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돈, 땀
프롤로그 – 교육학 최대의 난제 학습동기
그동안 공부법 관련 포스팅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방법은 알려줘도 아이들은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공부할 마음이 1도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들이 공부하고 싶게 만들 수 있을까?
사실 아이들에게 학습동기를 심어주겠다는 시도는 기원전부터 지금까지 대부분의 어른들이 실패한 영역이다. 교육심리 분야에서도 학습동기는 어려운 주제 중의 하나이다. 예전에 대학원에서 학습동기를 주제로 논문을 쓰겠다고 하니깐 지도교수님께서 “그거 하지 마라. 굉장히 많은 선배들이 도전했지만 제 때 졸업한 사람이 별로 없었다.”라고 하셨다.
어른들 말을 잘 듣는 나로서는 다른 주제를 선택했다. 그런데 꼭 말을 안 듣는 사람이 있다. 학습동기를 주제로 논문을 썼던 선배님은 3년 6개월 만에 석사를 마쳤다. 보통 석사가 2~2년 6개월, 박사가 3~4년 걸리는 걸 감안하면 굉장히 오래 걸린 것이다. 선배님은 그래도 많이 배웠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학습동기의 이상신호 (아래 6가지 중 3가지 이상이면 의심)
- 자주 머리가 아프고 배가 아프다.
- 여러 과목에서 성적이 떨어진다.
- 학교에 가지 않으려 한다.
- 수면습관, 식습관, 성격이 변한다.
- 사회적으로 위축되어 있다.
- 삶에 흥미를 잃어버린다.
동기에 관해서 본격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한 가지 문제를 물어보자. 다음 세 가지 환경 중에서 학습 효율이 더 좋은 쪽은 어느 것일까?
1번) 수업에 교재, 노트, 족보, 인강 등 모든 것을 제공한다. 수업시간에는 수업에만 집중하면 되고 이후에 모든 수업을 다시 볼 수 있다.
2번) 수업에 교재와 녹음기를 제공한다. 나중에 수업의 내용을 다시 들을 수 있다.
3번) 수업에 교재만 제공한다. 수업시간에 놓치면 다시 들을 방법이 없어서 필기를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1번)이 학습효율이 좋을 것 같지만 결과는 항상 3번을 가리킨다. 이미 다 있다는 생각이 오히려 학습 동기를 떨어뜨리는 셈이다. 지금 안 들으면 앞으로 다시는 못 듣는다는 긴장감이 오히려 학습동기를 올리는 것이다. 기억하자 동기의 시작은 결핍이다.
“엄마는 어릴 때 언니가 봤던 썼던 책으로 공부하고, 옆에서 동생이 TV를 보는 환경에서 공부해서 대학 갔는데, 너는 니 방 있고, 학원 보내줘, 독서실 보내줘, 등하고 라이딩도 해주는데 도대체 뭐가 부족해서 공부를 안 하니?”
부족한 게 하나도 없기 때문에 공부를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1980~90년대 한국의 학구열은 사당오락, 배수지진을 외치며 삭발하고 암자에 들어가야 공부 좀 하는가 보다 했다. 당시 미국의 아이들이 무기력하고, 공부에 열정이 없고, 꿈도 없어서 한국처럼 치열하게 공부하는 아이들과 비교당했다.
2010~20년대 한국 아이들은 예전처럼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 끊기고 없고, 책임감도 부족하고, 생각도 없다고 핀잔을 듣는다. 그리고 일정 부분 사실이다. 흥미로운 점은 예전 한국 어른들과 같은 DNA를 공유하고 있는데 한 세기 만에 왜 이렇게 달라진 것일까? 변한 것은 환경뿐이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에서 모든 것이 풍요로운 시대로. 지금도 중국, 인도의 가난한 아이들은 목숨 걸고 공부를 한다. 그러니 요즘 아이들에게 부모님 세대의 학업 전투력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학습동기 실패한 방법 Top3
1. 너 꿈이 뭐니?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장래희망을 묻는다. 하지만 아이들의 대답은 거의 비슷하다. 교사, 운동선수, 의료인, 셰프, 경찰관/소방관, 법조인, 과학자 이 정도면 90% 이상 들어온다. 사실은 연예인, 프로게이머, 유튜버, 뷰티, 제빵사 등을 더 하고 싶지만 이런 꿈을 말하면 안 좋은 소리를 듣는다.
더 솔직히 건물주나 아무것도 안 하면서 놀고먹는 게 진짜 꿈이다. (어른들도 이게 꿈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세상 물정 모른다고, 머리에 X만 들었다고 안 좋은 소리를 듣는다. 그러니 아이들은 꿈을 솔직히 말하면 혼나는 셈이다. 그런데 꿈이 없다고 하면 또 혼난다. 넌 꿈도 없냐고.
예전에 가르쳤던 초등학교 4학년 아이는 본인의 꿈은 9급 공무원이라고 했다. 왜 9급 공무원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엄마 가요 요즘은 공무원이 짱이래요!"
"근데 왜 7급이 아니라 9급이 되고 싶니?"
"엄마가 저는 머리가 나빠서 7급은 떨어질 거래요~"
"......"
꿈은 강제로 주입한다고 생기지 않는다. 한 아버지는 고3 남학생을 데리고 전국 명문대학 탐방에 나갔다. 아이가 명문대학교 캠퍼스에 직접 가보면 학습동기가 생길 것이라고 기대한 모양이다. 방학 때 학원을 쉬면서 일주일 동안 전국의 유명한 대학교에 가서 밥도 먹고 구경도 하고 왔다.
