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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정 Aug 28. 2023

울면 안 돼, '훈'은 우는 아이에게 찾아 온대.

어느 감성과잉 여행작가의 몽골기행 #첫번째



몽골에 가면 다들 기골이 장대할 줄 알았다. 내 키는 동양여자 치곤 큰 편이라 늘 ‘몽골의 피가 섞였다’는 농담을 하곤 했는데, 막상 몽골에 오니 내가 여자중엔 제일 큰 느낌이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본 몽골인들도, 공항에 도착해서 본 사람들도, 가게의 점원들도 그리 키가 크지 않았다.


그러나 ‘몸이 다부지다’는 느낌은 확실했다. 특히 어깨와 팔뚝이 두드러지게 컸다. 손가락도 굵었다. 거기에 쌍커풀 없는 눈이 길게 뻗어있고, 광대나 턱이 도드라졌다. 몽골 여성들은 악세서리를 좋아하는 듯 보였다. 아가씨나 중년이나 다들 귀걸이 목걸이 팔찌 반지를 여러개씩 하고 있었다. 손을 움직이며 이야기 할 때 마다 금색의 것들이 찰랑이며 빛났다. 부채 만 한 인조 속눈썹을 붙인 여자들도 많았다. 남자들도 색색의 실로 엮은듯한 팔찌를 하고 있었다. 대대로 물려받은 듯 한, 무속적 의미가 가득 담긴 화려한 색채의 것들 말이다.



몽골 징기스칸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만난 가이드 역시 그랬다. 키는 크지 않았지만 어깨가 태평양처럼 넓었던 ‘밧짜‘씨는 수줍게 내 이름을 부르면서 나보다 자기가 동생이라고 말했다. 동생인데 동생이라고 부를 수 없는 외모였다. 확실히 몽골인은 몽골인이다. 얼굴에 드리워진 햇빛의 흔적, 고비사막을 두르고 있는 굽이굽이 산맥처럼 깊이 페인 주름들, 거대한 팔뚝과 돌덩이 같은 손, 옅은 갈색 눈동자, 한번만 소리치면 주변의 새는 다 도망갈 듯 한 동굴 목소리. 확실히 강인상 인상이다. 징기스칸 공항에서 징기스칸 후예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한국어를 너무나 잘 하는.



경기도 화성에서 5년간 일을 했다는 밧짜씨는 ‘몽골인은 한국인을 좋아한다’는 말로 일행들에게 친근함을 던졌다. 한국에서 온 여자 세 분이 나의 갑작스러운 여행 메이트였다. 우리는 처음만나 통성명도 하기 전에, 밧짜씨가 퍼붓는 한국 연예인 이야기며 음식 칭찬 같은 걸 들어야 했다.



그러더니 비닐봉지를 열어 무언가를 꺼냈다. 김밥이었다. 여행자들에게 가이드가 제공하는 간식이란다. 과연 몽골김밥이었다. 소고기가 얼마나 커다랗고 육질이 질긴지, 치아가 약한 사람은 먹기 힘들 듯 했다. 나도 소고기 몇 조각은 삼키지 못하고 뱉었지만, 김밥은 너무나 맛있었다. 우리는 밧짜씨가 읊는 몽골의 기본 정보 —기후나 면적, 계절에 대한 이야기— 를 들으며 김밥을 와구와구 씹어댔다. 차는 출발했고, 창밖에 펼쳐진 낯선 대지에 압도되어 넋을 잃을 무렵 몽골여행 첫 방문지인 ‘징기스칸 마동상’에 도착했다.





징기스칸 마동상은 드넓은 초원에 자기 혼자 우뚝 서 있었다. 지평선이 어딘지 가늠도 할 수 없는 넓은 땅에서 거대하게 존재했다. 유명 관광지는 식상하다고 뻐기는 ‘여행 허세작가’인 나도 그 순간 만큼은 고개를 조아릴 수 밖에 없었다. 인공 조형물이 이토록 강한 카리스마를 뿜어낼 수 있다니. 청동으로 만든 40미터 높이의 이 동상은, 놀랍게도 개인의 사비로 지어졌다.


없으면 섭섭할 뻔 했다. 없었으면 잊혀질 뻔 했다. 징기스칸의 위엄이, 그의 역사가, 몽골의 심장이.


내부는 예상 가능하듯 기념품도 팔고 칭기스칸을 찬양하는 코너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전통의상 입고 사진찍게끔 해주는 가게도 있었고, 기념촬영을 하는 세트장도 있었다.하이라이트는, 약간의 비용을 내고 마동상 위로 올라가는 코스였다. 이 곳에 오는 사람이라면 누구다 다 한다는. 뉴욕 살 때 자유의여신상 위에도 안 올라갔던 내가, 징기스칸 마동상은 무엇엔가 홀린듯 올라갔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자 징기스칸 동상 허리춤에 닿았다. 말 머리 안쪽으로는 계단이 있었고, 그 곳에 올라 뒤를 돌아보면 징기스칸의 상체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그의 얼굴이, 팔이, 손이, 채찍이, 눈빛이 너무 거대했자. 게다가 눈 앞에는 땅에서 본 것보다 더 거대하고 황홀한 대지였다. 대체 세상은, 지구는 얼마나 큰 것일까? 우리는 얼마나 작은 것일까? 호기심과 경외감이 동시에 몰려왔다.


