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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쪼 Sep 26. 2024

사자

4~6. 경쟁

4.

“공용 공간에서는 이런 짓 안 한다니까?”


단둘만 남은 부엌, 연은 천을 밀어내고 속삭였다. 하지만 연의 몸은 이미 달아올라 있었다. 천은 연이 뭐라고 하든 연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추었다가 떼기를 반복했다. 부엌에는 연이 잠시 말하는 소리와, 입술이 맞붙으며 나는 소리가 번갈아 울렸다. 연은 힘을 주어 천을 밀어냈다. 하지만 천은 연의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다들 성인인데 그런 유치한 룰이 필요해?”

“아무튼 이제 그만해.”


잠시 후, 싱크대에서 물 흐르는 소리와 토스터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연은 목소리를 다듬고 말했다.


“다들 나와.”


박과 최가 주방으로 다시 돌아왔다. 식탁 한가운데에는 샐러드와 갓 구운 빵이 놓여 있었고 천은 식탁에 접시와 포크를 놓고 있었다.


“어서 앉아.”


연은 인스턴트커피를 타서 식탁에 올려놓고는 천의 옆자리에 앉았다. 최는 얼른 걸어와 연의 옆자리에 앉았다. 박은 어쩔 수 없이 연의 맞은편에 앉았다. 연이 샐러드를 접시에 담으며 말했다.


“집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규칙을 까먹었나 봐. 내가 다시 얘기했으니까 한 번만 봐줘. 규칙 잘 지킬 거지?”


연은 천에게 물었다. 하지만 천은 대답 대신 연의 손바닥에 입을 맞추었다.


넷의 어색한 식사가 시작되었다. 아무도 서로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커트러리가 부딪치는 소리만 부엌에 울렸다. 박이 침묵을 깨고 천에게 물었다.


“짐은 다 들어왔나요? 덜 들어왔으면 도와드릴게요.”

“아뇨. 일단 필요한 건 있고 나머지는 천천히 들이려고요. 감사합니다.”


최가 빵을 씹으며 말했다.


“일요일에는 아침 먹고 대청소를 하거든요. 오늘은 저희끼리 할 테니까 두어 시간 정도 나가 계실래요? 이 앞 카페도 분위기 좋아요.”

“자기도 저 방 청소하면 되지 않을까? 내가 미리 하려고 했는데 자기가 너무 일찍 와서.”


연은 천을 보며 말했다. 천이 말했다.


“그래. 저도 입주했으니까 오늘부터 할게요. 같이 해요, 청소.”


천은 연의 입가에 묻은 빵가루를 떼어 자기 입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연에게 입을 맞추려 했지만 연은 천을 밀어냈다.


최는 고개를 돌려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윽, 맛없다. 바쁠 때 어쩔 수 없이 마시는 용도라면 나쁘지 않지만 맛도 엉망이고 다른 음식들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마침 연와 천이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핸드드립으로 다시 내려줄까? 맛 어떠세요?”

“아니. 이것도 괜찮은데? 어때?”


연이 천에게 물었다.


“네, 그냥 드시죠.”


연와 천은 웃으며 샐러드를 먹기 시작했다. 최는 박에게도 커피 맛이 어떤지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박은 연와 천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5.

박은 방문을 열기 전에 기척하는 버릇이 생겼다. 무심코 방문을 열었다가 연와 천이 현관 벽에서, 소파에서, 주방에서 포개어져 있는 장면을 심심찮게 보았다. 눈이 마주치면 천은 악의 없이 미소 지었다. 박도 당황한 나머지 천에게 웃어 보였다. 그러면 천와 연은 몇 번인가 더 입을 맞추고서야 떨어지곤 했다.


웃으며 상황이 마무리되었지만 박은 천이 불편했다. 지금껏 연, 박, 최는 암묵의 규칙을 만들고 그것을 잘 지켜왔다. 데이트 약속을 잡으면 사전에 공지한다, 키스 이상의 터치는 방에서만 할 수 있다, 한 사람과 사흘 연속으로 섹스하지 않는다, 연의 방에는 물건을 두지 않는다, 일요일은 되도록 모두와 함께 보낸다, 일요일 낮에는 섹스하지 않는다 등.


물론 셋도 이 규칙들을 모두 달가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평화가 깨질 것이고, 연은 다툼에 질려서 모두를 떠나버릴지도 모른다. 연을 완전히 잃느니 싫은 규칙을 약간 따르는 것이 낫다. 다행히 2년 동안 셋은 균형을 이루었고 어느덧 여럿이서 연애를 하고 있다는 감각도 무뎌졌다. 그런데 천이 등장하고 모든 것이 바뀌었다. 박은 천에게 연을 빼앗겼고 이 경쟁에서 패배한 것 같았다.


