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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레논 Sep 19. 2023

김치 못 먹는 토종 한국인으로 산다는 것

나의 김밍아웃 이야기

토종 한국인인데 김치를 먹지 못한다는 건 일종의 소수자로 살아가는 것과 비슷한 데가 있다. 30년의 쉽지 않았던 한국살이 끝에 난 이제서야 친한 사람들에게는 김밍아웃(김치를 못 먹는다는 커밍아웃)을 한다. 언제부터 김치를 거부해왔는지 기억나지 않을만큼 오래전부터 김치가 싫었다. 아주 어릴 때 엄마가 나를 시장에서 한 번 잃어버린 적이 있는데 김치코너에서 이야기가 길어지자 애가 그 냄새가 싫어서인지 어디론가 없어졌다고 한다. 태생적으로 김치를 거부하는 이 환장할 입맛은 앞으로의 한국살이가 험난할 것이라는 걸 의미했다. 그래서 참 아이러니하게, 김치를 그렇게나 싫어하면서도 난 평생 누구보다 진심으로 김치가 맛있게 느껴지기를 바라왔다. 김치를 잘 먹어야만 '평범한' 한국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김치를 안 먹는다는 걸 일치감치 알았던 가족 구성원들로부터는 "김치를 안 먹으면 넌 한국인이 아니야"라는 말을 숱하게 들었다. 어쩌다 외국인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김치라는 답변을 하면서 김치를 잘 먹을 때면 엄마는 TV속 박수치는 패널들과 한마음이 되어 "봐라 저렇게 핀란드 사람도 김치를 잘먹는데.." 했다. 누가 봐도 내가 생긴 것도, 나를 둘러싼 환경도 훨씬 한국적인데 김치 하나 때문에 핀란드인에게 K스러움에서 밀려버리는, 김치란 한국에서 그런 존재다.


지금도 그런 교육이 행해지는 모르겠지만 초등학교 때 급식을 받으면 잔반을 남기면 안된다는 교칙이 있어서 급식을 다 먹고 식판을 갖다놓을 때 선생님에게 검사를 맡아야했다. 김치는 물론이거니와 온갖 한국적 발효음식에 취약한 나에게, 평범한 초등학교의 급식 메뉴는 매일 다양한 형태로 고통을 선사했다. (굳이 초등학생 급식메뉴에 청국장이나 고들빼기 김치를 포함시키는 의도는 뭘까?) 그리고 정말 가혹하게도, 어떤 메뉴가 나오든 김치는 당연한듯 함께 나왔다! 그날 메인 반찬이 카레든 불고기든 미역국이든 김치는 빠지지않는다. 점심시간은 어느새 두려움의 시간이 되어버렸고, 난 참다못해 문익점 전법을 쓰면서 하루하루 버텼다. 필통에 목화솜을 들여왔던 문익점 선생님처럼 수저통에 몰래 이상한 반찬들을 매일 몰래 담아서 집까지 가져오는 것이다. 김치를 입에 넣은 채 식판 검사를 받은 후 화장실로 뛰어가 뱉어버린적도 있는데 잠시 머금고 있는 것도 끔찍해서 결국 문익점 전법에 정착하게 되었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선생님 몰래 그런 짓을 자행하느라 죄책감에 시달리고 집에서는 맨날 이상한 반찬이 담겨있는 수저통 때문에 엄마에게 잔소리를 들었다. 아마 엄마는 이러다보면 언젠가 애가 먹게 되겠지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홍석천의 부모님이 아직도 홍석천이 색시를 데려올 것이라고 기대한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ㅠㅠ) 엄마는 한동안 잔소리를 하다가 매일 그렇게 김치를 담아오는 수저통을 처리하면서 오죽하면 애가 저러겠냐 싶어서 그즈음부터는 집에서도 김치를 먹으라는 강요를 멈춘 것 같다.


