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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매거진 Sep 12. 2020

기획자의 최애 서비스는? (2)

어쩌다 매거진

Q. 나의 '최애 서비스'를 소개해주세요. 왜 좋은지도요!


런드리고 - 그 서비스가 좋은 이유, 성장하는 이유


오늘 받은 질문은 '나의 최애 서비스', 항상 이 질문을 받으면 소개하고 싶었던 서비스가 있는데 드디어 받아서 기분이 좋았다. 오늘 소개하려고 하는 서비스는 내 삶의 질을 올려준 세탁 서비스 '런드리고'다. 



우선, 런드리고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내가 얼마나 셔츠를 사랑하는지 말을 하고 시작해야겠다. 직장 생활을 하기 시작해서 내 패션은 급격히 바뀌기 시작했는데,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나의 캐릭터를 찾기 위한 여정은 꽤나 길었고 그 시간이 지나자 어느 정도 내 스타일은 한 가지 스타일에 수렴되기 시작했다. 


대학교 시절, 나는 히피적인 스타일을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일단 가장 큰 원칙은 절대로 몸이 불편한 옷은 입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책상에 앉아있거나, 카페에서 공부를 하는 편이 많고, 걷는 것도 좋아하고, 운동도 좋아하는 편이라 몸을 움직이는 경우가 많은데 많은 과정에서 내 하체에 핏되는 스키니나, 슬림한 바지는 절대 입지 않았다. 애초에 옷이라는 것은 나의 기동성(mobility)를 해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절대 원칙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라 간생간사(간지에 살고, 간지에 죽는)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랑은 친하게 지내지를 못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옷만 편하게 입는다고 하면 되나?라고 질문하신다면 또 까다로워서 그런 것은 아니다. 편한 옷을 좋아하지만, 그 와중에도 체형에 맞으면서, 전반적인 나의 느낌을 옷을 통해 전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 무조건 사이즈를 키우면 옷은 편하겠지만 그렇다고 내 체형에 맞지 않는 스타일을 고려하지는 않는다. 이 와중에 지나치게 브랜드의 로고나 캐릭터를 강조하는 옷은 피한다. 브랜드의 로고나 캐릭터가 강조되면 옷을 입는 나보다, 옷이 더 강조되는 역의 관계가 발생하기 때문에 또 싫다. 최대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숨기면서 옷을 입은 사람의 개성을 살려주는 옷, 그리고 간단한 액세서리(브레이슬릿, 안경, 워치) 그리고 신발을 고려해서 전체적인 패션을 잡고자 노력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역시나 사계절 내내 가장 사용성이 높은 아이템은 드레스 셔츠다. 흰색드레스 셔츠는 그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도대체가 개성이라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그건 오해다. 드레스 셔츠야말로 한 사람의 개성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도록 트윅 할 수 있는 아이템인데 옷을 어떤 바지와 매칭하는가, 어떤 신발과 매칭하는가, 턱인을 하는가 밖으로 빼는가, 소매 부분을 몇 번 접어서 어떤 모양으로 올리는가, 카라의 위치와 모양, 단추를 몇 번째까지 푸는지에 따라 같은 흰 와이셔츠라고 해도 많은 모양이 변형된다. 셔츠야말로 그 쓰임새에 따라 캐주얼하면서도 클래식함까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범용성이 높은 아이템이 아닐까. (셔츠의 다양한 방식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이 혹시 있다면, 아래 글을 읽어보셔도 좋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는 Ermenegildo Zegna의 여름 셔츠다. 같은 브랜드로만 10장 정도를 보유하고 있는데 원단의 질감이 좋고, 각 카라와 모양이 모두 달라서 내가 매칭 하고 싶은 기분에 따라서 조율할 수 있다. 어떤 바지와, 어떤 신발과 매칭하느냐에 따라 중요한 날 슈트와 함께 매칭할 수도 있고, 가볍게 보트슈즈에 청바지와 함께 캐주얼한 느낌으로 매칭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 '절대 불편하지 않아야 한다'라는 기본 원칙을 지키고 있다. 좋은 옷감은 나를 더 기분 좋게 만든다.


런드리고를 소개하기 위해서 내 셔츠 사랑을 이렇게나 서술하는 게 꽤나 길었다. 물론 모두가 위 내용을 읽어주실 필요는 없지만, 이런 사람도 있구나 정도로 생각하셔 주시면 감사할 뿐. (생각보다 30대 남성들 중 셔츠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가는 것 정도는 좋은 정보 아닐까) 


셔츠를 좋아하다 보니, 이를 관리하는 것도 하나의 일이었다. 진짜 셔츠 마니아들은 셔츠를 입고, 이를 세탁하고, 다림질하는 과정까지를 하나의 '의식'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많다. 그렇지만 세탁을 하고, 건조하고, 다림질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리는 과정인걸. 물론 다림질을 하는 능력 자체가 없다면 문제가 조금 되겠지만, 한 주의 2-3시간을 들여서 매일 다림질만 할 수도 없는 생활이다. 기회비용적으로 잃는 것이 너무 크지 않은가. 


