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카로 10박 11일 동안 호주 동부 로드트립을 다녀왔다.
태초의 자연을 그대로 품고 있는 광활한 대지와 파도의 포말이 눈부셨던 동부 해안의 절경이 눈에 선하다. 아내와 나는 1층 침대에, 장성한 아들 둘은 2층 침대에 누워 철썩 철썩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가 잠들곤 했다. 어떤 날은 천장에 톡톡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었고, 어떤 날은 숲속 새떼들의 지저귐을 들으면 일어났다. 깊은 숲속에 자리잡고 캠핑 체어에 앉아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남반부의 별자리는 아름다웠다. 아들과 나눈 망원경의 역사와 별자리의 변화와 우주의 탄생과 그 신비로움에 관한 대화는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밤길을 산책하다가 포섬 무리를 만나고, 숲길을 달리다가 껑충껑충 뛰는 캥거루를 발견하는 놀라움은 호주에서만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10년 전에 뉴질랜드 북부로 캠핑카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당시 연년생 아들들이 각각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1학년이었다. 그 여행은 아내와 나를 포함해 우리 가족 모두에게 그 어떤 이견없는 최고의 여행으로 손꼽혔다. 애들 입시에 코로나에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다시 캠핑카 여행을 계획했다. 세계에서 캠핑카 여행 환경이 가장 좋은 곳이 뉴질랜드와 호주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뉴질랜드는 한번 다녀왔기에 호주로 결정했다.
마음 같아서는 1달 정도 다녀오고 싶었는데 가족들 사이의 일정이 맞지 않았다. 2주 정도는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거 같았는데, 군입대를 앞둔 둘째 아들의 입영날짜가 미정(2월 중 입대로 공지가 날라왔다)이었다. 안전하게 10박11일의 기간으로 비행기를 예약했고, 대학 학회 일정이 있었던 큰아들은 하루 이틀 먼저 귀국할 수 있다는 조건으로 스케줄을 잡았다. 짧다는 생각이 좀 들긴 했지만 일주일 정도 다녀온 이들도 있어서 이를 위안으로 삼았다. 실제 다녀와 보니 2주 정도 기간이면 보다 여유롭게 즐길 수 있을 거 같았다.
호주 캠핑카 여행에는 딱 2가지가 필요하다.
- 항공권
- 캠핑카
하나를 더 꼽자면 용기.
실제 출발 전날까지 이 두 가지만 준비한 탓에 아내한테 '우리 여행 가는 거 맞냐'는 얘기를 들었다. 출발 전날까지 급한 일처리를 한다고 여행 준비를 거의 못 했다. 그 탓에 첫날은 캠핑카 머물 곳을 예약하지 못해 애를 먹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호주 캠핑카 여행에는 항공권과 캠핑카만 있으면 누구나 자유롭게 떠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당연히 챙겨야 할 것과 챙기면 좋을 것들은 아래와 같다.
- 여권
- 해외에서 사용가능한 신용카드 (현금은 필요없음)
- 영문운전면허증(혹은 국제운전면허증)
- ETA(전자 여행허가서) 신청
- 구글맵, 우버, thl 등 정보 앱
여권과 신용카드는 기본이니까 생략하고 나머지는 아래에 좀 더 상세하게 내 경험을 담아 설명하겠다. 준비없이 떠난 여행이라서 간혹 난처할 때도 있었지만 그만큼 자유로웠다. 매일 전날 밤이면 캠핑 체어나 침대에 모여 다음날 어디로 향해서 무엇을 할 지 상의했다. 갑자기 혹해서 들린 곳도 있었고, 마음이 변해서 스킵한 곳도 있었다. 어쩌면 무계획이 계획이었다.
호주를 가기 전에 짬짬히 구글링을 했지만 생각보다 유익한 자료가 적었다. 10년 전 뉴질랜드 캠핑카 여행을 갈 때는 네이버의 모 카페를 활용해서 상당히 많은 정보를 얻었고, 고마운 마음에 나도 리뷰를 작성해서 남겼었다. 이번엔 네이버 카페까지 찾아볼 여력을 안 되었고, 그냥 구글링 몇 번과 운전 중 유튜브 영상 몇 번 본 게 내가 출발 전에 얻은 모든 정보였다. 아내는 10년 전에 사 두고 책장 어딘가에 있던 여행책자를 찾아서 틈히 보는 거 같았다. 이번 여행을 통해 통해 내가 얻은 정보와 경험을 정리해 보겠다.
