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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 Aug 11. 2023

내 글은 돈이 될 수 있을까 ①

17년 차 글쟁이의 글밥먹고사니즘, 그 대환장의 역사_작가란 무엇인가

아침에 눈을 떠보니,라는 식상한 표현으로 첫 문장을 시작하고 싶진 않았지만, 사실이었다. 깨자마자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휴대폰을 보니 브런치의 알림이 맨 위에 떠있었다. 이제 브런치에서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는, 업데이트하면 작가 응원하기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오호라.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공교롭기도 하지, 얼마 전부터 수익모델이 있는 투비컨티뉴드로 본격적으로 글 이사를 할 생각 중이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을지도?' 하는 생각으로 알림을 터치했다. 관련 공지글이 떴다.


'음, 역시, 뭐, 그렇지.'


여름날 창문에 분 입김처럼 기대감이 사라졌다. 선택을 받은 작가만 가능한 일이었다. 콧김을 뿜으며 댓글을 읽어보니 내 맘 = 네 맘이었다. 뭐, 공지글에 따르면 지금은 시범운영이라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고 앱을 껐다. 침대에 누운 채로 멍하니 천장 벽지 무늬를 보고 있는데, 한동안 잊고 있었던 질문이 딸꾹질처럼 튀어 올랐다.


'내 글은 돈이 될 수 있을까?'


독자님들 중 이 질문을 한 번이라도 스스로에게 한 적 있는 분은 아마 지금쯤 약간 울컥했을 텐데, 음.. 어.. 솔직히 말하자면, 제 글은 늘 돈이 됐습니다. 이게 웬 어그로고 기만이냐 싶겠지만, 독자님이시여, 잠깐 진정하시고 들어보세요. 아시잖아요.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걸.








작가란 무엇인가


내 글은 늘 돈이 됐다고 어그로를 좀 끌었지만, 실은 돈이 되는 글만 썼다는 표현이 적확하다. 말 그대로 글을 써서 밥 벌어먹고사는, 소위 글밥 먹는 사람이란 것이다. 게다가 어쩌다 보니 17년 차가 되었다. 그럼에도, 직업이 뭐냐는 질문은 여전히 나를 곤란하게 만든다.  



글 쓰는 일 하는 사람은 작가죠.
vs
글만 쓸 줄 알면 개나 소나 다 작가냐?



이 두 문장, 정확히는 각 문장에서 작가라는 단어가 내포하는 의미가 끊임없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사이에 오랜 세월 서 있다. 덩치 큰 두 마리 고래 사이, 등 굽은 새우처럼. 기분상으로는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포(脯)가 되었다.


일단 공식적인 내 직업은 프리랜서 작가다. 방송, 유튜브, 광고, 매거진, 행사 대본, 캠페인, 작사 등등 온·오프라인 가릴 것 없이 텍스트 기반 콘텐츠는 웬만하면 다 만들어봤을 정도로 경력도 나쁘지 않게 쌓았다. '작가'라는 호칭은 첫 직장이 방송국이고, 구성 작가로 들어갔기에 절로 따라붙었다. 업계 이직 후 직장인이 됐을 때 잠시 직함에 밀렸다가 퇴사 후 프리랜서가 되고 다시 쓰게 됐다.


클라이언트가 뭐라고 부르면 되냐고 물을 때마다, '이젠 방송 작가도 아니고 예술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이 어딘가 거창한 호칭을 쓰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스쳐갔지만, 그렇다고 마땅한 게 떠오르지 않아서 "그냥 이름에 님자 붙이셔도 되고 정 애매하시면 작가님이라고 부르세요."라고 말했다. 호칭이 정리되자 상대방이 한결 편안해하고, 묘하게 정중해지는 느낌이 업무에도 도움이 됐다.


일적으로는, 그랬다.




