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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웅 Dec 08. 2021

훈장과 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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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진한 여름, 이마 한가운데 골 깊은 흉이 졌다.


혼미한 균열을 틀어막고 한참을 달려 여덟 땀 꿰매고 들어온 집. 신발장에서 방까지, 고작 몇 초 남짓한 시간은 한없이 늘어진다. 말없이도 모든 걸 뚫어보는 엄마 앞에서 서른둘 철부지는 천왕문을 지나는 죄인에 다름없다. 까짓 거 문 밖의 삶을 사랑하는 아웃도어맨만 받을 수 있는 훈장 같은 거라고 번지수 틀린 넉살을 부리다 차갑게 굳은 표정에 이내 움찔한다.


이제 얼굴도 가물한 푸른 가운은 공허하게 선고했다. 흉터가 남을 거라고, 연고 잘 바르고 레이저 치료를 반복하면 조금 나아질 수도 있다고. "어쩐지 지금도 썩 맘에 드는걸?" 그대로 두기로 한다. 구형은 알 바 아니고 판결은 내 몫이니까.

 

이럴 거면 달밤에 성형외과를 찾을 필요가 없었다는 사실이 우습지만 적어도 해리포터 농담은 할 수 있다. 그게 외모의 집착에서 벗어난 체하기 위한 계산된 의연함인지, 발작적인 반골 기질의 발현인지는 중요치 않다. 논리와 이성을 그토록 숭배하지만 원래 인생은 잘못 빠진 고속도로 출구에서 마주한 생경한 풍경이자 모순의 집합이니까.


달력을 넘겨도 실수의 빈도는 좀처럼 줄지 않고 의도와 결과의 불일치에서 오는 너절한 괴리만 익숙해진다. 자연과 더 가까워지기 위함이라는 미명 아래 던진 플라이 훅은 냉수성 연어과 어류의 입을 사정없이 꿰뚫었다. 소중한 순간을 더 잘 담고 싶은 욕심에 산 핫셀블라드는 번거로움이라는 빛바랜 핑계 덕에 제습함에서 먼지만 쌓이다 병원 신세. 좀 더 높고 험한 곳에서 마음껏 질주하고 싶던 어린 시절 열망의 발로인 풀샥 MTB는 촬영용 소품이 된 지 오래다.


가끔 로캉탱이 실존의 부조리 앞에서 느끼던 구토감을 상상한다. 의도와 결과, 다변과 침묵, 진실과 거짓, 사랑과 욕망의 덧없는 경계에서.


원고 마감이라는 굴레에서 해방된 이후 어쩌면 의도적으로 외면했던 글쓰기가 모처럼 재미있다. 아 재밌자고 쓴 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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