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흑백필름 Oct 02. 2023

쿠팡 제국주의에 밀리는 네이버 연합군

수영복을 빠는데 안감이 해져 있었다. 이 수영복을 입은 지도 5년이 넘었으니 해질 때도 되었다. 수영복을 새로 하나 사려고 쿠팡에 접속했다. 시크릿모드를 켰다. 쿠팡은 과거 나의 검색 기록들을 감안해서 리타겟팅 노출이 되기 때문에 첫 검색은 시크릿모드로 한다. 검색 결과 상단에는 대부분 처음 보는 브랜드였다. '베이직엘르'가 많이 보였다. 엘르 수영복은 알지만 '베이직엘르'는 어떤 브랜드일까? 엘르 수영복을 만드는 동인스포츠에서 나온 건 아닌 거 같았다. 상단에 아레나나 나이키, 엘르 등의 브랜드가 있으면 바로 구매하려고 했는데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쿠팡을 닫고 네이버쇼핑에 접속했다. 네이버에서 '남자실내수영복'(네이버 월간검색량 6,530회짜리 키워드다)을 검색하니 나의 예상처럼 아레나, 나이키, 미즈노 등 들어본 브랜드가 상단에 노출되었다. 아레나 수영복을 그동안 입어서 이번에는 나이키를 구입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고른 후 사이즈 옵션창을 눌렀다. 30(M), 32(L), 34(XL)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M은 너무 타이트할 거 같고 XL는 클 거 같아서 L를 선택했다. 이틀 후 집에 온 수영복을 먼저 본 아내가 작아 보인다고 그랬다. 그러면서 '왜 M 사이즈를 샀냐?'고 물었다. 확인해 보니 수영복 케어라벨에는 32(M)이라고 붙어 있었다. 사이즈 정보가 상세페이지와 다른 것이다. 나는 이 업체가 다음 3가지 경우 중 몇 번째 대응을 할지 궁금했다. 


1. 사이즈 정보가 잘 못 된 것을 사과하고 맞교환을 해준다. 그리고 사이즈 옵션 정보를 수정한다. 

2. 표기가 잘 못 되긴 했지만 사이즈는 맞다고 주장하며 택배비 일부 부담을 요청한다. 그리고 사이즈 정보를 수정한다.

3. 사이즈가 맞다고 주장하고, 사이즈 정보를 수정하지 않는다.


나는 왠지 3번이 될 거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네이버쇼핑 판매자라서 그랬다. 택배 접수를 해서 반품 기사가 제품을 가져가고 1주일이 지나도록 문자도 전화도 없었다. 이상한 마음에 네이버쇼핑 주문목록에 접속해 보니 톡톡 메시지 한 줄이 와 있었다. '하아... 문자 한 통 보내주지...' 그 내용 역시 우려처럼 3번이었다. 영어표기는 잘 못 되었으나 숫자 표기가 기준이기 때문에 교환하려면 배송비를 내야 한다고 그랬다. 원래는 한 치수 큰 걸로 변경하려고 했으나 기분이 상해서 반품비 차감 후 환불해 달라고 그랬다. 그리고는 쿠팡에서 비슷한 모델을 구입했다. 좀 억울했고 불쾌했다. 다시는 이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며칠 후 그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는데 여전히 32(L)로 표시되어 있었다. 이걸 왜 32(M)이라고 제품의 케어라벨과 동일하게 변경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쿠팡에서 구매경험은 이와 천지차이다. 며칠 전 대학교 3학년인 둘째 아들의 21살 생일을 맞아서 애플 블루투스 헤드셋인 에어팟 맥스를 쿠팡에서 구입했다. 선물을 받은 아들은 아주 마음에 들어 하면서 컬러를 변경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 당연히 가능했다. 그 즉시 쿠팡에서 스카이블루 컬러로 재구매를 하니, 다음날 아침에 도착했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제품을 반품 신청을 했는데 추석 연휴 기간 중이라서 혹시나 싶어 제품을 문 밖에 내놓지 않았다. 그런데 시골집에 있는 연휴 동안 쿠팡에서 반품 회수를 하러 2번 왔다 갔다. 2번 헛걸음을 한 후 반품 접수가 자동 취소 되었다고 안내 메시지가 왔다. 좀 미안했다. 서울로 복귀해서 반품 재신청을 하고 제품을 내놓으니까 그다음 날 바로 가져가고 전액 환불이 되었다.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고 편리하다. 불쾌한 경험은 전혀 없었고 헛걸음한 쿠팡 기사님께 오히려 미안했다. 이 모든 비용은 무료였다. 만약 동일한 상황이 네이버나 CJ대한통운을 통해서 진행되었다면 어땠을까? 반품 신청하고 물건을 내놓지 않으면 어떡하냐고 싫은 소리를 꽤 들었을 거 같았다. 


1주일 사이 벌어진 상반되는 2건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나는 제국주의와 연합군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쿠팡은 제국주의다. 대한민국을 점령하려고 일사불란하게 군사를 훈련시키고 영토를 넓히고 있다. 작은 손실을 입더라도 대의에 충실하며, 하나의 목표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적군이나 반항하는 세력에는 인정사정없이 보복한다. 영토 확장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잘 정비된 정규군이 냉철하고 냉정하게 싸운다.