- 항공권
저가 항공사인 제스타를 이용했다. 갈 때는 밤비행기로, 올 때는 낮비행기로 돌아왔다. 운항시간은 9시간. 저가항공사로 장거리 비행을 할 경우엔 절대 밤비행기를 타서는 안 되는 걸 배웠다. 좌석이 불편해서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돌아오는 주간 비행은 즐거웠다. 앞으로 야간 비행시에는 국적기나 좋은 항공사를, 저가 항공은 반드시 주간에 이용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다만, 아직 팔팔한 애들은 잠자는 게 불편하지 않았다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야간비행을 계속 이용할 거라고 그랬다.
제스타 항공권을 예매할 때 유료 기내식 선택란이 2개가 있었는데, 이게 첫번째 식사와 두번째 식사를 고르는 거였다. 야간 비행의 경우 두번째 거를 골라야 했는데 그걸 몰라서 밤 12시에 식사가 나와서 먹지를 못했다. 시간대와 별개로 젯스타 기내식은 맛이 없으니, 유료 기내식을 사전에 예약하기 보다는 공항에서 입맛에 맞는 먹거리를 구매해가는 걸 추천. 물이나 커피 등 모든 게 다 유료니 미리 준비해 가는 게 좋다.
의자 앞에 달린 모니터로 영화 등을 보는 엔터테이먼트 이용료는 13달러. 갖고 있는 신용카드를 모니터 아래에 긁으면 된다. 영화 한편만 보려면 10달러. 명작은 없으나 그럭저럭 들어본 영화는 좀 있었다. 다만 한글 자막이 없으며, 한글 영화는 '창애'와 '찬란한 나의 복수' 2개가 있었다. 한국이라면 절대 보지 않았을 영화들인데, 막상 보니까 은근히 재미있었다. 나를 제외한 일행은 모두 출발 전 집에서 패드와 폰과 노트북에 영화를 다운 받아서 보고 있었다. 기내에 전기는 무료로 공급이 된다.
기내에 전파차단 장치가 설치 되어 있는 거 같았다. 기내에 들어간 순간부터 LTE와 와이파이 등 모든 게 접속이 안 된다. 비행기에서 나오는 순간 바로 인터넷이 활성화되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출발시나 도착시 휴대폰을 꺼라든지 이런 안내 방송은 안 한다.
- 캠핑카
10년 전 뉴질랜드에서 캠핑카를 빌렸을 때는 완전 신차를 제공 받았다. 이번에 시드니에서 빌린 캠핑카는 1만 6천킬로 정도 달린 차였는데 불행하게도 차내에 쿰쿰한 땀냄새가 났다. 렌트카 수령 후 땀냄새와 침구류 청결 상태가 좋지 않아서 다른 렌트카로 변경 요청을 했으나, 있는 차가 이거 밖에 없다고 그랬다. 차를 받고 3일쯤 지난 후 도저히 냄새를 참지 못해 모든 침구류를 꺼내서 세탁 및 건조를 시켰는데, 그 뒤로 한결 청결한 상태로 지낼 수 있었다.
렌트카 예약은 마우이 공식홈에서 하려다가 한국인 대행사를 통해서 했다. 가격은 동일한데 추가 정보나 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다는 리뷰를 구글 검색에서 보고 결정했다. 결과적으로는 공식홈에서 하는 게 더 나았다. 깨끗한 신차가 나오지 않은 이유가 공식홈에서 다이렉트로 하지 않고 대행사를 통해서 해서 그런 게 아닌가 근거없는 의심을 하고 있다. 특별히 받은 서비스도 없고, 받을 서비스도 없으니 공홈에서 예약하는 게 깔끔하다.
