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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쪼 Nov 18. 2024

신 3

“어딘가에 소속될 만한 성격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저 넘어가지요.”


 과연 일리가 있다. 예수는 고개를 끄덕였다.김운경의 성질머리로는 어디에서도 한 달을 못 버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예수도 대입을 도와주었다. 하지만 그 졸업장을 쓸 일은 앞으로 없을 것이다.


작업실에는 폰 진동 소리가 끊임없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빗발쳤다. 전화를 받지 않으니 이어 메시지들이 들어왔고, 메시지를 읽지 않으니 다시 전화가 왔다.


‘김운경 작가님 맞으시죠? GBS 김지예 기자입니다. 최근 표절 의혹에 휩싸이셨는데…….’

‘대양일보 박훈석 기자입니다. 잠시 통화 괜찮으실까요?’

‘tvb 박홍우 기자입니다. 전화를 받지 않으셔서 메시지 드립니다. 언제쯤 통화 가능……’

‘4885 미니쿠퍼 차주 맞으시죠? 제 차 범퍼가 이렇게 됐는데 연락 안 받으시네요.’

‘10분 내로 연락 안 주시면 물피도주로 신고합니다.’

‘It's Julie. Urgent! A wave is coming into your house. Call me right now.’


김운경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아무나 저 좀 도와주세요. 제발.”


김운경의 흐물흐물한 목소리가 사방에 흩어졌다. 예전이라면 예수든 부처든 김운경을 불쌍히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부처와 예수는 김운경을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허리는 몇 달 후면 괜찮아질 것이다. 집과 차, 유명세는 원래 김운경의 것이 아니었고 글에는 애초에 재능이 없었다. 통장 잔고도 이전으로 돌아갈 뿐이었다.

부처가 예수를 쳐다봤다. 이제 슬슬 돌아갈 때다.


“그럼 이제…….”

“먼저 온 손님이 계셨군요.”


부처와 예수의 뒤에서 등에서 낮고 끈적한 목소리가 울렸다. 예수와 부처는 뒤를 돌아봤다. 금이 간 창문 앞에 한 존재가 서 있었다. 인간에게 달콤한 나락을 선물하는 자, 태양만큼 뜨겁고, 빙산보다 차갑고, 웃고 있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자, 스치기만 해도 좋지 않은 끝을 맛보게 하는 자.


“그런 눈으로 보지 마시죠. 집주인이 오라고 해서 온 거니까요.”


그는 김운경을 턱으로 가리키며 웃었다. 그가 웃자 얼굴을 뒤덮은 비늘이 반짝였다.


그는 치이익 치이익 소리를 내며 김운경의 옆으로 걸어갔다. 그는 김운경의 곁에 쪼그려 앉아 얼굴을 쳐다봤다. 눈물과 먼지가 뒤섞여 반죽이 되어 있고, 코에서는 콧물이 흐르고, 입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이런 표정을 한 인간을 많이 봤다. 그리고 이런 표정을 한 인간들이 항상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곤 했다.


그는 김운경에게 속삭였다.


“내가 다 되돌려주지. 허리도 낫게 해주고 표절도 없었던 걸로 해줄게. 집? 차? 말만 해. 100채건 200채건 원하는 만큼 주지. 대신 넌 죽을 때까지 나를 숭배하는 작품들을 써야 해. 물론 그 작품들도 내가 다 줄게. 너는 재능이 없으니까. 넌 그냥 내가 불러주는 문장이나 받아쓰면서 살면 되는 거야. 어때?”


김은경은 눈을 번쩍 떴다. 머릿속에 새로운 영감이 떠올랐다. 한 악마의 이야기. 사람들은 악마를 피하고 손가락질했지만 사실 악이야말로 이 세상을 창조했으며 모든 존재의 근원이었다는 이야기. 결국 모든 인간이 참회하고 악을 진리로 받아들이게 되는 이야기.


김운경은 간만에 맛보는 영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을까? 언뜻 생각해도 이 작품을 발표했다가는 죄책감에 시달릴 것 같았다. 하지만 김운경은 갈등했다. 4년간 신간을 내지 못했다. 이렇게 도파민이 폭발하는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는다면 다시 재기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저 내용은 도의상…….


“어찌 하시겠습니까.”


부처가 말했다. 예수는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어쩔 수 없지요.”


아무리 변덕을 부렸다 한들 신은 신이었다. 신은 인간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할 수밖에 없다.


예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악마의 오른쪽 어깨가 날아갔다. 예수가 다시 눈을 감았다. 악마의 왼쪽 어깨가 날아갔다. 악마의 머리통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지고, 소멸했다. 김운경의 머릿속에서 그 이야기도 사라졌다. 뭐지? 방금까지만 해도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데? 쓰기만 하면 끝장나는 내용이었는데.


예수가 말했다.


“이렇게 두고 가면 저런 이들이 또 들이닥치겠지요.”


부처는 예수의 뜻을 알아차렸다.


“조금은 돌려줘야겠군요.”


부처와 예수가 다시 눈을 감았다. 잠시 후, 김운경의 폰이 다시 울렸다.


‘작가님, 리트머스사에서 연락 왔습니다. 다른 작품과 헷갈렸다고 모두 없었던 일로…….’


1초도 쉬지 않고 울리던 김운경의 폰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김운경의 배 위에서 노트북이 갑자기 켜졌다. 물론 하와이의 집은 바닷물에 완전히 잠겼고, 아파트는 이전의 여파로 계속 갈라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며칠 내로 완전히 4등분이 될 테니 보수를 하든 뭘 하든 아무튼 가진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글에 재능이 없는 것도 여전했다. 하지만 두 집은 애초에 김운경의 것이 아니었고, 글에 재능이 없는 것은 신이 내린 벌이 아니었다. 정말 글을 쓰고 싶다면 몇 년 후에는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마음에 드는 작품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전까지는 어떻게든 버텨야겠지만 인간은 모두 그런 역경을 이겨내며 살지 않는가.


“너무 많이 돌려준 것 같습니다만.”


부처가 말했다. 예수가 웃으며 답했다.


“그럼 또 오면 되지 않겠습니까. 어린 양이 우리를 다시 부를 때 말입니다.”


둘은 이렇게 웃었지만 마음으로는 김운경을 믿고 있었다. 언젠가는 저 존재도 깨닫게 될 것이다. 부처와 예수가 김운경을 얼마나 사랑하고 지켜주었는지 말이다. 그럼 김운경도 언젠가는 자신이 받은 사랑과 다정함을 누군가에게 돌려줄 것이다.


“그럼 다음에 또…….”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부처와 예수는 인사를 나누고 베란다 바닥을 내디뎠다. 예수와 부처는 사뿐히 바닥을 딛고 둥실 떠올랐다. 그때, 뒤에서 처음 듣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뚜뚜뚜뚜뚜뚜뚜뚜.


이 소리는 김운경의 노트북에서 울리고 있었다. 부처와 예수는 김운경에게 다가가 노트북 화면을 쳐다봤다.


‘운이 트이고 돈이 들어오는 주파수/ 로또 당첨/ 우주의 기운을 내 것으로’


부처와 예수는 한숨을 쉬었다. 그 ‘언젠가’는 김운경에게 너무나 먼 일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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