셔츠 값이 꽤나 나가는지라(제냐는 좋은 옷감으로 꽤나 비싼 가격), 이를 전문적인 곳에 맡기고 잘 관리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동네 세탁소에도 종종 옷을 맡기기야 하는 편이지만, 오랫동안 관리해야 하는 옷들을 맡기다 보면 옷이 해지거나 원단에 해를 끼치지 않을까라는 우려도 있다. 무엇보다 시간을 내서 세탁소에 옷을 맡기고, 다시 찾아가는 과정이 너무 귀찮은 것도 한목 했다. 


집에서 빨래하는 것처럼, 시간을 많이 쓰지도 않고, 그런데 관리는 전문적으로 해주었으면 좋겠고, 가격은 비싸지 않았으면 좋겠고, 이 세 가지 니즈를 모두 적절히 지켜주는 서비스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런드리고 체험으로 이어졌고, 2회 체험을 해본 뒤 정기 구독권을 신청(매달 20장의 셔츠, 2번의 무료 배송) 했다. 한 달 4만 원의 비용으로 삶의 질을 꽤나 높일 수 있는 서비스를 누리게 된 것이다. 



옷을 입고, 위와 같이 생긴 빨래 통에 셔츠를 던져놓는다. 일주일 정도 지내면 셔츠 7개가 쌓인다. 토요일이 되면, 저녁 휴대폰을 켜고 간단하게 '수거 요청' 버튼을 누르고 집문 앞에 빨래통을 가져다 놓는다. 혹시나 하는 분실이 우려되면,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동봉된 키 체인을 문에 엮어둔다. 이렇게 잠에 들면 밤 11시 이후 조용하게 옷을 수거하고, 다음 날 저녁 깔끔하게 세탁 및 다림질된 상태로 새 옷을 가져다준다. 얼마나 편리한가. 비용은 한 달에 4만 원에 불과하다. 


혼자 사는 남자가 세탁 관련하여 취할 수 있는 선택은 생각보다 많이 없다. 


하나는, 직접 세탁 및 다림질을 하는 것

둘은, 동네 세탁소에 맡기는 것 (크린토피아 포함)

셋은, 런드리고(세탁 서비스)를 통해 세탁하는 것 


직접 세탁 및 다림질은 너무 많은 비용이 든다. 위에서 말했듯, 한 번 몰아 하더라도 최소한 3~4 시간을 오로지 세탁에만 몰입해야 한다. 큰 비용이다. 


동네 세탁소, 좋은 선택이지만 동네 세탁소는 좋은 원단의 옷을 맡기기에 부담이 된다. 그렇다고 크린 토피아를 방문하자니 차에 옷을 싣고, 5분을 이동해야 한다. 수거할 때도 방문해야 한다는 점이 부담스럽다. 


런드리고, 4만 원이라면 물론 아까운 비용이지만 위의 두 가지 밸류를 생각한다면 (시간을 아끼고, 이동하지 않고, 좋은 퀄리티의 세탁을 보장한다는) 충분히 투자할 수 있는 비용이다. 구독권이 아깝다면, 필요할 때마다 체험용으로 1회씩 사용해도 충분하고. 



소비자적 관점에서만 글을 쓴 것 같아서, 분석적 관점으로 이 회사를 보면서 배우는 점도 많다. 좋은 서비스, 직관적인 마케팅을 넘어서도 런드리고 가 취하는 전략적인 방향성이 기존 크린토피아 및 동네 빨래방들이 갖추지 못한 역량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렇다. 



종종 특정 동네 빨래점들은 세탁 배달 서비스를 운영하는 곳들도 있다. 그러나, 한 지역구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확장력이 힘들고 무엇보다 시스템이 아닌 인력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지역이 확장되면서 동시에 비용이 비례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런드리고에 우위를 둘 수 없다. 


크린토피아는 직접적인 비교 대상이 되는데, 유사한 비즈니스 모델 같지만 전혀 다르다. 크린토피아는 각 지역별로 체인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고, 세탁 시설이 없는 각 크린토피아 대리점들은 빨래를 '수거'하는 역할을 한다. 


크린토피아 본사는 각 지역별로 구축한 빨래 세탁소를 통해 대리점을 통해 '동네'에서 수거된 빨래들을 센터로 모아 세탁 및 관리하고, 다시 대리점으로 배송해 주는 시스템. 이 과정에서 본사는 체인점들에게 '수거 비용'과 관련된 로열티를 제공할 뿐이다.