토요일에는 박과 연이 간만에 데이트를 했다. 최와 천이 각자 일이 있었기 때문에 둘은 전시회에 갔다가 커피를 마시고, 양꼬치와 맥주를 먹고 집에 돌아왔다. 박은 간만에 연 하고만 시간을 보내게 되어 내내 마음이 설렜다. 집에 돌아오는 길, 둘은 집 앞 골목에서 오래도록 키스했다.


현관 키패드를 누르며 둘은 조금 달아올랐다. 박은 자연스럽게 연의 방으로 들어갔고, 입을 맞추며 방에 딸린 욕실로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연은 박의 어깨를 밀어내더니 먼저 욕실에 들어가 있으라고 했다. 박은 연의 허리를 끌어안고 다시 입을 맞추었다. 연은 박을 다독이며 금방 들어가겠다고 했다. 박은 어쩔 수 없이 혼자 욕실에 들어갔다.


박은 혼자 뜨거운 물을 맞았다. 연와 함께였으면 더 좋았겠지만 뜨거운 물이 몸에 닿는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곧 더 좋은 시간을 보내리라는 기대 때문에 더 달아올랐다. 하지만 꽤 오래 뜨거운 물을 맞고 머리까지 다 감았을 때, 박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곧 들어오겠다고 했는데, 무슨 일이 있나?


박은 몸과 머리에 묻은 비눗기를 빠르게 씻어내고 샤워가운을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연이 오늘 입고 나갔던 코트만 침대에 놓여 있을 뿐. 거실 화장실에 갔나? 박은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며 거실로 나가보았다. 천이 주방에 서 있었고, 연은 벽에 기대어 천과 입을 맞추고 있었다. 서로의 옷 안에 손을 넣은 채로.


잠시 후, 연과 박의 눈이 마주쳤다. 연은 천을 밀어냈고 천은 이번에도 박을 보며 악의 없이 웃었다. 박은 이 상황이 우습지 않았다. 박은 연의 방에서 옷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6.

박은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박은 이 집에서 연와 가장 오래 사랑한 사람이었다. 최가 갓 입주했을 때 연의 관심이 최에게 쏠리는 듯도 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곧 균형을 찾았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지금 박은 연와 천 사이에 끼어든 방해물 같았다.


연와 천이 부엌 벽에서, 소파에서, 현관 바닥에서 뒤엉켜 키스하고 서로를 더듬던 장면이 자꾸만 떠올랐다. 둘은 숨을 헐떡였고, 서로에게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키스하다가 코를, 팔을 부딪쳤다. 키스, 옷을 벗기는 순서, 절정으로 향하는 타이밍까지, 서로가 움직이는 방향과 순서를 완벽하게 알고 있는 박은 결코 할 수 없는, 엉망이고 그렇기에 더 뜨거운 움직임이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 3일간, 연은 천와 밤을 보냈다.


박은 이불 속에서 뒤척였다. 그러고 보면 박도 한때는 그렇게 막무가내로, 온종일 연과 닿아 있곤 했다. 이 집에 갓 들어왔을 무렵에는 규칙도 없었고 꽤 경쟁적으로 연에게 다가가려 했다.


박은 휴대전화를 들어 시간을 보았다. 새벽 2시가 가까워 오고 있었다.


박은 침대에서 일어나 연의 방문 앞에 섰다. 연의 방문을 두드렸지만 안에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박은 한 번 더 방문을 두드렸다. 역시 안에서는 답이 없었다. 박은 방문을 열었다. 연은 침대에서 혼자 잠들어 있었다. 박은 연의 침대에 들어가 연의 옷을 벗겼다. 연은 눈을 부비며 눈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했다.


“마음 풀렸어?”


연은 두 팔을 벌려 박을 끌어안고 등을 쓰다듬었다. 이대로 누워서 자자는 신호였다. 하지만 박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박은 손을 아래로 뻗어 연의 속옷 위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연의 몸이 뜨거워졌다. 연은 드디어 잠이 깼는지 눈을 뜨고 박에게 입을 맞추었다. 연과 박은 서로의 파자마 셔츠를 벗기고, 바지를 벗기고, 가슴을 쓰다듬었다. 얼마 후, 연은 박의 손을 잡아 자신의 속옷 속으로 넣었다. 그날 박은 연의 방에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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