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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철 Mar 31. 2020

코로나보다 무서운 게임중독

feaat. 스마트폰 중독, 미디어 중독

  전 세계가 코로나 19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지금 어떤 식으로든 모든 사람은 고통을 분담하고 있는 것 같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미국, 사우디, 러시아의 유가 전쟁으로 경제 침체가 장기화되는 것은 아닌지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교육부는 사상 초유로 연이은 세 번의 개학 연기를 발표했다. 9월 학기제, 온라인 개강 등의 논의가 학생과 학부모를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매일 수십, 수백 명의 감염자, 사상자가 발생하니 모두들 '집 밖은 위험해'를 외치며 방콕하고 있는 실정이다.


  원래 3월이면 학교에 가고 공부를 했을 아이들이 집에만 머무르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집에서 과연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나마 양심이 있는 아이들은 공부를 하는 시늉이라도 하겠지만, 결국 아이들의 눈이 향하는 곳은 스마트폰, 컴퓨터, TV 등 미디어 화면이다.


  각 가정에서는 코로나도 무섭지만,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아이들이 더 무섭다는 푸념이 들린다. 이쯤 되면 부모님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고민한다. 집에서 하루 종일 게임을 하면서 뇌를 망가뜨리는 것과 코로나의 위험을 무릅쓰고 공부하러 독서실이나 학원에 나가는 것 중에서 뭐가 더 위험한 것일까?


  그렇다고 무조건 스마트폰을 금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소통하면서 친구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게임, 스마트폰, 미디어의 특성과 원리를 알고 있어야 더 효과적인 예방책을 생각해낼 수 있을 것이다.



| 스마트폰을 끌 수 없는 이유 1. 인간관계


  고등학교 때 동네에 아주머니들이 난리가 났던 적이 있다. 어머니에게 물어보니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계를 했는데 한식뷔페를 하던 집주인이 곗돈을 들고 사라졌다는 것이다. 


  당시 아주머니들의 입에서 굉장히 무서운 말들이 나왔다. 만약 그 한식뷔페 주인이 동네에 다시 나타난다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을 정도로 험악한 육두문자가 들렸다. 아주머니들이 화나면 조폭보다 더 무섭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도 계를 한다. 일종의 '게임 계'이다. 혼자서 하면 포인트를 100점 받지만 둘이서 하면 300점, 400점 받을 수 있다. 이 포인트를 돌아가면서 받는 것이다. 


  만약 친구 5명이서 같이 게임을 하기로 했는데 우리 아이가 어제 본인의 포인트는 받아먹고 오늘 친구가 포인트 받는 날 오지 않는다면 다른 친구들의 기분은 어떨까? 위에서 곗돈 떼 먹힌 어머니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그만하라고 소리쳐도 "엄마 지금은 끌 수없어요."라고 절박하게 말하는 것이다.  전기 코드를 뽑아버린다고 협박해도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컴퓨터/와이파이 전원을 꺼버리면 아이는 친구들의 포인트를 갚아주기 위해서 나중에 부모님이 보지 않는 곳에서 더 열심히 게임을 해야 한다. 아니면 친구들은 그 아이를 놀리고 따돌리고 상대해주지 않을 것이다.


  밤늦은 시간 아빠가 퇴근을 했는데 컴퓨터 게임을 하던 아들이 나와서 인사를 하지 않았다. 화가 난 아빠는 모니터를 빼서 창밖으로 집어던졌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 아이는 게임에 정신이 팔려서 아버지가 들어오시는 소리를 못 들었을 수도 있지만, 들었어도 움직일 수 없었을 것이다. 


  같이 게임을 한다는 것은 매 순간 집중해서 초 단위로 판단을 해가며 함께 적을 물리쳐야 하는 것이다. 만약 제대로 역할을 못해서 다른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게 되면 그것도 아이들 사이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축구를 11명이 하는데 누군가 그늘에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쉬고 있다면 다른 아이들이 뭐라고 하겠는가?


  이렇게 같이 게임하는 계를 '파티' '길드' '혈맹' '클랜' 등으로 부른다. 이는 아이들 사이에서 일종의 신용이다. 어른들이 신용을 잃으면 사회생활이 피곤해지는 것처럼 아이들도 신용을 잃으면 인간관계가 고달파진다. 그래서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끌 수 없다.



| 스마트폰을 끌 수 없는 이유 2. 게임 회사


  아이들도 공부를 잘하면 좋은 것을 안다. 하지만 공부는 힘들고 지겹다. 더욱이 열심히 노력한다고 항상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모처럼 정말 제대로 공부했는데 시험 문제가 어렵게 나오면 점수가 그대로 이거나 더 떨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성적표가 나오는 날 부모님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


"넌 왜 맨날 그 모양이냐?"


  반면에 게임은 노력하고 들인 시간만큼 정직하게, 즉각적으로 보상이 주어진다. 조금만 해보면 초급에서 중급으로 레벨이 올라간다. 레벨업은 인터넷 게임 속에서 자신의 신분과 계급, 위상을 결정하는 일종의 정체성이다. 어떤 PC방의 이름은 "니 렙에 잠이 오냐?"이다.


