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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Jul 22. 2021

집사는 나약한 똥쟁이

맨날 내가 화장실 앞에서 지켜줘야 한다니깐.

고양이

오랜만이야!

나는 이제 곧 한 살이 되어가.

이제 몇 밤만 더 자면 나는 한 살 이래.


집사 언니가 말해줬는데, 의사 선생님이 내 생일은 2020년 8월 15일이라고 알려줬대.

우리 엄마가 그 날 나를 낳아준 거지.


의사 선생님은 하얀 옷을 입고 주사를 찌르는 사람인데,

나는 그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아니, 사실 싫어해.

의사 선생님은 자꾸 나한테 아픈 주사를 놓거나, 집사 언니한테 나한테 먹일 쓴 약을 주거든.


그런데도 언니는 나를 데리고 종종 의사 선생님을 보러 가.

 

난 이제 어른인데 왜 자꾸 의사 선생님을 보러 가야 하는 걸까?  어엿한 한 살 고양인데 말이야!

병원에 갈 때마다 언니에게 매번 싫다고 말하는데도, 

언니는 내 말을 못 알아들어. 그리고 엉뚱한 대답만 해.


"사랑이~ 금방 다녀오자!"

"우리 사랑이, 오늘은 언니가 간식 많이 줄게." 

"잠깐 밖에 나갔다 오는 거야. 병원 가는 거 아니야."


내가 속을 줄 알고.


언니는 바보야, 바보.


언니랑 같이 산지 벌써 1년이 되어가는 기념으로

내가 언니에 대해 알게 된 재밌는 이야기를 해줄게.


언니는 매일 아침, 출근하기 전에 화장실을 가곤 해.

그리고 화장실에 갈 때마다 아주 신나는 목소리로,

"언니 모닝 응가한다~"라고 알려주고 가.


언니 말로는 아침에 꼭 '모닝 응가'라는 걸 '배출'해주면 하루가 즐거워진대.

'모닝 응가'라는 거, 정말 엄청나지 않아?


사실 나는 언니가 좋아하는 엄청난 '모닝 응가'가 뭔지 몰랐어.

그래서 언니를 따라서 화장실에 쫄래쫄래 따라 들어가 봤어.

 

그런데, 헉, 웬걸!

나는 정말 깜짝 놀랐어!


화장실에서 뭔가 익숙한 냄새가 나는 거야.


그 익숙한 냄새는 내가 새벽마다 모래에 싸고 바로 덮어버리는, 갈색 덩어리와 비슷한 냄새였지.


그 냄새나는 것을 인간들은 '응가'라고 부른다는 걸 알았어.

언니도 나처럼 '응가'에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것이 신기했어.

 

다만 나는 모래에 응가를 하는데,

언니는 화장실에 있는 하얀 의자에 앉아서 하더라.


음, 그리고 언니는 아침에 응가를 하고 나는 언니가 자는  조용한 새벽에 응가를 하는 것도 달라.


그렇게 나는 언니가 좋아하는 '모닝 응가'가 뭔지 알게 되었.

물론 나는 응가에서 나는 냄새가 싫은데, 우리 언니는 모닝 응가덕분에 하루가 즐겁다는게 여전히 이해가 안됐지.

그런데 너희들, 혹시 응가를 할 때 정말 위험할 수 있다는 것,

알고 있어? 


어른 고양이들은 잘 알고 있겠지만, 아직 아기 고양이들은 잘 모를 수 있으니 내가 그 이유를 알려줄게.



나도 옛날에 우리 엄마가 말해줘서 알게 된 거야. 


우리응가를 할 때는 나쁜 녀석들이 우리를 괴롭힐 수 있대.

우리가 응가를 하느라 집중할 때를 노리고 공격하는 거지.


정말 못된 녀석들이지 않니?


그리고 엄마는 우리의 응가는 냄새가 지독해서,

나쁜 녀석들에게 우리의 위치를 알려줄 수 있기 때문에,

모래로 잘 덮어야 한다고 말했어.


그래서 엄마는 응가를 할 때 주변을 잘 살피고

위험한 것이 없는지 조심해야 한다고 알려주셨지.


나는 아직도 엄마가 알려준 규칙을 아직도 잘 기억하고 있어.


첫째, 항상 응가를 할 때 매우 예민하게 주변을 살핀다!

둘째, 응가를 하고 나서 나의 흔적을 완전히 덮는다!

 

나는 아주 열심히 응가 규칙을 지키지.

하지만 문제는 집사 언니야.


언니는 응가를 하러 가면서 전혀 조심하지 않아!

조심하기는커녕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기까지 해.


나는 정말 철없는 언니가 너무 걱정이 돼.

응가를 할 때 주변을 살피지도 않고 모래로 덮지도 않아.


그래서 나는 언니가 모닝 응가를 하러 갈 때마다 지켜주기로 했어.


물론 냄새가 나서 가까이 가진 않아.


하지만 언니가 방심하고 있을 때, 누가 언니를 괴롭히면 어떡해?

언니는 아무것도 못하고 당하고 말거야!


그래서 누가 언니를 아프게 하지 못하게 내가 든든하게 지켜줘야 해.


언니는 날카로운 발톱도 없고, 이빨도 없어.

심지어 나처럼 빠르지도, 높이 뛰지도 못하거든.


언니는 아침마다 내가 지켜주는 걸 알까?


언제쯤 언니는 응가 규칙을 잘 지키는 어른이 될까?



언니가 모닝 응가를 끝낼 때 까지 씩씩하게 지켜주고 나면, 난 다시  잠에 들어.


잠도 덜 깼는데, 언니가 화장실가는 소리를 듣고 걱정돼서 일어날 때 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 고양이를 키우는 기분이야.


내일 아침에도 언니는 모닝 응가를 신나하며 하러 가겠지.


정말 걱정이야, 걱정!



너희들은 꼭 응가 규칙을 기억해야해.

첫째, 항상 응가를 할 때 매우 예민하게 주변을 살핀다!

둘째, 응가를 하고 나서 나의 흔적을 완전히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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