반면 네이버는 연합군이다. 3개 군대가 손을 잡았다. 플랫폼 역할을 하는 네이버와 그곳에 상품을 채우는 판매자, 이를 배송하는 CJ대한통운으로 구성된 연합 군대다. 무기 생산을 맡고 있는 판매자와 전략을 펼치는 네이버, 그리고 이를 공급하는 택배사가 힘을 모아 쿠팡과 맞붙고 있다. 


일견 명확한 역할과 책임 분담으로 효율성이 좋을 거 같다. 각 분야의 강자들이 손을 맞잡은 거 아닌가. 하지만 나의 수영복 구매경험처럼 연합군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내재되어 있다. 겉으로는 쿠팡군 타도라는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실제 3개 군대는 각각 다른 속내를 가지고 있다. 판매자는 사실 네이버든 쿠팡이든 상관없다.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이다. 게다가 네이버쇼핑에서 판매하고 있는 대다수의 소상공인들은 농민군처럼 전열이 정비되어 있지 않다. 곡괭이며 낫이며 무기를 들고 나왔지만 제대로 훈련되어 있지 않은 비정규군이다. CJ대한통운 역시 택배 사업자로서 한계를 지니고 있다. 택배 사업 자체로 확실한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 그리고 일정 부분은 통제되지 않는 지입기사들과 계약을 통해 움직이고 있다. 노조와 갈등의 불씨도 남아 있어 혁신이 어렵다. 


네이버는 공정한 검색 사이트라는 정체성에 발목이 묶여 있다. 쿠팡의 노출 기준은 하나다. 쿠팡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이다. 이익 최적화 알고리즘이다. 반면 네이버는 '공정'과 '원칙'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판매량과 클릭수, 리뷰수, 최신성 등 랭킹 원칙에 맞춰 알고리즘이 짜져 있다. 그리고 그 빈틈으로 가구매와 트래픽 등 불법 마케팅이 판친다. 쿠팡과의 힘겨루기에서 밀리면서 브랜드 위주로 쇼핑을 재편하고 있지만 대응이 늦다. 


연합군은 통제되지 않는다. '쿠팡 타도'라는 깃발 아래 모였지만 속셈은 다 다르다. 원래 조직은 한 회사이더라도 하나의 비전으로 통제하기 힘들다. 강력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면 조직은 금방 사일로에 빠진다. 상위 조직의 목표가 명확하지 않을 경우 하위 조직은 해당 조직의 이익부터 챙기게 된다. 우리 조직이 지향하는 북극성이 어디인지 명확하게 정의해 놓아야 한다. 최상위 의사결정자부터 실무 조직까지 목표를 얼라인해야 한다. 쿠팡은 단 하나의 비전만 가지고 있다. '고객 만족'. 고객들이 '쿠팡이 없다면 얼마나 불편할지?' 체감할 정도의 고객 만족을 지향한다. 이는 현실화되고 있다. 다른 쇼핑 플랫폼 한두 개가 없어진다고 우리가 불편할까? 하지만 쿠팡이 없어진다면 고객들은 상당히 불편해할 것이다. 


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쿠팡은 놀라운 '고객 경험'과 국내 '최저가'라는 무기를 휘둘렀다. 이 중 '최저가' 카드는 지난해 말부터 쿠팡 로켓배송 입점업체 수수료가 40%~50%까지 오르면서 흔들리고 있다. 나는 쿠팡이 최저가 경쟁에서 밀릴 경우 네이버가 상대적으로 수혜를 볼 지도 모르겠다고 예상한 적이 있다. 결과적으로 이는 틀렸다. 


이는 내가 구매 경험이 가격보다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미친다는 걸 간과한 탓이다. 우리는 인터넷에 500원에 판매하는 500ml짜리  삼다수 생수를 편의점에서 그 어떤 저항도 없이 흔쾌히 1,100 원을 주고 사 마신다. 2배 더 비싼데도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편의점의 알바가 불친절하거나 태도가 안 좋거나 그 편의점이 청결하지 못할 경우에는 발길을 끊는다. 구매 경험이 가격보다 영향력이 확실히 더 크다. 


특정 카테고리에서 쿠팡은 네이버보다 더 비싸졌다. 그리고 결국 고객들은 이를 인지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별로 개의치 않을 거 같다. 생수처럼. 대다수 고객들은 조금 비싼 건 이해해도 불쾌한 경험, 귀찮은 분쟁에 휘말리는 걸 끔찍이 싫어한다. 수영복 사이즈 문제로 싸우기 싫어하는 나처럼. 그냥 그곳을 떠날 뿐이다. 


좀 비약하자면 쿠팡 제국주의와 네이버 연합군은 애플과 재래시장의 유형과 닮았다. 애플이라는 제국 역시 극도의 심플함을 기반으로 한 완성도 높은 제품이라는 하나의 가치를 위해 단호함을 선택했다. 앱 개발자들과 분쟁이 생기고, 플래시를 삭제시켜서 어도비와도 싸웠다. 개인정보 추적을 막아서 메타와도 소송 중이다. 최고 수준의 제품을 선보이기 위해 모든 서비스를 통제한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고객들에게 사랑받는 길이라고 믿고 있다.