정신적 고통은 제쳐두고, 매일 김치 냄새가 나는 전형적인 한국 가정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쨌든 현실적인 짜증을 동반하는 일이다. 어느 저녁인가, 아빠랑 나는 라면을 끓여서 작은 상에 놓고 중간에 김치를 놓고먹기 시작했다. 밥상 중앙의 김치는 생김치 정도가 아니라 좀 냄새가 많이 나는 특이한 김치여서(아마 발효된 콩잎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난 그 냄새에 정신이 혼미해져 도저히 내 라면을 먹을 수가 없었다. 부모님에게 혼날까봐 난 또 그 냄새가 싫다는 사실을 숨겼다. 라면 끓일 때만해도 멀쩡했던 애가 라면을 앞에 두고도 못 먹고 빌빌거리니 부모님 입장에서는 황당할 수밖에(라면을 끓여놨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속이 안 좋냐고 물어보시길래 그제서야 난 결국 사실대로 말해버렸다. 그때 아빠는 진심으로 당황하는 눈치였다. 아빠 입장에서는 그 김치가 진심으로 향긋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라면 그릇을 들고 다른 식탁에서 혼자 먹고 있는 나에게 아빠는 멋쩍게 "하핫 미안해" 하고서 다시 그 김치통을 냉장고에 넣었다. 그런데 한반도에 사는 이상 김치냄새는 짧은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는다. 집안 냉장고에서, 김치찌개를 끓이는 우리집 주방에서, 여름철 지하철에서, 한국의 웬만한 식당에서 김치냄새는 길고 진하게 지속된다. 집에서 내가 사랑하는 콜라를 꺼내먹을 때마다 냉장고에서 배어나오는 김치냄새가 다른 가족구성원들은 진정 아무렇지 않았던걸까? 매번 불쾌하게 느껴졌지만, 이것 또한 비난받지 않는 한국인이 되기 위해서는 문제삼지 않는게 좋았다. 그저 혼자서 티나지 않게 냉장고여는 횟수를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밀폐용기에 밀폐성능이 과연 제대로 작동하는 것인지 의심될만큼 김치는 락앤락 안에서도 미친 존재감을 뿜어냈다.


그렇게 대한민국에서 어찌저찌 10년을 살다가 미국 초등학교로 전학을 갔을 땐 정말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워낙 알러지가 있는 친구들도 많고 종교적인 이유로 이것저것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도시락을 싸오든지 급식에 나온 걸 먹든지 버리든지 누구도 상관하지 않았다. 꼭 할랄고기만 먹어야 한다는 히잡 쓴 애, 땅콩에 알러지 있어서 흔한 과자 하나 못먹는 애 별의 별 애가 다 있었다. 그리고 학교에선 그 각각의 사정을 모두가 최대한 지켜주려고 노력했다. 10살밖에 안되었음에도 '다양성이 존중받는다는 게 이런거구나..'를 피부로 느끼면서 학교 입학 후 처음으로 점심시간이 기다려졌다. 이토록 당연한 가치가 지켜지지 않았던 90년대의 한국 초등학교는 지금 돌이켜보면 참 무자비했다.


아빠의 짧은 해외연수가 1년만에 끝나고 한국에 돌아오자 다양성에 대한 존중 따위 전혀 없는, 검정머리에 검정 눈동자를 가진 삼십여명의 김치를 잘먹는 아이들과 다시 함께 생활해야하는 날들이 시작되었다. 한동안은 한국에 돌아와서 학교에 김치에 알러지가 있다는 거짓말을 했다. (미국에서는 특정 음식에 알러지가 있다고 밝히면 선생님들이 혹시라도 애가 그 음식을 먹게 되지 않도록 신경을 써주셨다.) 그러자 친구들과 선생님으로부터 쟤는 미국에 살다와서 김치를 못 먹는다는 오해를 샀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또 그냥 매운 것을 못 먹는다는 포지셔닝을 해서 다른 매운 음식들에 슬쩍 김치를 포함시켜 그 많은 음식들을 못 먹는다는 식으로 피했다. '위가 아파서 매운 것을 못먹는다'는 그나마 한국사회에서 받아들여질만한 핑계니까. 딱히 남한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그게 뭐라고.. 자아가 위태로웠던 사춘기 시절에는 수많은 거짓말로 나의 음식지향성을 숨겼다.