마우이는 4인승 모델이 2가지가 있다. 비치와 캐스케이드. 비치가 좀 더 크다. 운전하기 힘들 거 같아서 컴펙트한 캐스케이드를 골랐는데 성인 4명이 지내기에는 좁았다. 10년 전 아이들이 어릴 때도 이 모델을 했는데, 그 사이에 애들이 많이 컸다. 아이들이 어리다면 캐스케이드도 괜찮고, 고등학생 이상이라면 비치 모델이 맞다. 대행사에 상담받을 때 사무적이고 모호하게 답변해서 도움이 되지 않았는데, 내가 대행사라면 아이들의 키를 물어본 후에 비치를 추천해줬을 거 같다. 마우이에서 주행거리가 늘면 도색을 해서 브릿츠로 넘어가고 여기서 주행거리가 더 늘면 마이티 브랜드로 바뀐다. 마우이가 비싸고 마이티가 제일 싼데, 가까운 친구들과 떠나는 여행이라면 마이티가 가성비가 좋지 않을까 싶다.
다음에 캠핑카 여행을 할 때는 공식홈에서 할 것이고, 사전에 이메일 등을 통해서 신차에 주행거리가 짧고 내부 청결상태가 좋은 차를 준비해달라고 요청해 둘 생각이다.
참고로 캠핑카는 콩글리시인데, 현지에서는 4인 이상차는 모터홈, 그 이하는 캠퍼밴이라고 불렀다. 우리카는 모터홈인데, 캠퍼밴이라고 해도 대체로 의미 전달이 되었다.
- 우측 운전
나는 운전면허증 갱신시 영문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아서 따로 국제면허증이 필요없었다. 영문운전면허증이 있으면 별도로 국제면허증을 신청하지 않아도 렌트카 운전을 할 수 있다. 현재 66개국과 제휴를 통해 인정이 된다고 한다. 주요국가는 미국, 캐니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 그리스, 덴마크, 네델란드, 포르투갈, 필란드, 싱가포르, 필리핀, 멕시코 등이다.
호주는 우측 운전이다. 10년 전에는 1시간 정도 운전한 후 적응이 되었는데, 이번에는 하루쯤 지나서야 적응이 되었다. 머릿속에 '오른쪽 겨드랑이'를 계속 떠올렸다. 어딘가에서 읽은 팁인데, 우측 운전의 경우 오른쪽 겨드랑이에 차선을 끼고 운전하는 느낌을 유지하라는 글을 봤었다. 이 정보 덕분에 역주행을 10초 정도밖에 안 했다.
캠핑카는 차가 커서 운전을 어렵다고 느낄 수 있다. 시내 운전이나 주차는 확실히 불편하다. 하지만 로드트립시 고속도로 운전은 승용차보다 더 편하다. 직접 운전해보면 할만하다는 생각이 바로 든다.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에 보험은 언제나 100% 보장으로 가입했다. 뉴질랜드 여행 때는 아내가 운전 중 다리기둥과 부딪힌 적이 있었으며, 이번에는 내가 주차중인 차의 백미러를 깨먹는 사건이 발생했었다. 100% 보장이라서 접속 사고가 나더라도 걱정이 없다. 사고가 났을 땐 렌트카할 때 사전에 알려준 보험사에 연락을 하면 이메일로 접수 안내장을 보내준다. 그곳에 내용을 적어서 회신하면 이후 보험사가 알아서 해결해준다.
톨게이트비는 편리하게 낼 수 있다. 렌트할 때 LinktGo라는 아마존에서 하는 자동 번호 인식 톨비 정산앱에 카드를 등록했다. 그랬더니 톨게이트 통과할 때 자동으로 카드에서 톨비가 빠져 나갔다. 중소형차 주차 구역에 우리 캠핑카를 주차하는 바람에 주차 딱지를 하나 받았다. 윈도우브러시에 꽂혀 있는 고지서에 카드 등을 통한 납부 방법과 범칙금액이 적혀 있어서 한국에 돌아온 후 납부했다.
- 홀리데이 파크
렌트카에는 전기와 물이 필요하다. 뉴질랜드 여행 때는 렌트카 화장실도 가끔 이용했었는데 나중에 치우기가 번거로웠다. 주유소나 휴게실 등이 많아서 화장실은 외부 공간을 이용했다. 홀리데이 파크에 가면 3가지를 해결했다.
