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감성과잉 작가의 몽골기행 #에필로그
“다시 태어난다면 어느 나라 사람 할 거야?”
“나? 몽골.”
역시 나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가보지도 않고 친구하나 없는 나라에 대해 자신 있게 대답한다. 그 이유에 대한 대답도 준비되지 않았지만 일단 아무 말이나 하고 본다. 이게 바로 감정 과잉에 고집 센 영세 작가의 대답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애인이라고 대답하는 괴상한 패기 같은 거랄까.
어느 순간부터 느닷없이 몽골이었다. 이상하게 계속 생각났다. 몽골이라는 이름의 어감도 좋고, 막연히 상상되는 풍경도 좋았다. 매일 칭기즈칸이나 몽골음악을 검색했고, 말을 타고 달리는 사람들을 상상했다.
스트레스일까? 아니면 단순 여행욕구일까.
언제부턴가 일상의 모든 과정이 못 견디게 힘들어졌다. 남들은 수월하게 해내는 별것 아닌 일들도 나에겐 ‘처리하기 힘든 과업’처럼 느껴졌다. 남들은 숨도 쉬고 웃고 먹고 떠드는데, 나만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무언가 대단히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벗어나고 싶었다.
티브이에 나오는 누군가 그랬다. 공인인증서 발급받는 게 최근 인생에서 가장 큰 고난이었다고. 듣고 있던 사람들은 고작 그거냐며 실소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들에게 별것 아닌 일들이 우리들에겐 왜 ‘고난’이 되는 것인가를 생각해 봤다. 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 파악하기도 전에, 나는 이미 세상의 기세에 눌려 잔뜩 찌그러진 채 땅속으로 들어가 앓아눕고 있었다. 해결을 위해 이유를 찾는 것조차 피곤한 과제였다.
일어나야 한다. 어쨌든 죽지 않고 살아내는 게 중요하니까.
그렇게 답을 모르는 채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삼킬 때에, 갑자기 몽골이 떠올랐다. 생전 도시만 좋아하던 내가, 대초원을 상상하는 순간 잠시 그 속에서 숨이 쉬어질 것 같았다. 평생 들어본 적 없던 몽골 음악이 내 심장을 가로질러 구멍을 냈다. 그 구멍으로 오래 쌓인 어둠의 불순물이 다 쏟아져 나왔다. 쏟아지는 별이, 끝없는 언덕이, 낯선 언어가, 생경한 사람들이 내 마음을 두드렸다. 몽골이라는 나라가 작은 구원의 밧줄을 내려주고 있어. 가본 적은 없지만, 분명해.
그리고 나는 이 짧은 일기를 썼다.
(2023_06_10)
무엇을 위해, 어떤 이유로, 누구를 위해
끝없이 고통을 이겨내야 하는 거냐며 삶을 탓하고 싶을 때
몽골행 비행기 티켓을 덜컥 예약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육아의 고난,
지난한 일상의 굴레,
도무지 낫질 않는 지병,
땅으로 곤두박질친 자존감,
자아실현의 부재,
징글징글하게 못 버리는 소원과 열망을 뒤로하고,
나는 몽골로 떠난다.
벗어던질 것은 벗어던지며, 털어낼 것은 털고 오겠다.
폐부를 잠식한 어두운 숨을 모두 꺼내 신선한 초원의 숨으로 채우겠다.
시야의 지경을 넓히고, 발 끝마다 자유를 느끼다 오겠다.
나, 숨 쉬기 위해 몽골로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