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내일을 사는 법
며칠 전 신점을 보고 왔다. 태어나 처음으로 보는 신점이라 그런가 두 손에는 긴장이 가득 배어 있었다. 동료와 함께 들어선 점집은 미디어나 내 상상 속 모습과는 달리 평범한 가정집 같았다. 생활의 온기가 감도는 그리 낯설지 않은 분위기 덕에 긴장감은 조금 누그러졌지만, 마음 한편의 떨림은 여전했다.
챙겨주신 음료를 홀짝거리다 차례가 되어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선생님은 간단한 인적사항을 물으시더니, 작년에 왔으면 몰라도 올해는 왜 왔느냐고 물으신다. 지금의 나는 어떠한 문제가 있기보다는, 이미 스스로 답을 내려둔 채 그 답이 맞는지 확인하러 온 거라고. 순간 뜨끔하는 표정을 참을 수 없었다. 언젠가부터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잘하고 있다는 확신을, 누군가의 입을 통해 듣고 싶었으니까.
뒤이어 이어지는 장면은 선생님께 내 고민을 술술 털어놓는 모습. 점집이 아니라 무슨 고민 상담소 같다. 선생님은 이런 나에게 걱정이 너무 많다고 덧붙이신다. 좋은 운이 들어오는 시기라도 본인의 걱정이 지나치면, 마음이 소란스러워 정작 운이 들어온 줄 모르게 된다고. 그러니 걱정은 조금만 하라고. 어차피 나는 내가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알아서 그만둘 사람이니, 그런 마음이 들기 전까지는 지금 선택한 일을 계속해보라고 했다.
이상하게도 그날 선생님과 나눈 많은 대화 중에 그 한 문장이 마음속에 오래 남는다. 걱정을 조금만 하라는 말.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그 당연함이 마음 한가운데에 박혀 자꾸 곱씹게 됐다.
나는 어쩌면 늘 필요 이상으로 삶을 앞질러 달려가려 했는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내 걱정의 대부분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에 관한 것이었다. 일어나지 않을 일을 염려하고, 오지 않은 미래로 먼저 달려가 그곳에 서 있는 나를 상상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나는 어떤 표정을 짓게 될지, 그 결과가 나에게 유리할지 불리할지 미리 알고 싶었다. 하지만 미래는 늘 나보다 반 발짝 앞서 있었고, 나는 그 보폭을 따라잡으려 안달이 나 있었다.
그렇게 앞지르려 애쓰던 어느 날, 책을 읽다 어느 한 페이지에서 오래 시선이 머물렀다.
예술을 모르겠다.
그림을 모르겠다.
그런 얘기들을 많이들 한다.
그런데 화가라고 해도
사실 그림 따위 모른다.
예술이나 그림이
무엇인지 아무도 모를 거다.
모르는 게 당연하다.
모르니까 그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과거도 앞으로도
평생 그럴 것이다.
알아버린 그날에는
그릴 이유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모르니까 즐거운 것이다.
그림 따위 알리가 있나
- 이다 유키마사 전시, 홍보 포스터
'예술이나 그림' 자리에 '미래'를 넣어본다. 미래를 알아버리는 날에는 사는 이유를 잃어버리게 되려나. 앞으로도 나는 끝내 알 수 없는 내일 속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선택하여 배우고 살아가겠지. 내일의 모든 걸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두렵지만, 그 불확실함이야말로 정말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자 원동력일까?
골똘히 생각하다 보니, 대학 시절 교수님이 보내주신 메일에도 비슷한 말이 있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옵니다.
우리 인생도 이처럼 앞날이 확실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기도 합니다.
미래가 모호하니 불안하고 안절부절못하고 초조하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무언가가 확실하다고 해서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확실하면 설렐 일이 없습니다. 잘 모르기에 설레는 것이고, 어떤 반응이 있을지 모르니 두려우면서도 기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앞날이 모호하다고 초조해하지 말고 기대하고 바라기 바랍니다.
나도 모르는 어떤 좋은 날이 찾아올 수도 있고, 나도 모르는 행운이 찾아올 수도 있고, 나도 모르는 사랑이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메일을 받았던 당시에는 막연한 위로같이 느껴지던 내용이 보다 선명히 다가온다. 알 수 없기에 설렘이 있고, 알 수 없기에 기대가 생긴다니. 조금 낭만적인 것 같기도 하다. 불확실한 미래를 향한 두려움의 밑바닥에는 언제나 '내일은 다르지 않을까?'라는 작은 기대가 함께 가라앉아 있었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내가 미리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일은 지나고 나서야 그렇게까지 겁낼 필요가 없었으며 생각보다 견딜 만한 일이었다. 때로는 내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했지만, 그 나름의 이유와 의미를 찾을 수 있었듯이 말이다.
물론 여전히 가끔은 엄마 몰래 훔쳐보던 답지처럼, 명확한 답을 슬쩍 엿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오지선다 중 하나를 고르듯 누군가 이 길이 맞다고 말해줬으면 하는 마음. 정답을 찾아 헤매던 날들 속에서 걱정은 언제나 내 머릿속에서 가장 큰 부피를 차지했다.
평생을 이렇게 살아왔기에 쉽지는 않겠지만 생각을 조금 바꿔보려 한다. 인생에는 각자의 답이 있을 뿐이라고. 혹여 운이 와도 모를 만큼 마음을 소란하게 만들지 말고, 내가 선택한 길 위에서 그때그때 배우면 된다고. 나는 이미 여러 번, 그렇게까지 미리 겁낼 일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배워왔으니까.
점집에서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계시다 선생님이 내게 건네주신 말을, 이제는 나 자신에게도 해주고 싶다. 남들에게는 쉽게 건네면서도 정작 나에게는 아껴두었던 그 말. 그동안 쉽지 않았는데, 기특하다고. 고생 많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