- 전기 공급
- 물 공급
- 사용한 오수(샤워물, 싱크대물) 배수
그리고 그곳의 온수 샤워장과 화장실, 세탁실 등을 이용했다. 호주 홀리데이파크 정보는 thl roadtrip이라는 앱과 캠퍼메이트 앱을 활용했는데, thl앱이 훨씬 가독성이 좋았다. 그곳의 맵위치와 리뷰를 보고 홀리데이파크 장소를 예약했다.
- ETA와 신용카드 등 팁
출발전에 호주 전자여행 허가서인 ETA를 신청해서 발급받아야 한다. 앱을 다운받아서 입력하면 되고, 입력 중에 휴대폰으로 여권의 전자칩을 인식시키는 신기한 장면도 나온다. 호주달러로 20불이 든다.
신용카드는 예전에 발급해뒀던 하나은행의 트래블 카드를 사용했다. 애플페이가 되는 곳이 많아서 카페나 레스토랑을 이용할 때는 종종 애플페이를 이용했다. 홀리데이 파크 세탁기랑 건조기도 애플페이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이 있었다.
호주는 전원 코드가 한국과 달라서 돼지코가 필요한데, 공항의 통신사에서 무료로 빌려서 사용했다. 호텔이나 캠핑카 코드에 돼지코를 끼우면 빡빡하게 맞지 않고 좀 덜렁거려서 책 같은 걸로 고정시켜서 사용했다.
호주는 전 국민의 70%가 수돗물(Tap Water)을 마신다는 안내 문구가 호텔 방에 있었다. 실제 호주는 수질 관리를 아주 잘해서 수돗물을 마시는 경우가 잦다고 한다. 그래서 요리를 할 때는 안심하고 수돗물을 이용했고, 생수는 사 마셨다.
물가는 상당히 비쌌다. 호주는 1인당 국민소득이 6만불이 넘어 우리나라 2배에 달한다. 최저시급도 2만원이 넘어서 룩셈부르크에 이어 세계 2위다. 체감한 물가는 실제 한국의 1.5배에서 2배 정도. 다만 주유비와 고기값은 한국과 비슷해 보였다. 레스토랑에서 외식을 할 때 특히 물가가 비싸다는 게 확 와닿았다.
- 영어
영어를 못하면 불편하다. 다행히 우리는 자녀가 영어를 잘 해서 대부분 통역을 해줬다. 하지만 10년 전 뉴질랜드 여행시에는 내가 손짓발짓으로 의사전달해가면서도 잘 다녔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특히 요즘 통역앱이 워낙 잘 되어 있어서 영어보다 중요한 건 자신감이지 않을까 싶다. 다만 영어를 잘 하면 현지인과 대화를 나누면서 보다 풍성한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호주의 대표 도시인 시드니를 첫번째 출발지로 삼았다. 그 다음 캠핑카 여행할 만한 곳을 조사해보니 시드니에서 브리즈번까지 코스가 괜찮아 보였다. 아마 14박 15일이었으면 멜버른에서 브리즈번까지 코스를 잡았을 것이다. 시드니에서 출발해서 브리즈번으로 올라갈 지, 브리즈번에서 시작해서 시드니로 내려올 지는 항공권 요금으로 결정했다. 도시별 인아웃 항공료 차이가 커서 더 저렴한 시드니-브리즈번 코스로 항공권을 예매했다.
그 다음으로 내륙으로 다닐 지 해안으로 다닐 지, 내륙 해안을 같이 다닐 지 결정해야 했다. 최초 구글링을 할 때는 해안코스가 많았는데, 나중에 캥거루 등을 만날려면 내륙 코스가 좋다는 글도 보여서 내륙+해안 코스를 막연하게 생각하고 떠났다. 하지만 첫날 여유롭게 여행을 하려면 내륙까지 다녀오기는 곤란하다는 걸 깨닫고 해안 도로로 달리기로 결정했다. 해안가에서 멀지 않은 보호구역에서 야생 캥거루를 만다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호주 도착 첫날 가족들이 모여서 어떤 액티비티를 할 지 상의했다. 앞서 얘기했듯이 출발 전날까지는 한국에서의 일상에 충실해(게을러서 준비를 안해) 여행 계획을 거의 세우지 않은 상태로 떠나왔길래 큰 방향성은 잡아야했다.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들의 의견은 아래와 같았다.
