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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CAEL Feb 02. 2023

카메라와 함께 하는 염병 첨병

렌즈로 바라보는 또 다른 세상

뷰파인더로 피사체를 겨냥하고 조용히 숨을 참는다. 

하나, 둘, 셋. 찰칵.

청량한 기계음과 함께 피사체가 카메라에 담긴다.

확인사살을 위해 여러 번 다른 각도에서 피사체를 사냥하고 다른 목표물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 거린다.


아~~ 얘 또 카메라로 염병 첨병하네.

함께 여행을 떠났던 친구가 이제는 지겹다는 듯 사진을 찍느라 뒤쳐지는 나를 앞서가며 투덜댄다.




어느덧 카메라와 함께 한 기간이 10년이 넘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고 1 시절의 어느 여름날,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몽골의 푸른 초원에서 사진의 진가를 알게 되었다. 당시 난 '해비타트'라는 단체를 통해 몽골로 자원봉사를 갔었고, 그때 함께 활동했던 구성원 중, 사진을 좋아하던 대학생 형이 한 분 계셨다. 그는 캐논 450D를 가지고 있었고, DSLR카메라를 처음 봤던 나는 호기심에 한 시간만 빌려달라고 하여 자유시간을 이용해 산으로 들로 신나게 찍으러 다녔다. 조리개가 무엇인지, 셔터스피드가 무엇인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그저 느낌으로 여기저기 카메라를 들이대며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다. 

그 당시 화질이 매우 좋지 않은 휴대폰 카메라로만 찍다가 고화질의 DSLR로 풍경을 담으니 뭔가 색다른 느낌이 들었고, 내가 찍고 있는 이 사진이 몇십 년이 지난 후 지금을 기억하게 해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묘한 희열이 느껴졌다. 

그때를 기점으로 난 사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카메라병이 도졌다. 


몽골에서 돌아와 DSLR을 사기 위해 용돈을 열심히 모으기 시작했고, 결국 중고나라를 눈팅한 결과 용돈을 탈탈 털어 니콘 D80과 광각렌즈 1개, 줌렌즈 1개를 세트로 묶어 득템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사진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조리개를 어떻게 세팅해야 하는지, 움직이는 물체는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 화이트 밸런스가 무엇인지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했고 바로바로 배운 이론을 적용해 내 주변의 물체들을 담아내는 게 너무 흥미로웠다.


그렇게 니콘 D80부터 시작하여 캐논 450D, 캐논 50D를 거쳐 현재 니콘 D750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이 카메라로 말할 것 같으면 내 첫 풀프레임 카메라이자, 포르투갈에서 스냅작가로 활동하던 친한 형에게 그동안 통역과 가이드를 하며 벌었던 자금을 투자하여 내돈내산 한 것으로, 카메라 염병 첨병이 심화된 계기이기도 하다.



이 친구와 함께 포르투갈 구석구석을 다니며 풍경, 인물, 동물, 건물 등 사물을 눈에 띄는 것은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몽땅 기록으로 남겼다. 

큰 카메라만큼 여행할 때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게 없지만,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들을 숙소로 돌아와 선별하며 편집하는 작업을 하고 있노라면 그동안 쌓인 피로가 싹 가시는 듯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진의 매력은 이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1. 새로운 시각으로 주변을 바라볼 수 있다.

기미랑이스(Guimarães)라고 하는, 포르투갈이 탄생한 어느 마을을 구경하다가 청과물 시장을 방문했다. 어두웠던 시장 속에서 과일들 위로 그림자가 너무 예쁘게 드리워져 그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마치 가려진 커튼을 치며 과일의 잠을 깨우듯 곧게 그려진 빛 한줄기도 카메라와 함께라면 하나의 작품이 된다.




2. 주변에 호기심이 생긴다.

얼마 전, 철원에 있는 고석정에 놀러 갔다. 

바위 위에 자리 잡은 울창한 나무에 감탄하며 사진을 찍다가 그 나무와 조금 떨어진 자리에 누군가 조그마한 돌탑을 쌓아놓은 것을 발견했다. 

나는 항상 카메라를 가지고 돌아다닐 때면 주위의 모든 것을 피사체로 인식하기 때문에 주변을 유심히 살피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5분이면 둘러볼 공간도 30분 동안 여기저기 꼼꼼하게 둘러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나만의 스폿을 발견하기도 하고 위와 같이 누군가의 귀여운 소망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런 게 사진의 묘미라고 생각한다.




3. 최고의 기념품은 사진.

포르투갈 북부엔 스페인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발렌사(Valença)라는 마을이 있다. 

그곳에 포르투갈 국경에서부터 스페인 국경까지 이어져 있는 다리가 있는 데 이를 건너면 뚜이(Tui)라고 하는 스페인의 시골 마을로 들어서게 된다.

단 몇 분 만에 걸어서 또는 차를 타고 국경을 쉽게 넘는다는 것이 정말 재밌었던 경험이었는데 나는 이 사진만 보면 그때의 감정, 느낌, 분위기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사진의 또 다른 이름은 바로 회상이 아닐까 싶다.




4.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내가 포르투갈에 있을 때 때마침 유럽을 여행 중이던 친구가 놀러 온 적이 있었다. 

난 그의 사진작가를 자처하며 함께 여행지를 방문할 때마다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화보를 찍어주곤 했는데, 그 사진들은 모두 그 친구의 카톡 프로필이 되었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말처럼 여행이 끝나고도 내가 찍어준 사진들을 차례로 프로필로 하며 즐거워하는 친구들을 보는 게 또 다른 행복이다.





5. 사진은 최고의 기록물이다.

난 대학에서 언어와 함께 언론학을 공부했다. 그래서 어느 나라를 가던지 그 나라의 언론문화가 어떤지 궁금증이 있었다.

포르투갈에서도 그런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언론사와 연락을 취하던 중, 볼라(BOLA)라고 하는 유서 깊은 스포츠 일간지의 초청을 받아 본사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기자와 편집장 등 여러 사람을 인터뷰하고 그들이 작업하는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구경할 수 있었는데 내 카메라는 내 손에서 그들의 업무환경을 기록하기 바빴다. 

견학이 끝나고 혼자서 그날 보고 들은 것을 정리하는 데 찍어두었던 사진이 아주 좋은 기록물이 되어주었다. 




사진을 찍는 건 참 매력적인 취미활동이다.

똑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있지만 찍는 사람의 관점과 감정에 따라 색다른 느낌을 전달하기도 하고 보는 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하며 때로는 그 무엇보다 솔직하고 정직하게 현실을 담아내기 때문이다.


내 목표는 언젠가 조그맣게나마 개인 사진책을 출판하는 것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실력을 갈고닦으며 앞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나의 기쁨을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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