반면 지자체나 중앙정부에서 하는 재래시장 살리기는 이와 반대다. 우리 회사가 있는 성수동은 수제화 거리 특화 지역이다. 하지만 내 주변 그 어떤 이도 수제화를 사러 이곳을 방문하지 않는다. 성수동이 핫플인 건 수제화와 아무 상관없다. 예쁜 카페와 이색적인 맛집이 즐비하고 매력적인 브랜드들의 플래그십을 찾아서 사람들이 모여든다. 오히려 수제화 전문점이 이방인처럼 어울리지 않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황학동 벼룩시장이나 동대문 풍물시장도 마찬가지다. 민의를 수렴해서 정책을 편다는 취지는 좋다. 하지만 연합군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탓인지 행정적으로 만들어진 시장에는 방문하고 싶은 '매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특색 있는 맛집들이 포진해 있는 광장 시장이 100배 낫다. 


비즈니스든 정치이든 제국주의가 더 파워풀하다. 빠르게 의사결정을 해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다. 명확한 공통의 비전을 바라보며 목표를 향해 달려갈 수 있다. 다만 이 모든 장점을 살리려면 딱 하나의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의사결정자인 대표의 리더십. 이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큰 비전과 명확한 목표, 비즈니스 인사이트와 조직 장악력. 강인함과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리더가 꼭 필요하다. 그러지 못할 경우 제국주의는 극심한 혼란에 빠지다가 붕괴된다. 그래서 정치는 짧고 강력한 제국주의보다 느리지만 오래가는 민주주의 형태로 발전해오고 있는 게 아닐까.


비즈니스에서는 제국주의가 얼마든지 가능한다. 강력한 리더십 아래 모든 서비스를 수직계열화해서 고객에게 최고의 만족을 주기 위해서 전 부문을 통제할 수 있다.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리더의 혜안이 있다면 제국주의보다 강력한 시스템은 없다. 그래서 나는 한편으론 쿠팡 제국주의가 두렵고 네이버 연합군이 무력해질까 봐 걱정이다. 우리처럼 브랜드를 가진 제조사 입장에선 특정 플랫폼의 독주보다는 플랫폼 간 경쟁하는 구도가 여러모로 낫다. 


연합군은 명분을 내세우기에는 좋다. 서로 잘하는 부분을 살려서 더 큰 그림을 그려보자는 대의가 얼마나 그럴듯한가. 하지만 동업이나 제휴가 그렇듯 이는 허울일 뿐이다. 어찌 보면 삼국시대 나당 연합군처럼 혼자서 제 한 몸 지키기 힘든 상황에서 동상이몽으로 연합이라는 이름만 쓸 뿐, 결국 갈등이 드러날 것이다. 네이버는 CJ와 지분 교환까지 해 가며 커머스 연합군을 원팀처럼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엄연하게 이해관계가 다른, 다른 회사일뿐이다. 그리고 판매자들은 또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서비스 만족도에 따라 인센티브와 페널티를 주며 시스템으로 개선시켜 나간다고 하지만 한계가 분명하다. 


고객들의 구매 경험에 영향을 주는 건 크게 4가지다. 상품, UI, 배송, CS. 현재 네이버는 이 중 UI 외에는 통제 불가능하다. 상품과 CS는 여전히 통제되지 않는 판매자들의 몫이다. 수영복 팬츠 한 장 사면서 나는 잘못된 상품정보와 불친절한 CS 2가지를 동시에 경험했고 이는 판매자가 아니라 네이버 쇼핑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네이버와 CJ에서 공통으로 하고 있는 '내일도착' 서비스 역시 문제가 많다. '내일도착' 서비스의 10% 정도가 내일 도착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클레임에 대한 상담은 CJ에서 하지 않고 판매자가 한다. 연합군은 이게 문제다. 역할과 책임을 아무리 명확하게 한다고 하더라도 회색 지대는 존재하고 이곳에서 고객 불편은 한층 가중된다. 


나는 아직 수영복 반품 배송비를 입금하지 않았다. 교환을 할지 반품을 할지 결정을 못한 탓이다. 그 상품이 마음에 들어서 교환을 할까 고민하는 게 아니다. 네이버는 반품을 하면 리뷰를 남길 수 없다. 교환 후 나 같은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정의의 사도처럼 부정 리뷰를 등록할지, 좋은 게 좋은 건데 뭘 또 그렇게 까지 해야 하나 모른 척 넘어가는 게 나은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사실 내가 전자를 선택한다면 나는 정의의 사도가 아니라 감정 통제에 실패해서 분노를 표출한 것이고, 후자의 경우 판매자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그냥 귀찮아서 반품한 것인 게 솔직한 이유라고 봐야 할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번 수영복 팬츠의 전장에서는 쿠팡 제국주의가 또 한번 승전보를 울린 건 분명한 사실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