나 : 캥거루가 야생에서 뛰어노는 걸 보고 싶다. 서핑을 배우고 싶다.
아내 : 도시를 둘러 보고 싶다. 바다를 보고 싶다.
큰아들 : 카페에 앉아 책을 읽고 싶다.
작은아들 : 열기구를 타고 싶다. 별을 보고 싶다.
그래서 첫날 우리가 합의 본 맥락은 다음과 같았다.
"해안 도로를 타고 다니면서 좋은 홀팍에 머물자. 그 지역의 명소 한두군데는 가보거나 엑티비티를 체험해보자. 열기구와 서핑은 꼭 도전하자. 많은 걸 보고 체험하기 보다는 카페도 다니고 바다도 거닐면서 여유롭게 여행을 즐기자."
바다를 보고, 열기구와 서핑을 즐기고, 가능하다면 그 지역의 색다른 액티비티를 경험할 것. 일정에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다닐 것. 이 원칙에 맞춰 우리가 경험한 지역별 액티비티의 종류와 피드백은 아래와 같다.
시드니 시내 투어 : 오페라하우스, 하버브리지, 록스, 맨디비치를 다녀왔다. 하버브리지 클라이밍이 있었는데, 시간 문제로 일행의 동의를 구하지 못해 철교를 올라가보지 못한 게 아쉬웠다. 맨디비치는 티켓발매기(우리나라 지하철 티켓 발매기처럼 생겼다)에서 표를 잘 못 눌러서 우연힌 다녀오게 되었는데, 꽤 좋았다.
블루마운틴 : 인생컷 장소로 불리는 낭떠러지컷을 찍을 수 있는 링컨스락은 실제로 가보니 아찔했다. 세자매봉은 경관이 수려하고 주변 산맥이 광활했다. 별보기를 하려고 밤까지 있었는데 아쉽게도 구름이 잔뜩 끼어서 별구경은 못했다. 대신 한치 앞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자욱한 안개는 실컷 봤다.
넬슨 베이 원마일 비치 : 밤에 산책 삼아 거닐었는데, 더넓은 백사장이 이색적이었다. 바닷가에 젊은이들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노래를 부르며 즐기는 모습이 흥겨워 보였다. 일행 중 한명이 나에게 찾아와서 함께하자고 그랬는데, 영어를 못해 Thank you. I am sorry라고 답변했다.
포트스테판 사막 : 사막이라기 보다는 모래로 이뤄진 거대한 해안가다. 끊없이 펼쳐진 해안가가 마치 사막처럼 넓고 길다. 낙타 체험과 4륜 바이크, 샌드보드를 탈 수 있다. 가족들 모두 몽골 사막에서 원없이 해봤던 거라서 따로 액티비티를 하진 않았다. 사막을 걸으면서 바다를 구경했다.
포트스테판 돌핀 크루저 : 바다로 나가 돌고래를 구경하는 돌핀 크루저는 예전 괌에 이어 두번째다. 여기도 괌과 비슷했다. 크루저를 타고 바다로 나가면 돌고래 3~4 마리를 몇번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그 광경이 놀랍거나 멋지진 않다. 아내와 앞으로 한번 더 돌고래 크루저를 탄다면 그 때는 돌고래 수십마리가 멋지게 하늘로 치솟는 광경을 보자고 얘기를 나눴다. 그런 곳이 있는지, 그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헌터밸리 와인 테이스팅 : 호주 와인의 대표 산지인 헌터밸리. 온 마을이 포도나무로 뒤덮혀 있다. 한국에서 봤던 포도나무와 다르게, 와인용 포도는 키가 작고 열매가 잘다. 농장마다 테이스팅이 가능했는데 구글맵에서 별점이 높은 곳 2곳을 방문했다. 나는 운전을 해야 해서 맛을 못 봤다. 와인을 좋아하는 둘째 아들이 아주 만족했던 액티비티. 이곳에 음주 운전이 많은지, 음주 단속에 걸려서 자신있게 후 한번 불어줬다.
