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이디함 Mar 02. 2023

2022년 - 혼술의 밤

어젯밤 올리버에게 바람 맞았다 [제4편]


(... 3편에 이어) **작가의 말: 이번 편은 여러 따뜻한 친구들의 격려로 작성하게 됐으나 바람 맞은 이후 아직까지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 많지 않은 관계로 (스포네요) 부연설명이 많고 고구마 전개일 수밖에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제 그를 만나러 갑니다

그와 만나기로 한 2월 15일은.. 추웠다.

추웠지만 절대 패딩은 입고 갈 수 없다며 새로 산 외투를 걸치고 갔다. 평상시 하지 않는 화장법으로 코쉐딩도 넣고 눈밑 글리터도 칠했다. 또 비장의 무기가 있었으니.. 여러 차례 남자들로부터


'아 향 너무 좋아..'

'(약속 끝나고) 집에 돌아가서도 내 손에서 너의 향이 나..'

'손 안 씻을거야!!!'


등등의 멘트로 검증된 입*로랑 리브르 퍼퓸핸드크림도 손, 목 안쪽과 머리카락 끝에 발랐다. 효과는 확실하나 핸드크림 치고는 가격대가 센 편이라 선물받은 것 하나 다 쓴 이후로는 다른 제품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올리버와의 약속을 잡고난 후로 바로 구매했다.


그러나 약속시간 2시간 전에 그에게 보낸 카톡 옆 '1'자가 사라지지 않았다. 신분당선을 타고 서울로 향하는 경기도 시민은 가는 길 내내 근심이 가득했으나 핸드크림 향에 취해 설레는 마음이 더 컸던 듯 하다.




약속시간

이미 알다시피 약속시간이 다 되도록 그는 카톡확인도 안 하고 전화도 받지를 않았다. 양재역 지하도를 몇 바퀴씩 돌며 거의 뭐 '지킬앤하이드' 급으로 상반되는 생각들이 머릿 속을 채웠다.



종교는 이럴 때 득이 될까 실이 될까?

나는 이 일이 그간 내가 뭔가 잘못해서 하나님께서 벌을 주신거라고 생각해버린다. 신앙심이 더 좋았더라면 신께서 내게 더 좋은 인연을 주고자 지금 시련을 주신거라고 굳건히 믿었을텐데. 안타깝게도 두 사람이 얽혀 생긴 갈등에 나는 또 혼자서 내 안에서만 원인을 찾고 있다. 이건 솔직히 올리버의 일방적인 행위였음에도.


자아 B는 요란하지만 빨리 사그라들었다. 워낙 독일에서부터 자란 자아 A가 지배적이다. 약속 시간 15분 후, 양재역에서 혼밥 혼술하기에 좋은 곳을 찾는다. 엄마한테도 올리버를 만나고 올거라고 말한 터라 차마 집에 바로 갈 수가 없었다.




저자가 직접 촬영한 혼술의 현장.. 이 막걸리가 그동안 써내려온 글의 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진여사댁:
서울특별시 서초구 강남대로34길 38 2층 진여사댁 (PPL 아님, 혜택 받은거 없음)


자리가 꽉 차서 대기해야 했지만 다행히 얼마 안 기다리고 들어갈 수 있었다. 오늘 나의 슬픔을 달랠 메뉴는 우삼겹마늘쫑숙주볶음과 독도 모리미 막걸리다. 그 식당에서 혼자 밥먹고 술마시는 사람은 나뿐이였지만 아일랜드 테이블이라 나쁘지 않았다. 술은 있는 감정을 증폭시킬 수 있으니 우선 마시기 전부터 내 감정 콘트롤을 한다. '나는 처량하지 않다. 자아B 꺼져라'


막걸리 안 섞은 상태로 위에 투명하게 두 어잔 드링킹하니 10분만에 취기가 돈다. 음식도 감동적으로 맛있다. 기분이 한결 낫다. 요즘 몸과 마음의 건강을 많이 생각하는데.. 갈등의 상황에서 그냥저냥 외면하고 혼자 조용히 손절하는 것보다 (만일 분명 상대방에게 잘못이 있는거라면) 직접적으로 상처받은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나에게 뿐만 아니라 상대방과의 관계에도 더 건강하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상대의 잘못을 따져서 주입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 기분을 알려주므로써 그가 스스로 잘못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주는거다.


장황한 메시지는 가독력이 떨어질뿐더러 오해를 낳을 수 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는 카메라를 키고 셀카 영상을 찍는다.


창피하니까 조그맣게



'Hey Oliver, I'm drinking alone at Yangjae right now. Whatever the reason is that you didn't appear today, you have to know that I'm very disappointed and very hurt. Very hurt.'

- 올리버, 나 양재에서 지금 혼술한다. 오늘 못나온거 어떻게 된건지 몰라도, 내가 너무 실망하고 상처받았다는 건 알아줘. 굉장히 상처받았어.


그에게 보내버린다.

그 이상 더는 아무런 카톡도 보내지 않는다.

다음날 술에 깨 이불킥 할 내 모습이 그려진다.





다음날 새벽 3시45분.

올리버 초상권을 지키기 위해 이미지를 재구성 했으나 내용은 토시 하나 빼먹지 않고 똑같습니다.


나는 그가 육체적으로 다쳤거나 친인척 상을 입어 정신적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상태라면 이해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용납되지 않는 이유였다. 병원에서 기절한거면 모를까.. 병원에 갈 힘이 있었던거면 카톡 하나 해서 약속을 취소할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그의 카톡을 확인하고도 답장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랐다. 오후 2시가 돼서야 답을 보냈는데..





(5편으로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2022년 - 만남의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