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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두려움을 이기는 삶

《의젓한 사람들》김지수

by 재희


김지수 작가의 인터뷰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잠시 쉬어가게 한다. 인생의 아름다운 진실을 마주하는 영감의 순간을 통해 우리 삶에 평안과 위로를 전한다. 그래서 그가 인터뷰집을 냈다고 하면 얼른 위시리스트에 올려두었다.


그런데 이번 인터뷰집의 제목은 조금 무겁다. '의젓한 사람들' 이라니. '다정함을 넘어 책임지는 존재로' 라는 부제는 더 부담스럽다. 그가 이번에 전하려는 인생의 진실은 무엇일까. 부담스러운 궁금증을 안고 책을 들었다.





불안을 이기는 길, 의미와 책임


불안은 마음속이 근본적으로 비어있음으로 생기지요. 그런데 그 빈터는 다른 걸로 메워지지 않아요. 개별 인간 속에 도사린 불안의 공터를 채울 유일한 해결책은 ‘의미’입니다. 그 의미가 발생하는 지점이 바로 타자를 책임지려 할 때죠. - 순례자 김기석”


책의 첫번째 인터뷰이인 김기석 목사는 ‘불안’과 ‘허무’에 대해 솔직하다. 그러나 그 끝에는 항상 의미에 대한 갈망, 그리고 타인을 책임지는 선의가 있다. 삶이 고통스러울 때, 나만의 시련에 갇히지 않고 누군가의 어려움에 손을 내미는 순간, 우리는 의젓함이라는 이름의 성장의 문을 통과한다.


김기석 목사 (출처: chosun.com)


직면한 기본 정서는 불안과 암담함이지만, 관계 속에서 선한 영향을 주고받으면 ‘불안의 악력’이 현저히 약해져요. 반대로 삶에 보람이 없으면 운명의 손아귀에 붙들리고 수순처럼 우울의 늪에 빠집니다. 그래서 신은 권유합니다. 단 한 번이라도 ‘타자에게 의젓한 존재’가 되어보라고.


결국 자기 몫의 고통을 품고도 누군가에게 의지가 되어주는 태도, 그 의젓함이 우리를 살린다.




완벽 대신 ‘나다움’을 선택하는 용기


‘결정’은 집중해서 결단을 내리는 행위인 동시에 강한 의지로 인내해 내는 것을 포함합니다. 오랜 시간 경제학자로 보낸 후 저는 ‘완벽한 결정’은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을 뿐이죠. 인생은 어차피 지도 없이 하는 여행이기에 완벽함의 반대는 ‘엉성함’이 아니라 ‘그럭저럭 괜찮음’입니다.

결심이 필요한 순간에는 어떤 종류의 ‘뛰어듦’이 필요합니다. 그 이유는 당신의 결정이 어떻게 될지에 대한 결과가 어둠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 경제학자 러셀 로버츠


끈기는 미덕이고 끊기는 실패라는 생각을 버리세요. 그만두기는 더 나은 것을 위한 용기 있는 선택일 수 있습니다. — 의사결정전문가 애니 듀크


이 책의 의젓한 인터뷰이들은 완벽이나 일관성에 집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만두기’와 ‘포기’에 담긴 자유를 응원한다. 우리는 답이 없는 질문 앞에서 머뭇거리기도 하고, 때론 가볍게 포기하며 새로운 길을 찾아간다.


경제학자 러셀 로버츠 (출처: chosun.com)


인생이 나를 지나쳐 가는 것을 피할 유일한 방법은 실수에 대한 걱정을 그만두는 것이다.- 러셀 로버츠


수렁에 빠져보니 고민한다고 해결되지 않아요. 아등바등한다고 좋아지지 않죠. 원하는 방향으로 쉽게 갈 수도 없어요. 그러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도 됩니다 - 배우 박정민


그러니, 완벽을 포기하고 ‘나다움’을 향해 한 발짝 더 나아가자. 실수해도 괜찮고, 중단해도 괜찮다.

중요한 건 ‘나를 닮은 시도’ 그 자체다.




삶은 가볍게, 긍정적으로


망각력을 높여가다 보면 지금까지 있었던 분노나 미움도, 혹은 방금 일어났던 화도 6초 만에 사라집니다. 하룻밤 자고 나면 더 희미해지겠죠. 생각해 보면 잊는 힘 덕분에 여태껏 중요한 인간관계도 깨지지 않고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망각력이 마음을 가볍게 해주고, 삶을 긍정적으로 바꿔준 거죠.

저는 분노와 질투 같은 인생의 중요하지 않은 80퍼센트의 일은 잊어버리고, 20퍼센트의 중요한 일을 기억하려고 노력하며 살아왔습니다. — 노년내과 의사 가마타 미노루


《의젓한 사람들》이 가르쳐주는 또 하나의 지혜는, ‘가볍게 살아가는 용기’다. 무엇이든 다 기억하려 애쓰지 않고, 나에게 중요한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흘려보낼 줄 아는 유연함. 행복이나 성공, 혹은 누군가의 기대에 짓눌리지 않고, 내 삶의 기록자가 되어 긍정적으로 현재를 살아내는 힘.


노년내과 의사 가마타 미노루 (출처: chosun.com)


결국 노래도 삶도 평생 힘 빼는 연습이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제일 좋은 노래는 콧노래예요. 아무도 듣지 않고 나 혼자 부르는 노래…. 그게 가장 살아 있는 노래 같아요. - 가수 양희은


세상이 번쩍거려 보여도 다 별거 없어요. 만족 못하고 비교하면 너도나도 별수 없어요. 너무 잘하는 거 잘 되는 거 찾아 헤매지 마세요. 좋아하는 거 있으면, 그거 하세요. 보여주려는 마음이 앞서면 자존심 상하고 상처만 입어요. 좋아하는 거 하면, 하다가 그만둬도 상처받지 않아요. 자존감이 남으니까요 - 시인 나태주


어깨에 힘 주지 않고,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콧노래처럼 내 마음이 부르는 노래를 따라갈 때 우리 삶은 조금 더 가볍고 밝아진다.





결국 의젓함이란,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도 더 나은 길로 향해 가겠다는 삶에 대한 책임감이 아닐까.


누군가에게는 고통받는 타인을 책임지려는 선의이고.

누군가에게는 포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나다움이고.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긍정하고 가볍게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이 책을 읽으며 처음엔 ‘책임’이라는 단어에 괜히 부담을 느꼈다. 하지만 무엇보다 부담스럽고 무거운 것은 책임이 아니라, 방향 없이 표류하는 삶이다. 책임은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지’ 스스로 방향을 선택하고 선언하는 용기이며, 그 선언이야말로 우리를 더 단단하게 자유롭게 만든다.


의젓한 삶이 곧 자유로운 삶이며 나다운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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