헌터밸리 동물원 : 지나가는 길에 있고 리뷰도 좋아서 방문. 캥거루, 기린, 사자, 악어, 타조는 물론 처음 보는 신기한 동물들도 많았다. 캥거루는 직접 만져 볼 수 있다. 다만 감옥같은 곳에 갇혀 있는 동물을 보는 게 영 마음이 불편했고 안타까웠다. 아내도 비슷한 심정. 앞으로 갇혀있는 동물원은 방문하지 말자고 약속했다.
남부카헤드 메인비치 : 때묻지 않은 순백의 바다를 볼 수 있다. 깎아질 듯한 절벽 아래로 평화로운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숲속 산책로를 거늘면서 바다를 보는 여유로움을 누릴 수 있다. 에메랄드빛 바다를 보며 브런치를 즐길 수 있는 예쁜 카페가 있다.
골드코스트 노비비치 : 천연 파도 풀장같다. 온 가족이 파도에 뛰어들며 아이처럼 신나게 놀았다. 부드럽고 완만한 백사장에 세찬 파도가 계속 쳐서 파도놀이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골드코스트 열기구 : 살면서 꼭 한번은 경험해 봐야 할 체험. 따로 글을 쓴 게 있어서 링크로 리뷰 대신.
https://brunch.co.kr/@hanschoi/68
서핑 : 제주도를 여행할 때 배운 적이 있는데, 이번 기회에 제대로 즐기고 싶었다. 바닷가에서 20분 정도 이론 수업, 20분 정도 실습 레슨을 거친 후 바다에 나가 1시간 반 정도 즐길 수 있다. 첫날은 파도가 좋아서 몇번 일어서서 파도를 타는데 성공. 둘째날은 서핑보드만 빌려서 탔는데 파도가 거칠어서 일어서는 게 만만치 않았다. 한국에서 제대로 배워서 다시 한번 이곳을 찾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보고 있으면 왜 이곳으로 전 세계 서퍼들이 몰려드는지, 이곳의 지명이 왜 서퍼스 파라다이스인지 알 수 있다. 서핑 천국이 맞다.
쿰바바 레이크 보호공원 : 야생의 캥거루와 코알라를 만날 수 있다. 화장실은 물론 그 어떤 인위적인 시설물이 없는 자연 그대로의 보호지역이다. 차를 주차할 때 이곳이 국립공원이 맞는지 의아했다. 지도가 그려져 있는 조그마한 입간판 하나가 시설물의 전부. 도로에서 나와 입구로 가는 중에 캥거루 3마리가 뛰어 가는 걸 보고 가족 모두 놀라 환호성을 질렀다. 주차를 하고 깊은 숲속으로 걸어 들어가는데 유칼립투스 나무 위에서 곤하게 자고 있는 코알라를 발견했다. 한참을 보고 있으니까 눈을 뜨고 주변을 한번 쓱 둘러보더니 다시 곤히 잠에 빠져 들었다. 조금 더 걷다보니 캥거루 무리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보호지역 내 오솔길로 돌아오는 길에 주머니에 새끼 캥거루를 넣고 깡총깡총 뛰어다니던 엄마캥거루를 본 건 행운.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고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분임을 생각하게 만드는 곳이다.
브리즈번 스카보로 비치 : 한적한 해안가 마을. 하얀색 돛단배들이 그림처럼 항구에 정박해 있다. 한국의 어촌처럼 노인들이 많이 보였다. 브런치 카페는 밝고 친절했다. 바닷가 나무 그늘 아래 카페에 앉아 파도소리를 들으면 아침을 먹는 동안 인근 주민들이 개를 데리고 와서 함께 식당을 즐기는 모습이 평화로웠다. 부리가 긴 호주흰따오기가 우리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브리즈번 사우스뱅크 : 킥보드를 타고 이곳을 다녀왔는데, 호주의 킥보드에는 헬맷이 달려 있고 손잡이 부분에 휴대폰 거치대가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Bank라고 해서 은행인 줄 알았는데, bank에 둑, 제방이라는 뜻도 있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브리즈번 강가에 조성해 놓은 인공 해변. 수많은 인파들이 몰려들어서 물놀이와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며칠간 자연 속에 머무러다가 도심으로 나오니, 도시가 낯설게 느껴졌다.