  손가락으로 몇 번 악당을 죽이면 보상을 받는 게임과 몇 달을 고생해야 보상을 받을까 말까 한 공부 중에서 아이들은 대부분 전자에 끌린다. 그렇게 아이들은 서서히 게임에 빠져든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아이의 뇌가 성취감을 원해서 손으로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조작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이가 중독되면 게임 회사는 살고, 아이가 게임을 하지 않으면 게임 회사는 망한다. 하지만 아이와 게임회사의 줄다리기에서 승자는 늘 게임 회사다.


  예컨대 학생들이 밤 12시에 많이 게임을 나간다는 통계를 알고 있는 회사는 11시 50분쯤에 캐릭터 주변에 괜찮은 아이템 하나를 떨어뜨려 놓는다. 그러면 그만 하고 이제 막 컴퓨터를 끄려던 아이는 뜻하지 않게 생긴 아이템에 기분이 좋아져서 원래 계획보다 더 하게 된다.


  초등학생들이 가장 많이 접속하는 시간은 토요일 오후 2~5시이다. 그래서 게임 회사들은 이 시간에 경험치 2배의 이벤트를 연다. 마치 백화점 세일과 같은 것이다.


  현실에서 돈을 벌려면 시간을 내서 일을 해야 하는 것처럼, 인터넷 게임에서도 포인트나 아이템, 장비 등을 얻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더 좋은 아이템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게임에서는 노력하는 과정도 공부보다 훨씬 재미있다. 그래서 시간만 나면 뇌는 빠르고 확실한 즐거움을 느끼고자 아이에게 게임에 접속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런 게임을 만드는 제작자를 욕할 수도 없다. 만약 우리 남편이 게임회사에 다니는데, 그런 중독성이 높은 게임을 만들었다면 '게임성'이 우수하다는 명목으로 보너스를 받아올 것이다.



| 스마트폰을 끌 수 없는 이유 3. 뇌구조 변화 


  예전에 부모님들이 학교에 다닐 때에는 책상에 낚서가 많았다. 심한 경우 책상을 칼로 파서 '민수 러브 지연' 이 정도였다. 하지만 요즘 학교의 책상에는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다. 무엇을 위한 구멍일까? 스마트폰을 보는 구멍이다.


  도대체 학교 교사는 뭘 하는 것이냐고 비난하면 안 된다. 어른 말을 안 들어 정말 미워서 죽겠다는 아이가 집에서는 한 명밖에 없지만, 학교에는 이런 아이들이 30명씩 있다. 부모님 말씀을 안 듣는 아이가 선생님 말씀을 들을까? 학교 교사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자. 


  pc방에 가보면 청소년들이 총과 칼로 사람 죽이는 게임을 하면서 쉴 새 없이 욕을 내뱉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게임을 하면서 욕을 하지 않는 아이를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이다.


  열 살도 되기 전부터 컴퓨터에 앉아서 때리고, 찌르고, 죽이는 게임을 반복적으로 하면 전두엽이 발달되지 않아, 자신이 하는 말이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는 말들을 내뱉는다.


  우리 아이는 게임을 시작한 지 2~3년이나 지났는데, 여전히 착하고 귀여운 게임만 한다고 좋아한다면 오산이다. 처음에는 그렇게 달리기, 달팽이 잡기로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다 1년쯤 달팽이를 잡고, 달리기도 실컷 하면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든다. 


'이 나이에 내가 지금 이런 시시한 것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


  주변을 둘러보니 친구들은 다 화려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야! 이 죽이는 게임을 모르고 1년 동안 달팽이만 잡고 있었다니! 허무한 세월을 보냈구나!' 


  뒤늦게 더 잔인한 게임으로 옮겨간 아이는 그동안의 시간을 보상받고자 더 게임에 몰두한다. 사람과 몬스터를 죽이는 순간, 달팽이랑 싸우고 있는 아이들이 유치하게 느껴진다. 결국 그렇게 옮겨가게 되어 있다. 혹시 중학생이 되어서도 그 재미있는 게임을 두고 여전히 달팽이만 잡고 있다면 그게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친척집을 방문했을 때 그곳에 스무 살 전후의 청년이 무슨 게임을 하고 있는지 확인해보자. 달리기? 달팽이 잡기? 아니다.  몬스터나 사람에게 총을 쏘고 죽이는 게임이다. 상대방의 머리에 총알을 명중시키면, 머리가 터지면서 한 방에 죽는데 이를 '헤드샷'이라고 한다.


  아이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의 헤드샷을 할 때마다 뇌는 짜릿한 쾌감을 느낀다. 이런 강렬한 자극에 익숙해지면 뇌가 일상의 자극에 잘 반응하지 않는다. 특히 청소년기는 전두엽이 생성되는 시기이다.


  전두엽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그래서 전두엽에 문제가 생기면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집에서 부모가 무슨 얘기를 하면 듣지 못하고 딴소리하게 된다. 