"그래 좋은 대학교에 가 보니깐 공부를 열심히 할 의욕이 생기니?"
"에이..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아야죠~"
"그럼 대학교 캠퍼스를 돌아보고 뭘 느꼈니?"
"아이씨 다리 아파 죽는 줄 알았어요!"
"혹시 아버지에게도 그렇게 말했니?"
"예? 아니요. 그럼 당연히 혼나죠. 아버지한테는 그냥 열심히 하겠다고 그랬죠 뭐."
꿈을 통해서 학습동기를 올리려는 방법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 물론 꿈을 가지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도 있다. 예전에 가르쳤던 중3 여학생은 영화감독이 꿈이었다. 언제부터 왜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지는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하지만 그 꿈을 위해서 참 열심히 공부했다. 이렇게 본인이 스스로 가지는 내적 동기는 효과가 있지만 억지로 심어주려는 꿈은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2. 공부 잘하면 용돈 줄게
어느 날 동네 아이들이 몰려와서 시끄럽게 놀고 있었다. 그 동네에는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님이 살고 있었다. 교수님이 처음에는 아이들을 불러서 다른 데서 놀라고 보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이들이 또 왔다. 교수님은 책도 보고 수업 준비도 해야 하고 논문도 써야 하는데 아이들이 너무 소란스러워서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이번엔 아이들을 단단히 타일러서 보냈다. 그런데 아이들은 다음 날 또 나타났다.
그 공간이 아이들이 공을 차면서 딱 놀기 좋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교수님이 이번에는 아이들과 대화를 시도했다. 왜 학교 운동장에서 놀지 않은지 물어보니 그곳에는 큰 형들이 있어서 같이 놀 수가 없다고 했다. 그때 교수님은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것은 바로 이 곳에서 열심히 놀면 사탕을 세 개씩 주겠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환호했고 열심히 놀았다. 다음 날 아이들은 공을 차면서 교수님에게 당당히 사탕을 요구했다. 교수님은 오늘은 두 개씩 밖에 줄 수 없다고 했다. 아이들은 어제 보다는 적지만 그래도 만족해하며 열심히 놀았다. 다음 날은 사탕을 하나씩밖에 주지 않았다. 아이들은 실망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하나라도 먹는 게 좋았다. 그리고 다음 날 교수님은 더 이상 사탕을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아이들이 이렇게 말했다.
"야 가자. 사탕도 안 주는데 뭐하러 여기서 공을 차니."
아이들은 사탕을 받자 처음에 이 곳에서 노는 거 자체가 즐거웠다는 생각을 못한 것이다. 내적 동기가 외적 동기로 대체된 것이다. 흔히 공부를 하면 용돈을 준다, 휴대폰을 사준다, 게임을 하게 허락해준다는 식의 약속을 쉽게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는 공부는 정말 재미없고 가치 없고 억지로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행위이다.
그마저도 내가 굳이 그걸 위해서 이 공부를 해야 하나?라는 의구심을 가지는 순간 더 이상의 방법은 없다. 물론 이 방법으로 성공한 아이들도 있다. 이런 경우 외적 동기가 내적 동기로 옮겨간 것이다. 휴대폰 때문에 태어나서 처음 공부를 열심히 해 보니, '어? 나도 열심히 하니깐 되네?'라는 것 깨달았다.
이후에는 다른 사람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 열심히 공부를 했다. 왜냐하면 성적이 오르니 주변 사람들의 대우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학교, 집, 또래집단에서는 학생들의 성적에 맞게 대우해준다. 선생님, 친구들의 표정, 말투, 눈빛, 친절도 등의 아이들의 등급에 따라 확연한 차이가 있다. 그 달콤함을 놓치기 싫어서 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3. 넌 고생 좀 해봐야 돼!
정말 말을 안 듣는 고2 남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의 부모님은 방학 때 시골에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농사짓는 곳에 아들을 보냈다. 한창 바쁜 수확기에 가서 고생 좀 해보라고 했다. 아이가 한 일은 땅에서 파를 뽑은 후 흙을 탈탈 털어서 묶는 작업이었다. 땡볕에서 쭈그리고 앉아 몇 시간 동안 노동을 하면서 부모님은 아이가 “세상에서 공부가 제일 쉬운 것이었군요! 저 이제부터 열심히 공부할게요!”라고 말하길 기대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이 씨! 내가 이걸 왜 해야 하는데?!"
철없는 고1 딸을 친척이 운영하는 공장에 보낸 경우도 있었다. 당연히 아이가 억지로 끌려와서 의욕이 없으니 방해만 되었다. 결국 아이는 몰래 도망치고 말았다. 그러니 아이에게 고생을 시킨다고 극적인 변화를 기대하지 말자. 하지만 같은 방법도 상황에 따라서 효과가 있는 경우도 있다. 예전에 가르친 한 학생은 주말에 택배 상하차 알바를 했다. 그 아이는 정말로 공부가 제일 쉽다고 말했다. 그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그 아이의 아버지는 일을 하다가 다쳐서 집에 누워 있었다. 어머니가 소일거리로 가계를 꾸려나가서 집안 형편이 정말로 어려웠다. 아이는 택배 상하차를 할 때 땀을 비 오듯이 흘렸지만, 더 무서운 것이 이대로 가다간 이 일을 평생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아이에게 고생은 현실이었고 절박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그저 체험일 뿐이었다. 며칠만 땀 흘리면서 버티면 다시 평온한 일상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고생 체험은 반감만 일으킬 뿐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가짜 땀과 진짜 땀의 효과가 같을 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