호텔은 흔히 쓰는 아고다, 호텔스닷컴, 익스피디아, 부킹닷컴 등을 통해 알아봤다. 최종적으로 부킹닷컴에서 총 3박을 예약했다. 홀리데이 파크는 thl Roadtrip이라는 앱을 활용했다. 홀팍을 예약할 때 아주 유익했다. 우리가 9박 동안 머문 숙소는 아래와 같다. 1박은 호주로 오는 기내에서 보냈다.
- The Branksome Hotel & Residences(2박) : 시드니 호텔. 4인 가족이다보니 호텔 룸을 2개 잡는 게 부담이 되어서 묵게 된 레지던스. 합리적인 금액에 내부 공간이 넓고 시설이 좋았다. 다만 큰길 근처라서 소음이 있고, 암막 커튼이 없어서 바깥 불빛이 침실까지 들어오는 게 단점.
- Ingenia Holidays One Mile Beach : 안나베이 홀팍. 포트스테판 인근에 있는 원마일 비치와 붙어 있다. 산책로를 따라 원마일 비치로 이어져 있다. 밤이 되면 야생동물들이 앞마당으로 찾아 와서 풀을 뜯는 등 자연친화적이다.
- Wine Country Tourist Park : 헌터밸리 홀팍. 헌터밸리 접근성이 좋은 아담한 사이즈의 홀팍. 주변을 걷다가 양조장 겸 레스토랑인 포터즈 브루워리를 발견하는 행운을 누렸다.
- Reflections Holiday Parks Nambucca Heads : 남부카헤드 홀팍. 바다를 낀 깊은 숲 속에 자리잡고 있다. 울창한 나무숲에서 맑은 새소리를 들을 수 있고, 숲 속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절벽 아래 끝없이 펼쳐져 있는 푸른 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
- Nobby Beach Holiday Village : 골드코스트 홀팍. 걸어서 노비비치로 갈 수 있다. 빌리지랑 같이 있어서 물놀이 시설과 각종 편의시설이 잘 되어 있다. 서퍼스파라다이스까지 차로 약 20분 거리. 주변이 어두워서 밤에 별이 잘 보였다.
- NRMA Treasure Island Holiday Resort : 골드코스트 홀팍. 쿰바바 보호공원 옆에 있다. 넓은 사이즈에 다양한 시설을 구비하고 있는데, 우리는 늦게 도착해서 일찍 나오는 바람에 제대로 둘러 보지 못했다.
- Scarborough Holiday Village : 브리즈번 위 스카보로 홀팍. 모레턴베이와 붙어 있는 바닷가 홀팍. 하얀 돛단배들이 가득 정박해 있는 항구가 보인다. 옆 사이트에 루프탑텐트를 치고 장박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 Hyatt Regency Brisbane : 브리즈번 중심가에 있는 호텔. 걸어서 시내 구경하기 좋다. 하얏트 무료 멤버십에 가입하면 각종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겨울 캠핑과 여름 캠핑
하루는 캠핑카에 누워있는데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떠 올랐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10년 전 뉴질랜드 여행은 한국의 여름, 뉴질랜드의 겨울에 다녀왔다. 난방을 하긴 했지만 쌀쌀했고 옆사람의 체온이 고마웠다. 이번 여행은 이불을 차 낼 정도로 조금 덥긴 했지만, 옆사람의 체온이 반갑지는 않았다.
대신 겨울 캠핑시에는 실내 생활이 주를 이뤘는데, 여름 캠핑에는 야외 생활이 주를 이루었다. 홀리데이 파크에 자리를 잡으면 어김없이 테이블과 캠핑체어를 펼쳐서 마주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눴다. 좁은 캠핑카 안에서 북적이기보다는 넓은 사이트에서 지낼 수 있어서 자유로웠다.