'빨래 서비스'라는 관점에서 동네 빨래 세탁에 비해 지역이 확장되어 있지만, 비즈니스 모델 자체만을 생각해 보았을 때 대리점을 하나 확장하며 지역을 넓혀나갈 때마다 다시 로열티를 비례하여 제공해 주는 시스템이다. 사업의 확장과 비용이 비례적으로 늘어간다는 것 자체가 런드리고 와 가장 큰 차이다.


반면, 런드리고는 사업이 확장됨에 따라 비용을 축소시켜가며 규모의 경제를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런드리고의 경우 초기 수도권, 서울 전 지역에서 서비스가 되지 않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높은 초기 투자비용으로 보인다. (아직도 수도권을 제외한 많은 지역에서 서비스는 되지 않는다) 


초기 세탁 센터와 물류 센터를 구축하는 것은 빨레 서비스 시작에 가장 큰 초기 투자 비용이고, 그 후에는 수 많은 의류를 라벨링하고 분류하여 효율화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비용이 든다. 런드리고는 원재료(세제), 초기 투자(세탁 센터 및 오토 폴딩 시스템)을 이미 구축한 바 있다. 


또한, 런드리고는 디지털 위에서 각 소비자들이 직접 정보를 등록할 수 있게 구축했고, 빨래 수거 및 배송 시 '옷'을 기준이 아니라 '런드렛(런드리고의 빨래통)'을 수거하는 방식으로 시스템화 했다. 이는 각각의 런드렛을 기준으로 모듈화화 하여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의미로 더 큰 단위에서 정보의 라벨링과 수거 프로세스를 효율화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빨래 모듈 시스템과 물류 시스템의 초기 버전이 구축된 이상, 크린토피아와 동네 빨래방이 사업을 확장하면서 비례적으로 비용이 늘어나는 것과 반대로 런드리고는 사업이 확장되면서 비용을 계속적으로 줄여나갈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큰 격차를 만들어낼 것으로 보인다. (향후 추가적인 CAPEX 지출은 발생할 수 밖에 없지만, 초기 구축된 시스템 위해서 추가적인 비용을 쌓는 것과 초기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의 갭은 상당하다.)


추가로, 저번 달까지만 해도 각 옷에 대해 정보는 라벨링 되지 않았는데, 오늘 확인해보니 빨래통(런드렛)에 담긴 하나하나 제품에 대한 라벨링 기능이 더해진 '인수증' 피처(feature)가 업데이트됐다. 정보가 점점 더 미세하게 분류되어 내려가는구나 싶었다. 이는 더 많은 데이터를 취득하고 분류할 수 있을 정도로 라벨링이 미세해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데이터들을 바탕으로 런드리고는 한국 소비자들의 빨래 데이터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고, 시즌별, 유형별, 빨래 트렌드에 맞춰 맞춤형 플랜을 제시하며 소비자의 가격 임계점과 서비스 추가의 한계 비용 사이의 적정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더 최적화할 수 있지 않을까. 


부가적이지만, 런드리고가 다른 업체들과 활발하게 콜라보를 진행하는 점은 더욱 주목할 만하다. 샐러드 업체와의 마케팅은 마케팅 콜라보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두 번째 사진인 침구류 판매는 런드리고 비즈니스가 단순 빨래 수거-배달 서비스를 넘어 '세탁, 의류'와 관련된 전문성을 가진 리테일 컴퍼니가 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런드리고가 빠르게 규모의 경제를 구축한다면 삼분의 일과 같은 매트리스 전문 기업들을 소개하며 리테일 수수료를 받고 비즈니스를 확장할 수 있지 않을까, 단가가 높은 매트리스부터 단가가 낮은 이불, 베개까지 확장 가능성이 더더욱 높다. 


아무쪼록, 소비자 단, 비즈니스 단에서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아직까지는 굉장히 만족하면서 사용하고 있는 서비스다. 높은 퀄리티, 당일 배송, 부담스럽지만 사용 가능한 가격, 대체할 수 없는 경쟁자까지. 소비자도 잡았고, 나와 같은 소비자가 많아질수록 더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는 비즈니스 모델까지. 성장하고 있는 회사들은 단순히 '열심'을 넘어 '체계'적으로 이길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 추가 : 물론 그렇지만, 크린토피아는 아직도 절대적 강자이며, 990원 와이셔츠 세탁은 그 누구도 만들지 못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스타트업의 입장에서 경쟁력을 분석해 본 글이라 편향적일 수 있으며, 크린토피아의 매스 세탁, 물류 시스템, 오프라인 코인 워시 등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 




글쓴이 비즈카페

직무는 비밀 / 2년차

까페를 좋아하고,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습니다. 비즈니스랑 까페를 조합하니 비즈까페가 되더군요. 중고나라 같은 이름이지만, 아무쪼록 사랑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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