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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걷는여자 Jul 02. 2023

더 와이프(The Wife, 2019)

가족신화(family myth)의 견고한 캐슬을 깨뜨릴 수 있을까?


깊은 새벽, 잠들지 못하고 초조함을 달래기 위해 우걱우걱 과자를 먹는 노인이 보인다. 그는 미국 문학의 거장으로서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기다리던 중이던 작가‘조셉 캐슬먼’이다. 아내 ‘조안 캐슬먼’은 작가 남편의 성공을 위해 일평생 헌신적으로 뒷바라지를 했다. 마침내 울리는 전화 한 통화, 수상이 확정되자 노부부는 손을 맞잡고 아이처럼 폴짝폴짝 침대에 뛰어올라 기쁨을 함께한다.


 그러나 “내가 노벨상을 타게 됐어!”라는 남편의 말에 아내 조안의 기분은 곤두박질친다. “우리”가 아닌 “내가”라니! 남편에게는 드러나게 내색하지 않았지만 조안은 점점 회의감 속으로 빠져든다.


 조안과 조셉은 학생과 교수로 처음 만났다. 조셉은 조안의 문학적 재능을 일찍이 알아보았지만, 조안은 그 시절 남성 위주의 보수적인 문단에서 버티어 낼 자신이 없었다. 유부남이던 조셉은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문장을 인용하며 조안에게 추파를 던졌고, 조안은 강렬한 끌림을 느끼며 그에게로 점점 빠져들었다. 그리고 조안의 문학적 재능과 조셉의 지위는 한덩어리가 된다. 조안이 쓴 소설을 조셉의 이름으로 출판하여 문단계에서 커다란 명성을 얻게 된 것이다.


 노벨문학상은 사실 아내 조안이 타야 마땅한 것이다. 조셉은 조안의 재능으로 거장이라는 명성을 얻은 것이다. 그런데도 조셉은 대외적으로 “우리 아내는 전혀 글을 쓰지 않는다”고 말한다든지 매력적인 여성을 만나면 조안에게 추파를 던졌을 때와 같은 수법으로 다른 여성을 유혹한다. 심장병으로 수술을 받았으면서도 시도 때도 없이 과자 부스러기를 여기저기 흘리며 단것을 먹어댄다. 이런 조셉의 뒷바라지나 하는 사람으로 평생 자신을 낮추고 살아온 조안은 문학인으로서 최정점에 오른 순간 “우리”가 아닌 “내가”라고 말하는 남편의 말로 내면에 깊은 균열을 경험한 것이다.


 ‘거장의 가족’이라는 명예로운 ‘신화’를 지켜내기 위해 조안은 백발의 나이가 되도록 자신의 삶을 희생시켰다. 실제 상담용어 중에 ‘가족신화(family myth)’가 있을 정도로 각 가정마다 오랜 세월 반복되는 암묵적으로 정해진 불문율 성격의 신념과 기대가 있다. 신화(myth)이기 때문에 현실을 왜곡하여 가족 구성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력을 주기도 한다. 영화는 이것의 극단을 보여준다. 조안은 가족신화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가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이제야 자각한 것이다.


 노벨문학상 시상식에서 남편 조셉은 ‘이 모든 것은 아내 덕분이며 문학의 정신적 원천은 아내’라고 조안을 추켜세우지만, 조안은 오히려 환멸감을 느끼고 시상식 자리를 떠난다. 그리고 조셉에게는 결별 선언을 한다. 어린애처럼 조안에게 의지하며 살아온 조셉은 충격 때문인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이 부부는 남편과 아내의 모습이기보다는 충동조절을 하지 못하는 아이와 이를 보살피는 엄마의 관계처럼 보였다. 독립적인 인격과 인격의 만남인 성숙한 성인의 관계가 아닌, 둘이 한 덩어리가 되어 '의존관계'를 형성하는 영유아 시기의 모자 관계 모습으로 말이다. 조셉이 ‘우리’가 아닌 ‘내’가 상을 받았다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때, 가 있고, 우리도 있는 반면, 의존 관계에서는 니가 나이고, 내가 너이기 때문에 거기엔 ‘나’만 있을 뿐이다. '나는 나이고, 너는 너'로서 서로 존중할 수 있을 때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이 아닌 "우리"로서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과연 조안은 그동안 남편의 이름으로 내보인 소설은 사실 내가 쓴 글이며 이제라도 당당히 작품 활동을 하고 싶다고 견고한 가족신화를 깨드릴 수 있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각자의 상상에 맡기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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