작품도 책도 없지만, 어쨌든 작가입니다


글쓰기 작업실이라는 독특한 콘셉트의 공간을 운영하다 보니 종종 손님들이 어떻게 이런 공간을 열게 됐냐고 묻기도 한다. 보통은 그냥 글 쓰는 일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대답하는데, 대화의 흐름은 십중팔구 이렇게 흘러간다.



"우와, 작가님이시구나! 어떤 작품 쓰셨는지 여쭤봐도 돼요?"

"작품을 쓴 건 아니고, 그냥... 글 쓰는 일이라면 이것저것 해요."

"아? 아... 아?"



'작품도 없고 책도 안 썼는데 작가라고 부르는 게 맞나? 그런 게 아니면 무슨 글을 써서 어떻게 먹고 산다는 거지?'라는 의문이 손님의 동공에서 핀볼처럼 튀어 다니는 머쓱한 순간. 그럴 때면 '글쓰기 = 문학 = 작품, 책', '글 쓰는 사람 = 작가 = 예술가'라는 오류와 확증편향이 가득한 등식을 바로 잡아주고, 다양한 형식의 글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작가라는 용어의 엄청난 포괄성을 설명해야 하나 싶을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이렇게.

세상엔 수많은 콘텐츠가 있고, 모든 콘텐츠의 '최초의 형태'는 텍스트예요. 하물며 책, 글 등 '완성된 텍스트'도 초기 형태는 러프한 '미완의 텍스트'죠. 소위 글밥을 먹는다, 글을 쓴다는 사람들은 그 텍스트를 연장 삼아 나름의 방식으로 다루는 사람들이라고 보시면 돼요.

누구는 햇살을 내리게 만들고, 누구는 영혼을 위로하고, 누구는 우주를 구하고, 누구는 사람을 죽이고, 누구는 텍스트 그 자체를 파괴하는 실험을 하기도 해요. 이렇게 개인의 가치관, 호흡, 스킬, 스피드, 지구력 등등 모든 것을 활용해 저마다의 방식으로 텍스트를 다루고, 흥미로운 스토리를 창작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보통 (글)작가 또는 시인, 소설가라 부르죠.

한편, 누구는 속보 기사를 쓰고, 누구는 생활 정보 글을 쓰고, 누구는 상부에 올릴 보고서를 쓰고, 누구는 법적 공방을 위해 변론서를 쓰고, 누구는 세금 내라는 청구서를 쓰죠. 늘 뭔가를 쓰는 사람들이지만 작가라고 부르지 않아요. 글을 쓰는 일이 수많은 업무 중 하나일 뿐, 대표적인 직업명은 따로 있는 거죠. 기자, 블로거, 회사원, 변호사, 세무사, 교사... 등등 어떤 형태로든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은 없어요.

예술가로서의 작가와 글쓰기 능력을 기본 소양으로 갖춘 직업인, 그 둘을 구분하기는 어렵지 않죠?

그런데 말입니다, 그 둘이 각 분야에서 만들어내는 결과물 사이, 그 어디쯤에도 수많은 글이 있고 그걸 전문적으로 쓰는 사람들이 존재해요. '예술인으로서의 작가'가 아닌 활자를 다루는 기술이 있는 '기능인으로서의 작가'말이에요. 물론 그 둘을 무 자르듯 양분할 순 없어요. '기능인으로서의 작가'도 문학의 영역이 아닐 뿐 창작을 하니까요.

'기능인으로서의 작가'와 '직업인'은 누구든, 언제든 '예술인으로서의 작가'도 될 수 있어요. 순문학, 영화나 드라마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만을 작가로 생각하는 건 편협한 사고방식입니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습니다. 직장인이자 소설가, 강사이자 유튜버이자 실용서 작가, 소설가이자 시인, 주부이자 인플루언서이자 작가, 우리 주변에서 익히 볼 수 있잖아요.

결국 작가라는 건 그 사람이 과거에 무언가를 썼거나, 현재 쓰고 있다는 상태를 드러내는 단어예요.

