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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Zorba Apr 10. 2018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며_내가 모르는 아이의 사생활

(11) 첫째와 둘째 사이_엄마


 3월은 봄이지만 언제나 추위를 동반한다. 겨울은 아닌데, 또 확실히 봄도 아닌, 경계의 계절. 날씨가 추웠다 따뜻했다, 갈피를 잡기 어렵다. 이 옷을 꺼냈다, 저 옷을 꺼냈다, 머플러를 꺼냈다, 옷을 껴입었다 하게 된다. 일교차에 감기 걸리지는 않을까 하여, 옷깃을 더 야무지게 여민다. 때 아닌 폭설 소식이 전해지기도 한다. 그야말로 예측불허의 계절. 이런 날씨가 주는 긴장감은 무엇을 계획하고 시작하기에 좋은 타이밍이다. 물론 계획한다고 모든 게 순조롭진 않다. 이래저래 엄마로서 마음 몸살을 앓으며 3월을 지내다 보니, 어느새 4월이 되어버렸지만, 나에게나 우리 첫째에게나 큰 변화의 시기였던 3월을 늦게라도 기록해 보려 한다.



 올해 나의 3월은 첫째 어린이집 보내기로 시작됐다둘째 출산을 두 달여 앞두고, 나는 생후 15개월인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엄마가 되었다. ‘되었다’라고 표현한 것은 ‘어떤 일이 이전과 전혀 다른 처지로 나아간다’는 의미에서다.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되는 쪽을 택했다.’라는 의미도 있겠다. 


 겨우 걸음마를 떼고, 자기 의사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를 남의 손에 맡겨 어쩌냐는 걱정, 어린이집 교사를 해본 엄마라면 자기 아이를 결코 어린이집에 일찍 보내지 않는다는 이야기, 산달이 다가온 엄마가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처지와 그런 엄마를 둔 첫째를 안타까워하는 말 등......이 모든 말들이 우리 아이에 대한 애정에서 나온 말일 테다. 그러나 그 말들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부는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했다.      


 현실적으로 양가 부모님이 2시간 이상의 거리에서 일하고 계신 지라, 평일 중에 긴급히 출산을 하거나, 산모 건강상의 문제가 생겼을 때, 아이를 맡길 곳을 미리 마련해둬야 했다. 무엇보다, 둘째 출산 후 몸조리와 동시에 첫째까지 돌보며, 낮시간 동안 혼자 둘육아를 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그 옛날 나의 외조모는 두 살 터울로 연달아 6남매도 낳아 길러 내셨는데, 엄마로서 너무 연약한가. 그러나 그때와 달리 어린이집이라는 대안이 있으니, 고려해 보기로 한 것이다. 2년 이내의 두  아이 맘이된 나같은 사람에게는 (오후 5시까지 큰 아이를 맡아주는) 종일반 제도도 있는 걸 보니,  나 같은 이들이 많은 것 같아 위로가 됐다. 

 

 그럼에도 부모로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며 애석한 마음이 전혀 없다면 거짓이다. 하지만 첫째와 나, 그리고 남편과 곧 태어날 둘째, 그리고 양가 부모님까지 모두를 생각해 내린 가장 평화로운 결론이었다. 가족이라는 공동체 생활에서 예측가능성은 언제나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첫째는 어디서나, 누구랑 있어도 적응을 잘하는 순둥이 아니던가. 친구들과 선생님과 어울려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도 된다고 생각했다. 어린이집에 보내는 데 따른 힘듦도 있겠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좋은 면 위주로 생각하기로 했다.


 아이를 최대한 늦게 어린이집에 보내겠다는 엄마나, (매순간 아이에게 최선일 순 없는) 육아의 질을 걱정해, 아이를 잠시나마 기관에 보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나 같은 엄마나, 전적으로 양육자 위주의 선택이다. 양육환경과 그 책임이 100% 부모의 몫인 지금, 선택에 앞서 부모의 마음은 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이처럼 부모가 되고 부터는 아주 작은 선택도 내 마음에 비추어 이 선택이 어떠한 선택인가 하는 깊은 ‘성찰’부터 하게 된다. 누군가 ‘네 몸 편하고자 어린이집에 첫째를 보낸 게 아니냐’고 따져 묻는다면, 그렇다고 해야 할 처지이긴 했다. 어쨌든, 우리부부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했고, 대신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 시간에는 더 집중적으로 육아에 힘쓰기로 했다.



 더불어, 둘째를 빨리 임신한 것에 대해 첫째에게 미안해 하지 않기로 했다. 궁극적으로 '둘째 출산'은 '첫째에게 형제를 만들어 주기 위함'이 가장 큰 이유였기에. 또한 나는 둘째를 임신하지 않았더라도 첫째를 올 3월에 어린이집에 보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린이집을 보내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의 건강상의 심대한 차이를 설명하는 의학적 기반이 있다면 모를까.) 첫째는 낯가림이 없고사람을 참 좋아한다. 천성적으로 잘 웃고, 잘 먹고, 잘 잤다. 그런 첫째에게 사회생활을 더 일찍 시작하게 한 것은 그래서 잘 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첫째가 너무 잘 놀아서 오히려 걱정이라고 하기도 했다. 몸살이 날 정도로 아주 신나게 논다는 것이다.       


