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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봉파파 Mar 25. 2020

"정치 얘기하기가 조심스럽죠."

나는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하는 교사니까요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피청구인 박근혜를 대통령직에서 파면했다. 온 국민의 관심은 오전에 열린 헌법재판소의 선고에 있었다. 그날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학교에서 정상적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날이었지만, 정신의 한 편에는 헌법재판소의 선고에 대한 호기심으로 계속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때 어떤 학생이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 오늘 탄핵 선고하는 날인데 우리도 생중계 보면 안돼요?”


참으로 당돌한 아이다. 정말 이 사태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 질문을 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수업이 싫어서 뺀질거리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 탄핵의 결과가 어떻게 되든 우리 사회는 역사적 순간에 직면해 있는 것이 확실했고, 이 결과에 따라 앞으로의 사회 모습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과 생중계를 보기로 결정했다. 시간이 조금 흘러 탄핵 결과가 발표됐다.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주문 :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대한민국 헌정 역사상 처음으로 탄핵이 선고됐다. 이러한 결과가 오기까지 그 어떤 폭력 사태도 발생하지 않았다.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이 소추됐을 때만 해도 국회는 아수라장이 되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국회도 조용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 소추될 즈음해서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4% 정도로 집계가 되었던 것을 근거로 할 때 거의 모든 국민이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다. 그런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 대통령의 하야를 외쳤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은 2016년 10월 26일부터 2017년 4월 29일까지 총 23차례에 걸쳐 진행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일련의 폭력사태나 유혈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해외에서는 민주주의의 모범국가라는 평가가 쏟아졌다. 독일의 권위있는 주간지 중 하나인 <디 자이트(Die Zeit)>에는 이런 칼럼이 실리기도 했다. ‘이제 미국과 유럽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배워야 한다.’

나는 이러한 역사적인 순간을 귀여운 초등학생 제자들과 함께 지켜봤다. 당시 나는 초등학교에서 6학년 담임을 맡고 있었는데 아이들의 모습이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어떤 학생은 환호성을 질렀고, 어떤 학생은 박수를 치며 당연한 결과라는 논평을 했고, 어떤 학생은 아예 관심을 두지 않았다. 순간 이 학생들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 그때 내 머리를 강타한 개념 하나가 떠올랐다. 바로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이었다. 순간 그 어떤 말도 조심스러워졌고, 결국 이 한마디 밖에 하지 않았다.


“다 봤으니까 화장실 다녀오세요.”


탄핵 사태를 내 나름대로 학생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사실 매우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본다. 상대가 내 친구들이었다면 몇 시간도 넘게 이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하지만 내 신분이 교사인 이상, 일말의 공격을 받을 여지를 남기는 게 탐탁지 않았다. 가령, 우리 반 학부모 중 한 분이 지지율 4% 안에 드는 박근혜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라면, 내가 수업 시간에 탄핵 선고 장면을 학생들에게 보여준 것만으로 불쾌한 감정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러이러해서 파면을 당했다는 해설을 학생들에게 해주면 ‘선생님, 그게 아니지요.’하면서 반론을 재기할 수도 있겠다. 최악의 상황은 현실 정치의 모습을 언급했다는 자체만으로 그 결과가 어찌됐든 ‘정치적 중립성 위반’이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도 있다.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그래서 나는 중학교에서 도덕 교과를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과 고등학교에서 물리 교과를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을 만나 간단한 인터뷰를 나누었다.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또 학생들의 정치적 관심과 정치적 의사 표출, 그리고 학생들이 현실 정치를 알아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도 덧붙였다.     


Q1. 학생들은 정치에 관심이 있나요?

“아이들이 정치에 완전히 무관심하다는 말은 틀린 말입니다. 아이들도 뉴스를 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죠. 특히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아이들이 정말 많은 관심을 갖는 것을 봤습니다. 또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합니다. 특히 남학생들은 여학생들보다 더 정치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부모님의 생각이 곧 자신의 생각이었다면 이제는 유튜버의 생각이 자신의 생각이 되는 것 같아요. 혹은 온라인 커뮤니티의 정치 성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관찰할 수 있어요. 정말 안타까운 건 중학생들 중에도 일베에서나 유통되는 혐오 표현을 일삼는 학생들이 많다는거죠.”(중학교 교사의 대답)


“일베하는 학생들이 정말 많아요. 제가 관찰하건대 우리 반 30명 학생 중에 10% 이상은 일베 회원이거나 일베와 매우 근접한 정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나머지 학생들도 정치적으로 관심이 많은 편이죠. 특히 남학생들은 게임을 많이 하는데, 관련 커뮤니티에 있는 정치적 표현들을 많이 접하고 그것들을 자신의 생각처럼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근데 그런 생각들은 대개 우익적 사고에 가깝죠. 그런 생각들을 바탕으로 소위 진영을 구축하고 모든 정치적 사안을 진영논리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생각해요.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으로 어떤 사안을 해석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그게 교육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데, 학교에서는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지 않아요. 이제 몇몇 고3 학생들도 투표를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소위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정당에서 이득이 될 게 전혀 없어요. 아이들의 사고가 상당히 우경화되어 있다고 봅니다.”(고등학교 교사의 대답)


Q2. 수업을 하다가 어떤 문제나 현안을 가지고 정치적 견해를 나눈 경험이 있나요?