  나아가 사람들의 일상적인 소리를 집중해서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 현상이 생긴다. 게임의 정신없는 기계음에 넋이 나가 있기 때문이다. 게임의 화려한 자극에만 뇌가 반응하고 책을 읽고 일상적인 대화에는 뇌가 반응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그렇게 뇌가 손상되는 것이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동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서서히 기능이 저하된다. 일단 뇌구조가 변화되면 뇌는 24시간 게임의 자극만 갈구한다. 노력으로 참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이다.


  고대 북극지방의 에스키모인들이 늑대를 잡는 방법은 조금 특이하다. 칼을 가축의 피에 여러 번 담갔다가 뺀다. 이렇게 여러 번 피에 적신 칼날은 금방 얼어서 고드름처럼 된다. 이 얼음칼을 숲에 꽂아 놓는다.


  그러면 피 냄새를 맡고 달려든 늑대들이 피 고드름을 핥아먹는다. 얼음에 늑대는 혀가 점점 마비된다. 그래서 얼음을 다 먹고 칼에 자기 혀에서 나오는 피를 먹다가 과다 출혈로 사망한다.


  이미 혀가 마비되었기 때문에 칼에 상처가 나는 걸 못 느끼는 늑대들과, 이미 뇌구조가 변했기 때문에 게임의 강한 자극을 못 느끼는 아이들이 모습이 묘하게 닮아 있다.



| 게임, 스마트폰, 미디어 중독 예방


  아이를 게임중독에서 빼내 보고자 하는 부모님의 처방은 보통 세 가지 정도이다.


  첫 째, 질릴 때까지 시킨다. 하지만 이 방법을 써서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얘기가 들리는 경우는 없다. 


  둘째, 강제로 제어한다. 예컨대 어머니가 외출할 때 전원 코드나, 마우스를 가지고 나간다. 하지만 이 방법도 기대만큼 효과는 없다. 어느 날 가르치던 학생의 가방에서 마우스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물어보았다.


"아니 왜 마우스가 가방에서 나오니?" 

"우리 엄마는요, 외출할 때마다 마우스를 뽑아 가지고 가세요. 짜증 나서 저도 하나 샀어요!"


  셋째, 이 방법이 현실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처방이다. 바로 게임 사용시간 조절이다. 학원 마치고 11시에 집에 온 아이가 이렇게 말하면 어머니는 마음이 약해진다.


 "하루 종일 학교, 학원에서 공부하고 왔잖아요. 이제 나도 머리 좀 식혀야겠어요."


  학원 갔다가 와서 1시간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매일 한 시간씩 하고 있으니 별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이는 착각이다. 매일 30분, 매일 1시간은 조절이 아니라 중독의 지름길이다.


  하루에 1시간 게임이 가능하다는 의미는 하루에 1시간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23시간 동안 참고 살아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게임을 하지 않는 23시간 동안 아이의 머릿속에서는 계속 게임을 하고 있는 셈이다. 당연히 일상생활에 집중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약속을 정해도 지키기 힘든 이유는 예외가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부모님 친구분이 찾아오셨다. 마침 기회를 포착한 아이가 나타나 귀찮게 하면서 딜? 이 들어온다. 


"게임 한 시간만 하면 안 돼?" 


  또는 일요일에 가족 나들이를 준비했다가 비가 와서 다시 돌아와야 하는 경우가 생겼다. 실망한 아이에게 게임 한 시간을 허락해주는 경우도 있다. 


  도박이나 알코올에 빠져 일상생활을 못하는 어른들을 중독자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인터넷이나 게임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을 때, 미디어 중독의 경각심을 심어줘야 한다.


  서구사회에서는 가능한 미디어를 접하는 시기를 늦추라는 공론이 확산되고 있다. 프랑스는 열세 살 미만 아이들이 인터넷 접속을 금지하는 법은 준비하는 학부모 단체가 있을 정도이다.


  결국 미디어 입문 시기를 최대한 늦추는 것이 좋다. 하지만 아이를 돌보는 것이 좀 힘이 드는가? 스마트폰을 켜주면 아이는 당장 천사처럼 조용해지고 부모는 드디어 조금 쉴 수 있다. 


  만약 초중고 나이의 자녀가 게임,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시간이 지나치게 많다면 '미디어 없이 1달 살기' 운동을 해보자. 미디어 없이 살았을 때의 삶의 질을 느껴보고 본인이 직접 비교해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24시간 옆에서 감시할 수 없는 노릇이다.


  아이들의 명분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게임 좀 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컴퓨터를 끄고 나오면서 스트레스가 해소된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더 씩씩거리고, 더 화를 내고, 충동적으로 바뀐다. 


  스트레스를 풀려면 밖에 나가 운동을 하며 땀을 흘려야 한다. 특히 게임으로 인해 전두엽 활성이 떨어진 아이들에게 운동을 시키자 뇌 활성을 높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스트레스를 푸는 또 다른 가장 좋은 방법은 책을 읽는 것이다. 독서는 뇌의 사령탑이라 할 수 있는 전두엽의 사고 기능이 활성화되기 때문에 화나 스트레스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모두 방법은 알고 있다. 스마트폰, 컴퓨터를 끄고 운동을 하고 독서를 하면 되는 것이다. 실행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부모님의 확고한 의지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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