몽골을 두고 크다 크다 하지만 건물 하나 없는 그 곳은 정말 크게 느껴졌다. 내가 어떻게 여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마저 일었다.



이 곳에 징기스칸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이보다 더 큰 세계로 뻗어나갔다. 아무리 몽골인의 시력이 좋다지만 세계를 한 눈에 다 볼 수 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동상 위에 올라가 징기스칸 조형물의 얼굴과 주먹을 본 순간, 그의 몸집은 우리들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나 존재감은 40m 높이만 했으리라 생각됐다. 이 정도로 크고 높은 존재감으로, 거대하게, 넓고 넓은 곳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나는 과연 이 세상을 이토록 큰 심장으로 대할 수 있을 것인가? 느닷없이 황제 앞에 무릎을 꿇듯 스스로 작아졌다. 남의나라 영웅에게 경외감이 일었다.


가이드 밧짜씨는 어김없이 징기스칸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메뉴얼을 달달 외운 느낌이었지만 어쩐지 그 굵은 음성와 눈빛을 보며 듣노라면 감화감동이 느껴지곤 했다. 이게 바로 몽골인의 후예인가? 물소가 사람으로 둔갑하여 말을 하는 것 같았다. 호들갑이 자꾸 나왔다.





징기스칸은 훈족(-族, Huns), 세계를 떨게 했던 ‘기마민족’이었다. 아랍에서는 훈족을 두고 ‘악마의 군대’라고 일컬었다. 징기스칸이 휘두른 채찍은 ‘신의 채찍’이라고 불렸다. 로마인들은 훈족을 이질적 외모, 적갈색의 피부, 악마같은 성격으로 비유했다.


일부 유럽인들은 아직도 아이들이 울면 ‘훈이 온다’며 겁을 준다고 한다. ‘훈’은 몽골어로 단지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그 어원을 두고 학계에서는 여러 추측이 많다. 일부는 그 말이 영어 Human의 어원이 되었다고도 주장한다. 만약 몽골의 국력이 과거와 비슷했다면 그들은 ‘몽골인이 세계 인류의 기원’이라며 거드름 피웠을 지 모른다. 그러면서 지금까지도 몽골인을 무서워하며, 때로는 경외하고, 때로는 미워했으리라.



그런 생각에 잠겨있는데 가이드 밧짜씨가 1층으로 내려가 전통의상 '델'을 입어보자고 했다. 5달러를 내면 옷을 골라 입고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코스였다. 가게를 지키고 있는 10대 소녀들이 수줍게 한국말 인사를 건네며 옷 입는 것을 도와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빨강인 의상이었다. 경비원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다가와 곧 영업이 끝나니 빨리 끝내라고 재촉했다. 그러면서도 내게 옷이 잘 어울린다며 박수도 쳐주고 사진도 찍어줬다. 몽골인들은 가만히 있으면 다소 화가 난 것 같지만, 막상 말을 터보면 수줍고 순박했다.


이런 사람들이 과거에 그토록 많은 서양인들을 두렵게 했다니. 울란바토르 시내를 점령한 한국 편의점, 다른나라에 돈을 벌러 가는 몽골 노동자들, 징기스칸의 그림자 하나로 지금까지 ‘인지도 명맥’을 겨우 유지하는 지금의 국력을 생각하면 도무지 과거는 상상이 안 된다. 이 평범해보이는 사람들이, 과거엔 세계의 절반을 차지했던 강국의 후손들이라니. 역사의 일출과 일몰이 하루처럼 덧없게 느껴진다. 내 나라도 아닌데 마음이 허탈하다. 이상하게 한 숨이 나오고 일장춘몽 타령을 하게 된다 노인처럼.



이런 감상에 빠져있는데, 가이드가 다음 일정을 가야한다며 또 나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쉬웠다. 조금만 더 둘러보면 안될까 생각했다. 차에 같이 탄 일행들은 이미 숙소에 들어가면 누가 먼저 씻을지 같은 일상 이야기를 나눴다. 밧짜씨는 저녁으로 양고기 찜 ‘허르헉’이 제공된다고 말 했다.


다들 다음을 향해 가는데, 또 나만 천천히다.


또 나만 뒤를 돌아본다. 뭐 어제보다 내일을 기대하는 것이 인생에서는 늘 나은 일이겠지만, 나는 늘 이렇다. ‘훈’의 후예들이 이토록 작아지고 조용해진 것이 왠지 슬펐다. 감성 과잉인 나는 처량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며 멀어지는 징기스칸 마동상에게 손인사를 했다. 눈물은 흐르지 않았지만 이미 내 눈썹은 팔八자가 되어 섭섭한 표를 내고 있었다. 밧짜씨가 웃으며 말했다. 내일 더 좋은 데 갈 거라고.


그렇지, 이제 겨우 여행의 시작일 뿐이다.

울면 안돼, ‘훈’은 우는 아이에게 찾아 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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