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정 Sep 21. 2020

퀸즈, 이민자들의 맨해튼 - (1)

뉴욕에서 인도를 만나다



퀸즈 (Queens)는 미국 뉴욕주 뉴욕의 5개 자치구 중 동부에 있는 지역이다. 뉴욕은 맨해튼, 브롱스, 브루클린, 퀸즈, 스태이튼 아일랜드로 구성되어 있다. 퀸즈는 세계에서 민족적으로 가장 나누어진 도시인데, 50% 이상이 외국인이다. 중국, 가나, 인도, 에콰도르, 콜롬비아, 도미니카 공화국, 한국 등지에서 온 이민자들이 퀸즈에 살고있다.


내가 퀸즈에 머물렀던 단 두 달간의 경험은 뉴욕에서 머물고, 다닌 모든 시간 중 가장 익사이팅했다. 브로드웨이 공연보다 더 생생한 인간들의 삶이 길거리에 펼쳐져 있었고, 맨해튼 타임스퀘어보다 더 다채로운 눈빛들이 공기를 수 놓았다. 맡을 수 있는 모든 냄새를 퀸즈에서 맡았고, 만날 수 있는 모든 인종의 사람들을 퀸즈에서 만난 것 같았다. 관광책자에 나오는 맨해튼 관광지에서는 결코 배울 수 없었던, 다양한 인종과 그들의 문화로 인해 ‘내가 알던 뉴욕은 1 % 밖에 안 되었구나’라는 겸손함을 깨닫게 해 준 곳이 바로 퀸즈다. 맨해튼 40층 전망과 값비싼 식당에서 다리를 꼬고 있을 때는 결코 못 보았던, 진짜 이야기가 인생에 들어온 곳이다. 내가 머물렀던 뉴욕 가장 동쪽 끝자락, 관광객은 갈 일도 필요도 없는 나의 ‘퀸즈 살이 추억’을 시작한다.



뉴욕 동쪽 가장 끝자락


2019년 겨울, 그러니까 코로나 바이러스가 터지기 직전까지 나는 퀸즈 104st에 살았다. 맨해튼 부터 퀸즈까지 오가는 지하철 파란색 A라인의 끝자락, 종점과 다름 없는 곳이다. 조금만 아래로 내려가면 JFK 공항이 나오고, 옆 동네는 지하철 지도나 관광책자의 지도에는 절대 나오지 않는 완전한 ‘뉴욕의 끝’이다. 위로는 자메이카 라고 하는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사는 지역색 깊은 동네가 있고, 서쪽으로 향하면 코리아 타운, 차이나 타운, 그리고 또 다른 이민자들이 사는 각각의 구역들이 있다. 그러나 결국 104st 의 정체성은 ‘인도’다.


내가 104st에 머물면서 맡은 첫 향기는 인도의 향신료 향이다. 하루종일 울려퍼지는 발리우드 인도 노래, 은은하지만 낯선 향 냄새, 고기나 미국 식품은 거의 팔지 않는 그야말로 ‘인도 로컬 슈퍼마켓’들, 금 상점, 알라딘에 나올법한 의상을 파는 옷 가게, 인도 종교에 등장하는 여신과 제사 물품을 파는 가게들, 무슨 이유 때문인지 길거리에 죽 늘어서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 남자들, 그들의 목과 팔에 걸쳐있는 빛나는 금들, 검은 피부 위로 크게 두리번거리는 눈동자, 옅게 퍼져있는 커리향기, 수 많은 인도 상점 중에 간간히 끼워져 있는 던킨도너츠나 맥도날드 같은 ‘그나마 미국적인’ 상점들 몇 개. 뭐 이런것이 내가 104st에서 보았던 전부다.



골목으로 들어간다. 뉴욕 퀸즈나 브루클린 지역에 있는 ‘특유의 벽돌집’ ‘오래된 2층집’이 즐비하다. 그러나 이 곳만의 특징은 현관에 있다. 현관 문 옆 기둥에는 코끼리 문양, 사자 문양, 인도의 여신 문양 등의 동상 그리고 작은 장식품들이 있었다. 말 그대로 코리아 타운에 가면 어느집에 태극기가 붙여져 있는 느낌이랄까. 집집마다 새어나오는 처음맡는 음식 냄새도 대단했다. 지금도 눈을 감고 그 때를 생각하면,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베어있는 기름 내, 커리 냄새, 길죽한 쌀밥에서 나는 찰기 없는 향기 등이 생각날 정도다.



두 번째 정체성은 ‘가이니즈’다. 가이니즈는 남아메리카에 있는 ‘가이아나’라는 국가에서 온 이들을 말하는데, 그들의 인종을 표현하자면 약간 복잡하다. 인도쪽에서 온 인도 가이니즈,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온 아프로 가이니즈, 또한 여러 소수민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말하자면 러시아 고려인이나 중국의 조선족 그리고 오리지널 한국인을 구분하는 것 만큼 무언가 복잡하고 애매모호 하다. 미국 내에서도 ‘가이니즈’들은 자신들의 군락을 이뤄 사는데, 그들 특유의 느긋하고 밤새 술을 먹는 문화가 있다. 인도인들 틈에 소수의 가이니즈 들이 섞여 사는 곳이 바로 이 104st였다.


인도인과 가이니즈들이 모여사는 104st에 왜 내가 살게 되었냐고 묻는다면, 아주 복잡한 사정이 있었다. 그러나 그 ‘복잡한 사정’이 아니었다면 나는 결코 뉴욕의 또 다른 이면을 못 보았을 것이다.



