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한 마디로 시작된 대입 '급'변화
11월 28일 교육부가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후 학생, 학부모, 교육 현장에서 혼란의 목소리들이 잇달아 들리기 시작했다.
이번 발표 안은 총 12쪽짜리 메인 문서와 7쪽짜리 질의 응답지, 그리고 5쪽짜리 보도자료로 구성되어 있다. 교육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누구나 다운로드할 수 있다.
읽어보면 이게 무슨 소린지? 어떻게 하라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는 느낌을 받게 될 확률이 높다. 실제로 전문가들도 발표 자료를 보고 해석이 다르니깐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보도자료 5페이지를 보면 이번 방안의 핵심은 세 가지라고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
1. 학생부종합전형 공정성 강화
2. 대입전형의 합리적 비율 조정
3. 사회통합 전형 신설
1. 학생부종합전형 공정성 강화
먼저 이번 개편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학생부종합전형의 공정성 강화이다. 주요 보도자료 12쪽 중에서 무려 10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다.
요약하면 학종 실태를 조사해보니 불공정한 부분이 있다. 고교 서열화가 존재했고, 부모 배경/사교육 등 외부요인이 영향을 미쳤고, 학생부 평가가 미흡했고, 학종 선발 결과에 소득/지역별 격차가 확인되었다.
그래서 학생/학부모 불신이 생겼고 이를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어떻게?
첫 째, 부모 배경 등 외부요인 차단이다. 정규 교육과정 외의 비교과 활동은 대입에 반영되지 않게 하고 학생부 기재 항목을 단계적으로 축소한다.
자소서, 교사추천서는 폐지하고 2022년 입시부터는 비교과 활동을 전면 재검토한다고 하니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전반적으로 비교과 활동을 줄이는 것은 확실한데 얼마나 줄일지는 미지수다.
둘째, 학교와 교사의 책무성을 강화이다. 학생부가 공정하게 기록될 수 있도록 연수를 확대하고 기재 표준안을 현장에 보급하고 만약 허위기재를 하면 엄정하게 조치한다.
그런데 교사의 연수와 표준안 등으로 과연 교사의 책무성을 강화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럼 그동안은 연수가 부족해서 교사의 책무성이 낮았을까?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 보도자료를 만든 교육부 직원도 안다. 그런데 위에서 시켜서 뭐라도 만들어야 하다 보니 이렇게 되는 것 같다. 결국 교육부 직원도 또 한 명의 직장인일 뿐이니깐.
셋째, 출신 고교의 후광효과 차단이다. 출신 고교의 이름을 블라인드 처리하고 평가를 하겠다고 하는데 이게 특목 자사고 학생들에게는 날벼락같은 소리다. 특목고 3등급과 일반고 3등급을 같은 점수로 평가하겠다는 것인데 과연 실제 입시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이 되질 않는다.
일각에서는 학생부를 보면 어느 학교인지 안다고 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특히 커리큘럼이 독특한 고등학교는 블라인드 처리를 해도 알아볼 수 있다. 하지만 비슷한 외고들끼리, 자사고끼리, 과학고끼리는 전문가도 구별하기 힘들다.
대한민국 현실은 특목 자사고들 사이에서도 철저하게 레벨이 나누어져 있다. 모든 학생과 학부모가 알고 있다. 그리고 열심히 공부해서 들어갔는데 이제 그 차이를 대입에서 없애겠다고 한다. 이게 과연 공정한 것일까? 적어도 블라인드 처리를 하려면 미리 공지하고 들어온 학년부터 적용해야 하는 게 아닐까?
넷째, 충분한 평가 시간을 확보해서 지원자들의 학생부를 꼼꼼히 보고 교육을 통해서 사정관의 역량을 강화하겠다고 한다. 머 좋은 방안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평가에 주관이 개입된다는 사실 자체이지 사정관의 역량이 핵심이 아니다.
이렇게 해서 학종의 불신을 해소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학종의 불신은 크게 세 가지이다. 평가에 주관이 개입된다는 점, 과정에 외부의 영향력이 지대하게 들어간다는 점, 그리고 교육의 질적인 부분이다.
이번 개편안에서는 앞의 두 가지만 다루고 세 번째 사항은 아예 언급조차 안 하고 있다. 사실 교육의 질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닌가?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면 제도를 아무리 바꿔도 결국 유명무실해진다. 단적으로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서 학생부 전형을 늘리자고 하는데 과연 그렇게 해서 공교육이 정상화될까?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일 수 있다. 입시에서 내신이 가지는 영향력이 커지니 아이들이 학교 수업을 열심히 듣고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 애를 더 쓸 것이니깐.
그러나 안을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수업의 질을 올려서, 선생님이 열심히 가르쳐서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집중해서 듣는 것이 아니라, 대학에 가려면 내신을 잘 받아야 해, 내신을 잘 받으려면 어쩔 수 없이 이상한 문제라도 맞히기 위해서 학교 수업을 잘 들어야 하는 이유라면 그게 과연 진정한 의미의 공교육 정상화일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내신 문제의 질이 수능 문제의 질보다 떨어진다. 이건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단지 변별을 위한 이상하게 함정을 판 문제를 맞히기 위해 시험 범위를 달달 외워야 하는 공부를 통해 과연 우리 아이들의 지식과 지적 수준은 얼마나 향상될까?
