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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함 Mar 02. 2023

2022년/2023년 - 미련 없게 마지막으로

어젯밤 올리버에게 바람 맞았다 [제5화/최종화]


(... 4편에 이어)


나는 올리버의 카톡을 보고 난 후 화가 났었다. 하지만 그래도 역사깊은 우리 관계를 생각해서라도 최선을 다 하고 싶었나보다. 서운함은 나중에 털어놓더라도 우선 걱정해주고 싶었다.


나: 몸은 좀 어때 오빠? 괜찮아?


올: 아직 피검사 결과가 안나옴. ㅋㅋ

근데 죽지는 않을듯...

어제는....진짜로 미안합니다

날씨도 추웠다던데..


나: 병원에 아직 있는거야?


나한테는 그가 아직 병원에 있을 정도로 위독한 상황인지 아닌지가 몹시 중요했다. 그것에 따라 그의 잘못을 완전히 용서해주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하루 24시간이 지나도록 답변이 없었다. 이대로 내가 질문한 상태로 대화를 끝내고 싶지는 않아 제대로 마무리하고자 카톡을 보냈다.


"많이 아픈가보구나.. 걱정되네! 답장 너무 신경쓰지말고 오빠 편해질 때 보자. 빨리 쾌유하길 바랄게"


그 다음날이 돼서야 그는

"흐 아직 정신이 없네 ㅜㅜ 언능 컨디션 차리겠음!!" 이라고 보냈고 그 이후로 우리는 쭉 연락을 하지 않았다.


.

.

.





끝을 끝으로 인정하기까지


한 달 후

.

.

.


사람 관계는 쌍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어떤 사람들은 갈등/문제가 생길 때 모든 잘못을 자기자신으로부터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나만 잘했어도 내가 조금만 더 노력했어도 결과가 이렇지는 않았을텐데' 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괴롭힌다. (놀랍게도 완전 반대의 사람들도 있더라. 명백한 가해자이면서도 '나는 왜 아무 잘못도 없는데 왜 나한테 그래'라며 당당하게 서러움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전자에 속한다. (또 놀랍게도 우리 엄마가 바로 그 후자의 예시인데 그런) 엄마가 어느날 나와 단둘이서 저녁과 와인을 먹을 때 한 마디 한다.


엄마: 올리버랑 그래서 어떻게 된거니? 아픈건 괜찮대니?

나: 아.. 끝났어~ 집 앞에 와서 빌겠다고 말해놓고 연락도 없네. 진짜 아픈건지 뭔..

엄마: 네가 너무 쉽게 관계를 포기하는거 아니야? 네가 먼저 연락할 수도 있잖아. 자존심 부린다고 노력을 안 하는거 아니야?


아 뭐만 하면 왜 나보고 노력이 부족했대!! 나처럼 노력하는 사람이 어디있다고!! 라고 엄마한테 말하지는 않았지만 화딱지가 났다. 그런데도 나는 결국 엄마 말을 수용하고 올리버에게 또 카톡을 보내게 된다. 한글로는 가오가 상할 것 같아서 영어로 쿨한 척 보내본다.



마지막 대화


"Hey, just wanted to check if you're okay.

며칠전에 꿈에 나왔어! (사실임) 무의식적으로 계속 신경쓰였나봐. 몸 좀 나아졌길..!"


1시간, 2시간, 3시간이 지나도록 답이 없다. 이쯤되니 나도 이제 진짜 올리버에게 화가 난다.


9시간이 지나서야 답장이 왔다.



"ㅋㅋㅋㅋ 이제 괜찮음!

근데 회사에 오미크론이 퍼져서 또 다른걸로 골골중입니다;;

넌 코로나 영향없엉?"



내가 알고 싶었던 정보는 그가 계속 위독한 상황인지 아닌지였다. 남은 미련을 없애고자 확인차 연락한 것이었는데 이 대답으로 그가 위독하지 않았음이 확인됐다. 고로 답장하지 않았다.


그게 우리의 마지막 대화가 됐다.








17살의 올리버는 이미 죽었을 수도


살면서 다시 올리버의 얼굴을 마주하고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날이 올까. 나는 언제든 그가 진심으로 이 관계를 돌리고자 한다면 그를 보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수 있을텐데.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절대 지나간 인연의 소중함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내가 사랑해온 17살의 올리버는 인연의 소중함을 알고 낭만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를 보지 않고 보내온 시간동안 내가 상상한 그의 모습은 몇 년 전 즐겨본 드라마 <스타트업>에서의 남주혁이었다. 자율주행 스타트업의 CTO로서 자기 일에 열정적이고 멋있는 사람. 아무리 공대 찌질이 이미지로 멋있음을 가리려고 해도 남주혁의 잘생김이 어디 가질 않듯 내눈에는 숨은 진주 같은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34살의 그는 더는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랑해온 17살의 올리버는 이미 오래전부터 죽고 없어졌을 수도 있겠다.







그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카카오톡 프로필이 새로 바뀐 것을 보게 된다.

초상권 보호를 위해 가상으로 만든 이미지이다. 실제 이미지에는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성이 머리에도 왕리본을 달고 원피스에도 왕리본을 달고, 손에도 왕리본 반지를 끼고, 흰 통굽 구두를 신고 뒤돌아 있었고, 그녀의 손을 잡은 올리버의 뒷모습이 함께 있었다. 결혼사진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느낌이었는데 그렇다고 일상 데이트 사진인데 저렇게 흰 왕리본을 온몸에 달고 다니는 것이라면.. 너무 이상하지 않나 싶었다. 오랜 시간 그를 알고 지내왔지만 그의 럽스타그램 사진을 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우스꽝스러웠다.

아마 그는 나를 바람 맞힌 날 아프지 않았을거다. 뭐 이미 나는 그가 핑계를 댄 것뿐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으니..




아래의 노래는 올리버와의 추억들을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노래다. 

“오래된 사랑”이라는 제목과 “달빛 아래 첫키스를 했다”는 가사가 올리버를 연상시키는 노래다.



사람이 어떻게 변하냐는 말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영원히 변하지 않을테니 고쳐쓰지 말라는 말도 맞고, 한 번 변해버린 사람이 완전히 이전으로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도 맞는 듯 하다. 비단 올리버뿐만 아니라 지나간 모든 인연에 대해서 나는 내가 더 힘이 되어줬더라면 그를 더 포용해줬더라면 그가 변하지 않고 예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어쩌면 내가 변했다고 생각한 모습은 그들이 원래부터 갖고 있었지만 사랑의 호르몬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모습이었을 수도 있겠다.


영화도, 웹툰도, 드라마도 새드 엔딩을 견디지 못하는 우리들

하지만 현실에서 엔딩이 과연 해피할 수 있을까. 무엇이든 '엔딩 = 끝'은 언제든 아쉬움이 남지 않나 생각해본다. 올리버와 나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10대부터 30대까지

내 아름다운 청춘의 조각,


안녕 올리버









이글을 처음 쓰게 된 것은 2022년 4월쯤이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위해 글편집을 한 뒤 그의 프로필을 다시 확인해보았는데 사진이 없다. 그 사이 럽스타그램 사진이 없어졌다. 놀랍지도 않다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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