“저는 아무래도 도덕 교과를 가르치다 보니 통일 문제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돼요. 교육과정 자체가 통일을 추구하고 있고, 통일의 장점을 부각시키는 내용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아이들은 대부분 통일에 굉장히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요. 통일 안해도 먹고 살기 힘든데 왜 굳이 통일을 해야 하냐는 의견이 제일 많았던 것 같아요. 남북정상회담이나 북미정상회담이 한창 진행됐을 때 아이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요. 아무래도 통일 문제가 분명 정치적인 문제로 얽혀있기 때문에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죠. 그러다보면 특정 정부나 정당에서 추진하는 통일에 대한 관점과 방향을 언급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상당히 조심스러운 것 같아요. 사실 제 나름대로 올바르다고 판단하는 통일에 대한 입장과 정책적 방향이 있긴 한데 교사로서 그러한 생각들을 쉽게 말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중학교 교사의 대답)


“일단 저는 수업 시간에 거의 물리 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어떤 사안에 대한 견해를 주고받는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담임으로서 생활지도를 할 때 종종 제가 생각하는 가치들이 제 입 밖으로 나오겠죠? 예를 들면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충돌할 때 제가 어느 한쪽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얘기하면 어떨까요? 그것도 넓게 보면 정치적 견해를 피력한 결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대놓고 정치적 견해를 표출하거나 특정 정당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건 매우 위험하고 무서운 일이죠.”(고등학교 교사의 대답)     


Q3.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근본적으로 교사가 학생들에게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해요. 그렇기 때문에 교사가 정치적으로 어떤 입장을 지속적으로 취한다면 분명히 아이들에게 영향을 줄 것이죠. 또, 저도 교사이기 이전에 사람이에요.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있고 그러한 가치를 더욱 실현시키려는 정당에 투표를 하죠. 제 스스로 이미 편향이 되어 있지 않은가 싶어요. 그러니 교사가 균형잡힌 시각으로 학생들에게 정치를 가르치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여러 분란이 생길 수 있으니 그냥 아예 말하지 않는게 어쩌면 가장 현명한 답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중학교 교사의 대답)


“학생들이 정치를 제대로 배울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저는 그 역할을 교사가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이전에 선행되어야 할 게 있어요. 바로 학교에서 시민교육을 실천하는 것, 철학과 인문학을 교육과정으로 만드는 것이죠.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 스스로 취사선택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사안에 대하여 올바른 판단 근거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소양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교육으로 학생들이 시민으로서의 역량을 키운다면 학교 안에서 올바른 현실정치에 대한 교육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대안없이 무조건 교사의 입을 닫게 만드는건 학생에게도 분명 좋지 않아요. 술은 부모에게 배우라고 했죠? 정치도 교사에게 배울 수 있어야 해요. 유튜버한테 배우는 건 좀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고등학교 교사의 대답)     


초등학교 뿐만 아니라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 역시 정치적 중립성에 대해 매우 민감하고 조심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더불어 학교에서 학생들이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도 교사로부터 현실 정치를 학습하지 않고 있었다.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 정치를 조금씩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

언제나 그러했듯 대한민국의 선거 역사 속에서 20대의 투표율은 매우 저조했다. 지금도 그러하다. 20대부터 정당이나 시민단체 등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인원도 다른 연령대에 비해서 매우 낮다. 우리 정치는 청년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20대 청년은 정치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지 않다. 그 결과 20대는 고통받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살인적인 입시제도, 높은 취업 문턱과 청년실업, 결혼과 출산 그리고 주거 문제, N포 세대와 헬조선은 대한민국의 20대에게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정치다.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현실을 해결할 수 있는 정치를 가르치고 있지 않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다양한 가치들을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는 교사들은 현실 정치와 관련된 교육에 대한 침묵을 강요받고 있다.

나는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과 그것이 민주주의의 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과 OECD 국가 중 가장 우수하다고 인정받는 교사들은 왜 교육에서 정치를 말하지 못할까? 그것이 결국 우리 사회에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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