미국에서 ‘스팸’을 살 수 없는 유일한 슈퍼마켓


맨해튼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나름의 활동적인 생활을 하던 중 감기가 찾아온 날이었다. 한식을 좀 해먹으려고 소고기를 찾으러 슈퍼마켓에 갔는데 소고기는 커녕 스팸 햄조차 없었다. 슈퍼마켓이 구멍가게 인 것도 아니었다. 과일, 야채, 냉동코너, 심지어 생선과 곡류와 인스턴트 식품까지 모조리 있는 그 곳에 스팸이 없다니. 소고기는 고사하고 ‘고기류'를 찾을 수가 없었다. 한 블락 뒤에 있는  다른 슈퍼마켓으로 갔다. 그러나 그 곳에도 스팸을 찾는 것은 실패, 다음 슈퍼에서도 실패, 실패, 실패였다. 그때 친구에게 물었더니 "하하, 바보야? 인도인들은 소고기나 햄 같은건 별로 먹지 않는다고. 대신 커리에 넣는 냉동 생선 같은건 있어"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미국에서, 말하자면 ‘소고기’의 나라에서 그리고 햄버거와 스팸과 소시지의 나라인 이 ‘미국’에서 유일하게 그런 것이 없는 동네가 104st였다.


결국 나는 KFC에 가서 치킨을 사먹는 것으로 대신했고, 가끔 저녁에 나오는 할랄푸드 트럭에서 파는 양고기를 사먹거나 중국 식당에서 고기요리를 시켜 먹는 것으로 대신해야 했다. 괜히 맨해튼이나 브루클린에 가면 열정적으로 스테이크를 사먹었던 이유가 어쩌면, 이 동네 특유의 ‘고기 없음’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시도때도 없이 고장 나는 지하철, 걷다가 만난 사람들


종점과 가까운 104st는 지하철 연착과 고장이 잦았다. 특히 겨울이면 이런 저런 일을 이유로 지하철 운영이 멈추길 일쑤였다. 그럴때는 이동인구가 많은 환승역인 ‘Rockaway Blvd’까지 버스를 타고 가거나, 걸어가야 한다. 만일 우버 택시를 타고 맨해튼까지 간다면 웬만한 스테이크 식당에서의 2사람 몫을 지불해야 하는 어마어마한 거리이기에 이 동네 사람들은 절대적으로 지하철에 의존했다. 고장나지 않는다 하여도, 종점의 특징은 ‘오래 기다린다’는 것이다. 어느날은 지하철 문을 열어놓고 15분 이상을 그냥 서 있기도 한다.


연착되는 지하철에서의 지루함을 이기기 위한 이 동네사람들의 방법은, 음식 먹기, 담배 피우기, 믿기 어렵겠지만 마리화나 피우기도 있다. 지하철 문쪽에 앉아 고개를 내밀고 뻐끔 뻐끔, 힙합 뮤직을 틀고 15분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인도 여성들은 의심이 많아 보였다. 반드시 구석에 조용히 앉아 가방과 소지품을 꽉 잡고는 서늘한 인상으로 ‘아무도 말 걸지마!’라는 무언의 소리를 내뿜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하철이 움직이면, 인도 동네와 흑인 동네를 지나며 수 많은 지붕과 가게와 부서진 차와 벽화와 그래피티를 지나 브루클린, 또 맨해튼에 도달했다.



지하철이 고장난 어느날, 은인을 만났다.


뉴욕 지하철의 특징은 우리나라처럼 말끔한 성우 목소리가 아니라 무전기에 대고 빠르게 속삭이는 듯 한 지하철 관계자의 ‘생 목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 말이 어찌나 빠르고 또 발음이 뭉게지는지 까딱하면 지하철에서 내리라는 건지, 가만히 있으라는 건지, 무슨 일이 생긴건지 못 알아듣고 바보처럼 앉아있기 일쑤다. 어느 지하철이 고장난 날, 나는 어떻게 할 줄을 몰라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그때 옆에 있던 작은 체구의 인도 소녀 제시카가 나를 도와줬다. 이럴 때면 어느 길로 가서 어느 차를 타면 되는지, 또 이럴 때엔 환승비를 내지 않고 타도 된다는 사실을, 그리고 어느 길로 가면 맨해튼에 가기 더 가까운지 등에 대해 알려줬다. 이후 친구가 되어 커피숍에서 만나거나 함께 맨해튼 출근길에 나서곤 했다.


맨해튼에 갔다가 밤에 돌아올 때에는 조금 난감했다. 깜깜한 시각에 지하철이 고장나 내려야 할 때나, 출구를 잘못 내려 엉뚱한 골목을 해멜 때에 그 아찔함이란. 밤 늦은 시간 무언가를 뻐끔 뻐끔 피우는 눈동자들 사이에서 나는 구글 맵을 켜고 집 쪽으로 빠르게 걸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내게 익숙해진 그 ‘인도 향신료’ 냄새가 날 때에, 그리고 우연히 도서관에서 만났던 인도인 사서를 만나 안심하고 이야기를 할 때에 나는 마음이 놓였다. 그 사서는 50대의 여성이었는데, 유쾌한 목소리로 ‘어디가니?’하고 묻고는 나에게 ‘무서워 하지마, 우리는 절대 여기서 사고 안 쳐 하하’ 라면서 안전한 큰 길을 알려주고는 했다. 모든 블럭마다 경찰차가 상주하고 있는 곳이 퀸즈 동쪽 끝자락인데, 단지 그 '눈빛'들 만으로 무섭다고 생각한 내가 잠시 바보처럼 생각됐다.


<퀸즈, 이민자들의 맨해튼 (2) 편에서 계속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텍사스로부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