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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흑백필름 Dec 10. 2023

북섬 6박9일 4인 가족여행 7일째_통가리로&와이토모

아침에 일어나니까 세상이 온통 새하얗습니다. 밤새 눈이 내렸는지 제법 눈이 쌓였습니다. 바깥에 나와보니 맨발 발자국이 보입니다. 어제 그 히피족이 맨발로 이 눈들을 밟고 다녔나봅니다. 밥을 하는 동안에 둘째애가 눈사람을 만들었습니다. 눈이 잘 뭉쳐져서 금방 만듭니다. 리셉션에 가서 2~3시간이라도 망가누이를 트레킹 할 수 있는 코스를 알려달라고 하니까 폭설로 인해서 전코스가 다 close 되었다고 합니다. 답답한 마음에 애한테 통역을 시켜서 그래도 우리는 산으로 갈거다. 알려달라 그러니까, all~ close 라고 합니다.


▲눈이 많이 내려서 금방 눈사람이 만들어집니다. 동생이 만든 눈사람을 보자마자 큰 애가 단칼에 눈사람을 해체해버리긴 했지만.


캠퍼밴으로 돌아오니까 애엄마는 운동화도 젖고 그러는데 포기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불굴의 의지로 일단 산에 오르기로 합니다. 아들 두넘은 따끈한 온기가 있는 캠퍼밴에서 나오기 싫어합니다. 살살 구슬려서 데리고 나옵니다. 조금 올라가니까 옆길로 트레킹 표지판이 나옵니다. Silica Rapids 1hr / whakapapaiti Hut 2hr 이라고 적혀 있길래 실리카 래피드로 향합니다. 1hr이라고 적혀 있어서 한 30분 걷다가 힘들면 중간에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입구로 들어가서 한 5분쯤 가니까 한 무리의 등산객이 돌아옵니다. 우리 말고도 이길을 걸은 사람이 있다는데 용기를 내어서 전진합니다. 아들 두넘은 투덜대면서 뒤에서 눈뭉치를 계속 던져댑니다. 조금 걷다가 되돌아가려고 했는데 설경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언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멋집니다. 온 천지가 새하얗습니다. 내킨김에 실리카 래피드까지 꼭 가기로 결심합니다. 산길을 걷다가 평지를 걷다가 눈보라를 좀 맞다가 하다보니 계곡물도 보이고 마침내 실리카 래피드에 도착했습니다. 화산지대처럼 붉은색 바닥에 강물이 흐르는 곳이었습니다. 그곳 근처 정상에 올라가서 준비해 가지고 간 초코파이를 나눠먹었습니다. 눈길이라서 실제로는 1시간 반 넘게 걸린 거 같습니다.


 ▲온통 눈천지.




 ▲중간 중간 장소 소개 푯말이 있습니다.



▲도착할 때 다 되어서 애들이 힘들다고 드러눕습니다.



▲발이 눈속에 푹푹 빠집니다. 설경 트레킹 제대로 했습니다.

서둘러서 내려갑니다. 오늘 와이토모에 도착해서 블랙워터 래프팅을 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가이드북에 보니까 마지막 레프팅이 3시인데 아무래도 시간이 까딱까딱 할 거 같습니다. 내려갈 때는 거의 뛰다시피 해서 내려갔습니다. 도착하자 마자 바로 차를 출발시켜서 근처 주유소에서 주유를 한 뒤에 바로 와이토모로 달렸습니다. 

시간을 보니 한 10분 정도 늦을 것 같습니다. 양해를 구해보려고 애한테 시켜서 10분 정도 늦을 거 같은데 좀 끼워주면 안 되냐 물어봤습니다. 근데 블랙워터 래프팅 쪽에서 '뭔 소리냐. 예약 꽉 찼다. 내일 오전까지 예약 다 차 있으니 하고 싶으면 내일 오후에 해라' 이릅니다. 헉 당황했습니다. 뉴질랜드 비수기라고 해서 오늘까지 단 한번도 예약없이 모든 걸 다 순조롭게 했는데, 블랙워터 래프팅은 예약을 해야 한다니... 

애한테 '우리 내일 오후에 귀국하는 뱅기 탄다. 빈자리 좀 만들어 달라. 아니면 옆에 꼽사리 끼여서라도 태워달라'라고 통역을 맡겼습니다.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내일 오후 말고는 예약이 다 차 있으며, 내일 오후 예약할거면 지금 말하라고 합니다. 달리면서 와잎이랑 상의를 합니다. 그래도 일단 가볼까? 아니면 말이나 타러 갈까? 그러다가 또다시 불굴의 한국인 정신이 되살아나서 일단 블랙워터 래프팅 장소로 갑니다. 오후 3시 15분쯤 도착합니다. 