적어도 수능은 해당 과목의 전반적인 체계와 이해를 요구한다. 그리고 단 기간에 좋은 성적이 불가능하다. 몇 개월에서 1년 이상 꾸준한 학습자세가 선행되어야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몇 년 전 즈음에 유명한 기업의 2세가 재수를 해서 인 서울 4년제 대학에 들어갔다는 뉴스를 봤다. 아무리 좋은 사교육을 시켜도 본인이 공부를 하지 않으면 성적은 오르지 않는다.
시민들은 이런 것을 보면서 국가 교육 시스템의 공점함이 살아 있다고 느낀다. 만약 요즘이라면 그 학생이 재수를 했을까?
2. 대입전형의 합리적 비율 조정 & 3. 사회통합 전형 신설
12페이지 중에서 10페이지까지 학생부종합전형을 어떻게 공정하게 만들겠다고 길게 설명하고 있다. 그렇게 읽다가 지쳐갈 즈음 10~12페이지에 대입전형 비율 조정과 사회통합 전형 신설을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다.
대입전형의 합리적 비율 조정은 몇몇 대학들에게 수능을 40%까지 늘리라고 권고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수능 전형을 늘리려면 다른 전형을 줄여야 하는데 어떤 전형을 줄일까?
그건 대학들 자유이지만 교육부는 친절하게도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바로 사교육 없이는 준비하기 힘든 논술 전형을 없애라고 조용히 지시하고 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대학들과 미리 합의가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아마 논술학원 관계자 말고는 큰 반발이 없으니깐 이럴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교과와 종합 전형을 건드리면 전국에 있는 학교에서 또 엄청난 혼란이 발생할 것이니깐. 그리고 논술전형은 예전부터 점진적으로 축소해서 폐지하기로 공약했었다.
그리고 사회통합 신설 전형은 조금 생소할 수 있는데 쉽게 말해서 서울의 대학들이 지방의 학생들을 학생부 교과로 더 선발하라고 권고하는 것이다. 이 전형이 없는 학교는 10% 정도 선발하고 이미 10% 정도 선발하고 있는 대학교는 10% 더 늘려서 20% 정도를 선발하라고 장려하고 있다. (묻고 더블로 가?)
이미 지방의 대학교는 이 전형으로 많은 지방 학생들을 선발하고 있다. 그런데 서울의 대학들에게 이렇게 권고한 내용은 신선하면서도 이 정부의 방향성을 볼 수 있다.
뭐랄까 서울에서 공부한 학생은 인 서울 대학에 가고 지방에서 공부한 학생은 지방의 대학에 가는 것이 아니라 대학들로 하여금 다양한 학생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말 그대로 '사회통합'의 취지가 있는 것 같다.
그럼 지방에서 학교 생활을 충실하게 한 학생은 지방의 대학교나 서울의 대학교 중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사회적으로도 다양한 학생들이 여러 환경에서 학습하면서 외부 적응력과 사고방식이 유연한 인재를 기를 수 있다.
아무래도 지역마다 특유의 문화가 있으니, 태어난 지역에서만 공부한 학생보다 여러 지역을 경험한 학생의 창의성과 문제 해결 능력이 평균적으로 높은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외국의 몇몇 기업은 신입사원의 지역별 쿼터제를 운영한다. 아무리 똑똑해서 같은 지역에서 같은 경험을 하면서 자란 사람에게는 그 문화가 가지는 사고의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역시나 신설 전형을 10% 늘리려면 다른 전형은 줄여야 한다. 이마저도 교육부가 친절하게 대학들에게 가이드라인을 제공해주고 있다. 논술 전형에서 수능으로 10% 이동하여 정시 40%를 맞추고도 남은 논술전형 선발인원이 있다.
계산해보면 남은 논술 전형 인원과 사회통합 전형 신설 인원이 거의 비슷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신기하죠? 이쯤 되면 사이즈가 딱 나온다고 볼 수 있다. 장사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니깐.
3. 개인적인 소감
이번 발표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몇 달 전에는 교육부가 대학들에게 학생부 전형을 늘리라고 돈줄을 쥐고 압박하더니, 대통령의 한 마디로 이제는 수능을 늘리라고 하고 있다.
사실 이렇게 교육의 방향을 대통령 말 한마디로 급 선회하면 교육 현장에 더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아무리 문재인 대통령이 청백리로서 인기가 좋고 지지율이 높게 나와도 교육의 방향은 함부로 손대면 안 된다. 교육은 누군가에게는 미래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꿔 생각하면 이렇게 밀어붙이지 않으면 또 빠른 변화가 힘든 것도 사실이다. 수십만 명, 수백만명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있다 보니 모든 것을 고려하면서 의사결정을 하기에 세상은 너무나 빨리 변하고 시민들의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기 때문이다.
역시나 대한민국 교육은 한 두 가지를 고쳐서 해결될 상황이 아니다. 그리고 이 방향이 맞는지도 잘 모르겠다.
단지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을 응원한다. 교육 정책이 혼란스러워도 부모님께서 아이와 함께 중심을 잡고 꾸준하게 준비한다면 좋은 결과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