야생과 문명
문명의 감미로움은 그것을 누릴 수 없을 때 깨닫는다. 각종 시설을 잘 갖춰져 있긴 하지만 캠핑카는 캠핑카다. 좁고 불편하다. 캠핑카 여행을 마치고 호텔에 묵었을 때 느낄 수 있는 안락함, 그리고 타지를 벗어나 우리 집 침대에 누웠을 때의 포근함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안락함은 일상 속에 금방 잊혀진다. 결핍만이 소중함을 깨닫게 만들어 준다.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문명의 헤택이 절반쯤 사라진 상태에서 지내는 동안 다시 한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본주의의 편리함과 편안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야생은 그 자체로 경이롭다. 인공이 사라질 때 자연은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호주는 그 어느 나라보다 자연과 조화롭게 살고 있는 국가다.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태초의 자연을 느끼고 호흡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숲, 들판, 바다, 강에서 만나는 풍경들, 새소리, 파도소리, 바람소리, 빗소리 등 자연에서 들리는 소리들, 캥거루, 코알라, 포섬, 흰따오기 등 자연에서 마주치는 진기한 동물들이 모두 신비롭다. 인간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150만종 생물체 중 하나의 종에 불가하다는 걸 되새기게 된다.
도시에 살면 별을 잊는다. 어릴 적 전기가 잘 들어오지 않은 촌구석에 자란 탓에 별은 친구처럼 늘 친근했다. 하지만 도시로 나온 후 별은 어쩌다 한번씩 만나는 먼 관계가 되었다. 호주에서 만난 별은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여행 기간 동안 구름이 많긴 했지만 가끔씩 마주치는 별무리들은 우주의 광활함과 지구의 왜소함을 각성하게 해 주었다. 몽골에서 만난 북반부의 별과 호주에서 만난 남반부의 별은 달라 보였다. 나보다 훨씬 더 천체에 관심이 많은 두 아들이 전해주는 겨울철 육각형 별자리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별을 보고 있으면, 지구별에 빌붙어 살고 있는 인간의 왜소함을 깨닫는다.
- 가족
황홀할 정도로 멋진 광경을 볼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그게 나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사람이고, 그게 곧 가족이다. 가족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관계다. 혼자 떠나는 여행도 좋고, 친구들과의 여행도 즐겁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이 가장 가치있다는 걸 다시 한번 확신할 수 있었다. 이미 장성해서 따로 사는 두 아들과 함께 캠핑카에서 보낸 시간은 그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어릴 적 늘 함께하며 속속들이 아이들의 생각을 읽고 있다고 여긴 적이 있었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어 대부분의 시간을 부모 외 사람들과 보내는 아이들은 가끔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곤 했다. 이번 여행은 아이들의 생각을 더 깊이 이해하고 그들의 결정을 더욱 더 신뢰하고 지지할 수 있게 해 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기호는 모두 다르고, 의견충돌은 종종 일어났지만 합리적이고 현명하게, 그리고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면서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세월이 흐른 후 이 소중한 추억을 꺼내서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가.
- 앞으로 7년
현실에 몰입해서 살다보면 1년 후 내다보기도 쉽지 않다. 해가 바뀔 때마다 올 한해는 어떻게 살아야지 계획을 세우곤 하지만 그래봐야 1년이다. 이번 여행 기간 중에 그 어느 때보다 생각을 많이 했다. 생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생각을 많이 했다. 그리고 그 생각 끝에 앞으로 7년간 어떻게 살 지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그 계획을 아내와 나눴다.
빽빽한 나무들로 가득찬 인생의 울창한 숲 밖으로 한발 빠져 나와서 가만히 그 숲을 바라보았다. 긴 호흡으로 지나온 날들과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을 헤아려 보았다. 이국적인 공간에서 이질적인 환경을 만나 이색적인 체험을 하면서 나를 되돌아보는 자기 객관화 시간을 가졌다.
2000년 첫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24년 동안 아픈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고 작은 성취를 거두기도 했다. 앞만 바라보면 황소처럼 이곳저곳 질주할 때도 있었고, 무소처럼 우직스럽게 한 길을 걸은 적도 있었다. 지난 시간은 그 자체로 소중한 자산으로 승화시키고 앞으로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방향성을 정했다.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소득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