사회에 나와서는 김밍아웃을 한 사람을 딱 한 명 만났다. 지금 다니는 회사의 전 팀장님. 팀장님이 김치를 안먹으니 회식으로 김치찜을 먹으러가자! 하는 불상사가 생길 일이 없어 좋았다. 그리고 티비에서 공개적으로 김치를 안 먹는다고 <놀면 뭐하니>에서 데프콘이 얘기하는 걸 봤다. 하필이면 김장특집 방송에 불려간 데프콘이 그걸 버텨내는 걸 보는데 감정이입이 되서 많이 안쓰러웠다. 찾아보니 데프콘이 다른 프로그램들에서도 몇 번 김밍아웃을 했던데, 김밍아웃을 할 때마다 데프콘에게는 다른 출연자들의 의아한 눈빛이 예외없이 쏟아진다. <한끼줍쇼>에서는 강호동과 함께 어떤 집에 가서 밥을 먹다가 김밍아웃을 하자 강호동이 "김치냉장고도 먹게 생겨갖고"라고 얘기하는 장면이 있다. 여러 측면에서 너무나 폭력적인 말인데 어물쩡 개그로 승화되는 거 방송에서 그만 좀 보고싶다.


팀장님과 데프콘도 나와 같은 이유로 김치를 먹지 않는걸까? 소금물에 절어 흐물해진 배추와 고춧가루와 젓갈을 한 곳에 넣고, 조물조물한 후 그것들을 다시 락앤락에 몇달씩 두고두고 먹는 반찬. 나는 생배추도, 매운 것도 잘먹지만 그것들이 묘한 케미로 발효되어버렸다는 부분 때문에 먹지 못하는 것인데 다른 이들도 그런지 궁금해졌다. 예전에 페이스북에서 '오싫모'라는 오이싫어하는 모임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을 때, 연구를 통해 실제로 오이냄새가 역하게 느껴지는 유전자가 있다고 밝혀졌다는 걸 본 적이 있다. 아마 김치가 역하게 느껴지는 유전자에 대한 연구는..ㅎㅎ 적어도 한국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다.


한국에서는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너무 자연스럽게 '김치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어'라는 합의가 깔려있기 때문에, 방심하는 순간 나의 음식에는 김치가 포함되기 십상이다. 예를 들어 닭갈비를 먹고 볶음밥을 해줄 때 점원이 갑자기 다된밥에 김치를 끼얹는다든가 삼겹살을 돌판에 이쁘게 굽고있는데 갑자기 삼겹살 기름위에 김치를 턱 하고 올려주신다든가. 알밥을 시키면 김치가 기본토핑으로 들어있는 식이다. 나의 삼겹살 돌판에 김치를 얹어줬던 사람은 사실 나에게 호의를 베푼 것이다. 그러니 뭐라고 할수도 없다. 그 사람이 나쁜 게 아니라 김치를 못 먹는 사람이 너무 소수이기에 그냥 무심한 거다. 쌀국수집에서 고수 들어가는데 괜찮냐고 물어보는 것처럼 "김치 들어가는데 괜찮으세요?"라는 배려를 기대하긴 어렵다. 사회구조적으로 이러한 음식취향은 보호받을 수 없기에 스스로 나를 지키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제는 왠지 김치가 들어갈 것 같다 싶은 음식을 시킬 땐 "혹시 들어가면 빼주세요"라고 요청한다. '저 사람은 왜 이렇게 맛있는 걸 빼달라고 하지?'라는 말이 왠지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 같지만 이젠 신경쓰지 않는다.


김치를 요리조리 피해 살아온지 어언 30년, 여전히 김치가 싫지만 지난한 사회화 과정 끝에 이제 김치찌개 정도는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나에게 김치를 먹으라고 강요하는 선생님도 없고, 자취하는 나의 집 냉장고는 김치 냄새에 점령 당하지 않았다. 악몽에서 깨서 안도감이 밀려올 때처럼, 김치와 함께하느라 힘들었던 시간들을 지나 무사히 김밍아웃 포스팅을 쓰는 지금이 참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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