유로 나는 그와의 만남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는지 모른다.


1월말 내가 올린 페이스북 사진에 그가 좋아요를 몇 개 눌러준 것을 계기로 내가 그에게 연락해 만나자고 했다. 일정을 잡다 보니 2주 뒤인 2월 15일로 날짜가 정해졌다. 그 2주동안 나는 올리버와의 재회를 얼마나 머릿속으로 그렸는지. 그의 입장은 하나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혼자 어떻게 하면 이 만남을 성사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30대가 되어서 만나는 것은 처음이라 혹시 나이 들어보이지는 않을지.. 새로운 화장품도 사고 새로운 겨울 외투도 샀다.


수년간 그를 이성의 상대로 보지 않았다가 이제와서 그와의 만남을 거대한 '운명'이라는 프레임으로 포장하려고 하는 내가 제3자의 눈에는 미련해보일 수도 있겠지. 절박해보일 수도 있겠지. 그래도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약속의 시간


그와의 약속 3시간 전부터 긴장하며 나갈 준비를 하다가 만나기로 한 장소로 출발했는데 어째서인지 그는 만나야 할 시간 2시간 전에 보낸 내 카톡을 읽지 않고 있었다. 가는 길 내내 불길한 생각이 가득 했다. 정말 원하는 것은 이상하게 이뤄지지 않으니까.. 어째서인지 그를 만나지 못할 것 같았다.


약속 시간에 맞춰 장소에 도착을 하고 나서도 그는 카톡을 확인하지 않았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는 다음 날 새벽 3시반이 지나서야 내 카톡에 답장을 했다.




(4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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