가서 내일 오전 첫 프로그램이라도 예약해볼려구 물어봅니다. 내일 오전 9시는 안 되고 10시 반인가 3자리 있다고 합니다. 내일 귀국이라서 시간 계산을 해 보니까 그 시간 걸 타면 엑티비티 3시간+ 오클랜드까지 3시간. 도저히 오후 4시까지 밴 반납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9시걸 해 달라고 조르는데 9시꺼는 빈자리 하나 없이 다 찼다고 합니다. 그럼 지금이라도 태워달라고 하니까 2자리가 만들어본다고 합니다. 오호~ 

그래서 이번엔 대표선수를 와잎이랑 둘째넘으로 선택해서 타기로 합니다. 가이드북에서 사진을 보고 우리 4명 모두 통통거리는 튜브를 타고 아름다운 반딧불을 보면서 여유롭게 구경하고 올 줄 알았습니다. 와잎이랑 둘째넘도 어제 심하게 엑티비티를 한대다가 오전에 트레킹도 하고 해서 평화롭게 반딧불 구경을 하는 기대로 떠납니다. 4시 다 되어서 출발했습니다.

▲유유자적한 표정으로 출발!


와이토모 홀팍이 바로 옆에 있길래 저랑 큰넘은 홀팍에 가서 계산도 하고, 집도 좀 치우고, 전 여행기도 하나 올리고 그럽니다. 이번 여행 중 처음으로 3시간 동안 휴식을 취했습니다. 이번 여행 모토가 여유롭게, 느리게였는데 어찌된건지 정신없이 바쁜 여행이 되어버렸습니다. 푹 쉬고 나니까 딴 곳에 와 있는 기분입니다. 7시가 다 되어서 와잎을 데리러 캠퍼밴을 도로로 끌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전 이번 여행에서 가장 엑티비티한 경험을 합니다.  

도로를 아무 생각없이 한국처럼 오른쪽 차선으로 시속 80 정도로 달립니다. 겨울밤 7시니까 깜깜합니다. 저 앞에 차가 한대 빠른 속도로 달려옵니다. 무시하고 저도 열심히 밟습니다. 근데 그 차가 가까이 오는데 역주행을 하고 있는 겁니다. 운전기사가 미쳤는지 제가 달리는 차선이랑 똑같은 방향에서 아주 빠른 속도로 저에게 달려옵니다. 저는 핸들을 있는 힘대로 급히 왼쪽으로 돌렸습니다. 그런데 그 미친 기사도 놀래서 그러는지 저처럼 왼쪽으로 팍 꺾습니다. 저는 또 당황해서 바로 오른쪽으로 다시 홱 꺾었습니다. 정말 아슬아슬하게 스치 듯이 지나갔습니다. 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고 이제 살았구나 싶습니다. 그제서야 제가 큰 사고를 치고 있다는 생각이 재빨리 듭니다. 그 사람이 미친게 아니라 제가 미쳤습니다. 제대로 역주행을 했습니다. 뉴질랜드 여행와서 죽을 뻔 했습니다. 

블랙워터 래프팅 장소에 가서 좀 기다리니까 와잎이랑 둘째넘이 돌아오는데 실성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무시무시한 경험은 처음이라고 합니다. 둘다 겁이 많은데 동동거리며 물장구 치면서 반딧불 보는 줄 알고 갔는데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급류를 타면서 3시간 동안 물속을 헤쳐서 동굴 탐험을 했다고 합니다. 둘째넘은 물도 꽤 많이 먹은 눈치입니다. 전날 비가 많이 와서 급류가 쎘나봅니다. 같이 간 외국인들은 제대로 즐겼다고 아주 흡족해하는 표정입니다. 가장 무섭고 스릴있는 엑티비티라고 왜 유일하게 블랙워터 래프팅만 예약이 꽉 차 있는지 알 것 같다고 합니다. 둘째는 번지점프보다 10배쯤 무서웠다고 합니다.


 ▲동동거리며 반딧줄 보는 게 아니라 급류 타기 엑티비티일 줄이야. ㅋ




 ▲잠시 동굴에서 화이팅을 다짐 할 때. 쉬는 곳인데도 급류가 장난 아닌 듯.



▲3시간만에 사람이 얼이 나간 듯 이렇게 바뀌어서 돌아옵니다.


저도 한마디 해줬습니다. 블랙워터 래프팅보다 10배나 무시무시한 살아있는 엑티비티 방금 하고 왔다고. 역주행 하다가 죽다가 살아났다고. 

숙소에 돌아와서 생존 기념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오늘이 뉴질랜드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네요. 모든 재료를 다 키친으로 가지고 가서 요리를 해 먹었습니다. 살아있다는데 안도감을 느끼며,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으며, 역주행과 블랙워터 래프팅 중에 뭐가 더 무서운지 말도 안 되는 입씨름을 하며 뉴질랜드의 마지막 밤을 보냅니다.

▲살아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며, 마오리족 버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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