 실제로 어린이집을 다닌 이후 첫째는 엘리베이터에서 또래를 만나면 거의 비명에 가깝게 기뻐 소리를 지르곤 했다. 낯선 이들을 보면, 무표정으로 관찰부터 하던 아이였는데, 이제는 반갑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뮤직박스를 옆에다 두고, 스스로 음악을 선곡하듯, 좋아하는 노래가 나올 때까지 다음 곡으로 건너뛰기 버튼을 누르다가, 맘에 드는 음악이 나오면 흥에 겨워 팔을 앞뒤로 흔들고, 다리로는 리듬을 타며 음악과 한 몸이 되어 기뻐하는 첫째. 사회화가 급속히 진행된 느낌이다.  처음에는 여느 아이나 놀이환경의 변화에 좋아하다가도, 금세 힘들어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첫째는 여태까지 늘 하원 후에 기분이 좋아 보인다.           



아이의 변화 _ 내가 모르는 아이의 사생활    



 다행히 아이는 큰 무리없이 잘 적응했다. 이따금 어린이집 친구들이 양육자와 떨어져 울면, 그 감정이 전이된 듯 한 두 번 울기도 했다지만, 금세 친구들과 웃으며 잘 놀았다고 한다. 하원하면 딸을 으스러지게 안아본다. 아이 인생에서 이렇게 엄마랑 꼭 안아볼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될까. 물론 다 좋은 것만은 아닐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가 말로는 표현할 순 없지만 여러가지 힘든 걸 견디고 있는 게 엄마인 내 눈에도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즉각적으로 나타난 것은 몸의 변화다. 오후 4시 반쯤 하원 해, 아이는 5시, 6시 내리 두 번 응가를 했다. 어린이집에 가기 전에는 하루 3회 따뜻한 우유를 먹을 때마다, 규칙적으로 시간 간격을 두고 응가를 했던 첫째. 그런데 어린이집에서는 응가를 꾹 참고 있다가, 귀가 후에 연달아 두 번을 하는 눈치였다. 토끼똥 같았다. 장에 오래 머물러 수분이 거의 없는 딱딱한 응가. 집에서처럼 물이나 데운 우유를 따라다니며 제공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기저귀 발진 같은 것도 처음 생겼다. 


 알림장에 쓸까말까 망설였다. 첫째의 기저귀를 조금만 더 자주 봐주십사 하고 말이다. 유별난 엄마가 되기 싫은 마음과, 그럼에도 우리 애를 특별히 잘 보살펴 줬으면 하는 마음이 역설적으로 공존했다. 할까 말까 하는 말은 역시 안 하는 편이 낫다. 아니, 좀 더 관찰한 다음 개입하는 게 나은 것 같다. 아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발진이 사라졌고, 변비로 고생하기보다, 어린이집에 머무는 시간을 피해 집에서 편하고 여유있게 배변을 했다. 집이랑은 다른 어린이집의 온도, 습도, 낮잠시간 등 환경변화에 아이가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혹은 노느라 정신이 팔려, 응가 할 여유조차 없었는지도 모른다.      


항상 우주가 너를 중심으로 돌지 않을 수도 있어. 하지만,
조금은 불편한 가운데, 많은 걸 배우고 누리고 있어. 장하다 우리딸!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큰 변화는 낮잠에서도 나타났다.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스스로 낮잠 자는 법을 터득해 왔다. 집에 엄마랑 있을 때는 하루 두 번, 약간의 잠투정 끝에, 업어 재워야 잠들기 일쑤였던 낮잠이었다. 그러나 어린이집에서는 오전 내내 즐거운 놀이로 에너지를 충분히 발산해서인지, 선생님이 조금만 토닥여주면 쉬이 잠드는 습관을 갖게 됐다. 집에서는 주로 책을 보고, 소근육을 사용하는 활동을 했다면, 어린이집에서는 대근육을 충분히 사용하는 놀이가 많았다. 따라서 어린이집을 다닌 후에는 한동안 책보기 등 집중을 요하는 활동보다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즐거운 탐색활동이 늘어났다.      



 안 하던 말을 하기 시작하고, 블록 높이 쌓기, 스티커 떼어서 붙이기, 율동과 노래 흥얼거리며 모사하기 등 아이의 재롱은 날마다 업그레이드 되었다. 말의 용례를 정확히 인지하고 사용하는 빈도도 늘었다.      


 담임 선생님이 아이 사진을 전송해주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진다. 아이가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원하는 아이를 꼭 안아주고 눈을 맞추며, "오늘 어땠니?" 하고 아이의 표정을 살핀 다음, 비밀 일기장을 들춰보듯 알림장을 얼른 열어본다.  "아이가 가끔씩 한 마디씩 하는 걸 보니... 조금 있으면 말을 제법 잘 할 것 같다"는 선생님의 귀띔에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한다. 이렇게 세심한 담임 선생님의 기록에 안심을 하기도 하고, 11월생인 아이가 다른 3세 아이들에 비해 손이 많이 가서 민폐를 끼치지나 않나, 마음이 쓰이기도 한다. 아이에게도 내가 모르는 작은 사생활들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엄마가 없는 곳에서 웃고배우고즐기고, 견디고 있었다그 가운데 아이의 삶에서 새로운 감정들이 꽃이 되어 하나하나 피어나고 있는 것 같다     



 4월, 이제 완연한 봄이다. 거리에는 봄꽃들이 만개했다. 둘째의 출산이 3주도 채 남지 않았다. 첫째의 순탄한 어린이집 적응 덕에, 엄마는 임신 후기를 조금 더 편안하게, 둘째를 맞을 준비를 하며 보내고 있다. 곧 4인 가족의 삶이 각자 새롭게 펼쳐질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처럼 함께 살되, 또 각자 힘겹지만 삶의 여러 순간을 즐거이 이겨내는 법을 배워갈 것이다. 앞으로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고, 입학을 하고, 입사를 하고, 결혼을 하는 동안에도 때때로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은  몸살이 계속 될지도 모른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저 묵묵히 지켜보기만 해야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삶의 모퉁이를 돌때마다 우리가 ‘행복’의 방법을 함께 모색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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