아무튼 저는 예술의 울타리 밖, 텍스트를 필요로 하는 곳을 위해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어요. 잘 모르시겠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영역에서요.

내세울 작품도 없고 책 한 권 내지 않았지만, 어쨌든 저는 작가입니다.



작가인 나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나는 '3설'을 그다지 내켜하지 않는다. 설명과 설득과 설파. 내 밥벌이를 설명하는 일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길게 적은 설명을 보통은 높은 확률로 포기하고, 대신 보살 미소와 함께 "작품은 따로 준비 중이에요."라고 답하곤 한다.


예술 밖의 글을 대하는 사람들의 인식, 그 인식이 빚은 '상식이 없는' 업계, 그 업계에서 생존해야 하는 '기능인으로서의 작가'가 겪는 답답함과 곤궁함을, 나는 익히 잘 알고 있다. 설명. 설득. 설파를 하다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지게 되는 세계. 3설이 먹히지 않는 세계.


글쓰기 따위 개나 소나 할 수 있는 일인데 너는 뭐 특별하냐, 그까짓 거 두어 줄 끼적이면 되는 거 뭐 그리 오래 걸리냐, 재료비 드는 것도 아닌데 공짜로 해달라는 말이 쉬이 오가는 곳. 십몇년이 넘도록 오르지 않은 원고료, 연차 따위 페이에 반영되지 않는 세계. 그래서 기능인으로서의 작가를 점점 더 가난하게 만드는 세계. 아는 정도를 넘어 넌덜머리가 난다고 하면 공감하는 분들이 있을까.


이런 세계관 속에서 생존하는 동안 나는 지극히 주관적(?)인 결론을 내렸다.



기능인으로서의 작가로 살다가는 평생 부자는 못 되겠구나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난,

작가가 되고 싶다.



뭔 소리냐 싶겠지만, 기능인으로서의 작가가 아닌 예술인으로서의 작가로 살고 싶다는 뜻이다. 예술까지 갈 것도 없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면서 돈을 벌고 싶다는 얘기다. 내 글 = 수익이라는 등식을 세우고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싶단 뜻이다. 작가라는 감투는 있어도 없어도 좋으니, 저작권, 콘텐츠 IP, 인세, 조회수로 먹고살고 싶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또한 쉽지 않다는 걸 너무도 잘 안다. 훌륭한 작품을 쓰는 훌륭한 작가가 되는 건 나 같은 생계형 활자 기능사가 언급하기에 참으로 숭고한 사명의 영역이니 일단 넘어가자. 나는 레이먼드 카버가 아니다. 결국 중요한 포인트는 내가 쓰는 작품이 돈이 될 수 있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전에 돈이 될지 안 될지 모르는 그 작품을 쓰기 위해 당장 돈이 되는 글쓰기를 포기할 수 있냐는 것이다.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내 첫마디는 100% "글쎄요"일 것이다. 그리고 이내 뜨거운 물에 던져진 군소처럼 쪼그라들 것이다. 자신감이 없는 이유는 하나다. 돈 주는 사람 없어도 내가 쓰고 싶어서 쓴 글이 (간접적으로는 모르겠지만) 직접적으로 돈이 된 적이 여태껏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다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돈 받고 쓰는 글 말고, 내가 쓰고 싶어 쓰는 글은 돈이 될 수 있을까?'






고래 사이에 낀 새우포 상태의 내게 오늘 아침 날아온 알림은 참 반가웠다. 또 그만큼 허무했다. 나는 브런치에게 선택받지 못한 브런치 작가다. 생계를 위한 글쓰기를 잠시 내려놓고 이 장문의 글을 쓸 만큼 허무했다. 다시금 글 이사를 고민할 거다. 유튜브 채널도 만들 거다. 나는 이 일을 기억할 것입니다,를 길게 말하고 있는 셈이다.


보고 있나, 브런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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