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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게임을 찾으면 엄마는 체력을 기르자

게임 부작용을 겪은 아홉살의 솔직한 고백

무한의 계단

이제 아홉살 된 아이가 어디서 들었는지 '무한의 계단'이라는 게임을 하게 해달란다. 아이패드에 설치하고 두시간 정도 하게 했다. 비즈니스맨 모습을 한 캐릭터가 서류가방을 들고 끊임없이 내려오는 계단을 올라가는 아케이드 게임인데, 장애물도 피해야 하고, 아이템도 얻어야 하는가 보다. 레벨이 올라갈수록 계단 내려오는 속도가 점점 빨라져서 아이는 정신없이 키를 누른다. 그 후로 아이가 가끔 알아듣지 못하는 이야기를 하길래 유심히 들어보면 그 게임 이야기다. 게임을 하고 싶다는 우회적 표현이다 남자 아이들의 게임과의 전쟁, 벌써 시작된 것인가? 그래, 나도 어린 시절 테트리스에 한참 빠졌었으니까... 하고 싶으면 해봐야지 싶어서 한 사흘간 한 시간씩 하라고 허락 했었다.


무한의 계단과 수학 공부

얼마전 서점에 놀러갔는데 수학책을 사달란다. 하루에 2페이지씩 공부하기로 약속하고 사준 적이 있다. 차근차근 잘 풀던 아이가 실수가 많아졌다.

"수호야, 3번 문제 쉬운 것 같은데 왜 틀린거지?"

"엄마, 3번 푸는데, 자꾸 그 옆쪽에 5번이 보이는데, 5번은 3번보다 어려운 것 같고, 8번은 5번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눈이 자꾸 옆으로 가요."

고사리 손에 들린 연필은 3번을 풀고 있는데, 눈은 5번, 8번 문제에 미리가 있다. 쉴새없이 내려오는 계단의 장애물을 미리 살피듯 풀고있는 문제에 집중하지 않고 눈으로 다음 문제를 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수학책이 매끈한 아이패드가 되니, 아이는 멈춰서 깊이 생각하기 보다 흘러가는 화면위에서 얇은 생각을 빨리빨리 처리만 한다.


스크린과 서책

남자 아이들이 게임 때문에 학업에 지장을 많이 받는다. 이것은 단순히 게임에 시간을 많이 사용해서가 아니라, 게임에 필요한 뇌 사용 방식과 학습에 필요한 뇌 사용 방식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아이가 이 두 가지 모드를 필요에 따라 잘 전환할 수 있다면 게임 몇시간 쯤 하는 것은 큰일도 아니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일수록 이런 사고 모드의 전환을 선택적으로 하기 어렵다. 게임의 시간은 내가 조절할 수 없다. 나는 반응만 할뿐이다. 하지만 공부에서는 시간 흐름을 자신이 조절하고 주도해야한다. 눈동자가 활자위를 빠르게 지날 때와 멈춰서 생각해야할 때를 구분해야 한다. 영상과 게임에 많이 노출될 수록 학습에 필요한 시간의 완급을 조절하지 못한다. 스크린과 서책은 완전히 다른 방식의 뇌 사용을 요구한다. 이건 공부시간의 총량과는 다른 문제이다.

엄청난 창조성과 잠재력을 가진 우리 아이의 뇌를 기껏해야 일이백하는 스마트폰과 바꾸면 안된다.


엄마의 체력이 중요한 이유

아이에게 무한의 계단은 안 하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아이도 게임이 계속 생각나서 무섭다고 솔직하게 이야기 해주었다. 그래도 아직 어려서인지 눈에 안 보이면 안 찾는다.

그러고 보니 반납 지연으로 대출 정지가 된 동네 도서관에 안 간지 두어달이 되었더라. 이제는 해제가 되었겠지 싶어 다시 가보니 다행히 대출이 된다. 좀 더 부지런히 도서관도 같이 다니고, 자전거도 타러 다니고, 레고도 만들고, 같이 빵도 굽고, 종이접기도 하고, 날이 따뜻해지면 곤충도 잡으러(사러?) 다녀야겠다. 제일 중요한 것은 아이패드를 깊숙히 숨겨두어야 한다. 아이 앞에서 아이와 상관없는 스마트폰 사용은 하지 말자. 아이가 책을 볼 때 정신없이 진행되는 화면이 생각나지 않도록 해주자.

남아와 여아가 만든 레고는 시키지 않아도 장르가 다르다.


아이가  가면서 부모의 관찰이 없는 곳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진다. 미술학원에서 애니를 배우는 첫째는 학원에서 언니들이 욕을 한단다. 내가 없는 곳에서 무슨 영향을 받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우리 아이도 언젠가 게임도 하고 스마트폰도 사달라 하겠지. 하지만 아이가 스마트폰의 부정적인 영향에도 견디고 피할  있을때까지, 마음이 정돈되고 내면의 질서를 갖출 때까지 미루는 것이 좋겠다.

어떤 부모님은 뒤늦게 스마트폰을 사주면 더 중독이 된다고 하는데, 그것은 그때까지 아이가 자기조절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능력을 갖춘 아이는 일찍부터 스마트폰을 주어도 통제하며 사용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하지만 현실에선 그런 사례를 거의 못보았다. 스마트폰 사주는 시기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하고자 하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과업과 환경을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지금까지 눈으로만 지켜보는 게으른 양육을 했다면 이제 진짜 부지런을 떨어야 할 때인 가보다. 엄마들이여~ 아이가 게임을 찾을 때 인생에서 게임보다 더 즐거운 것이 많다는 것을 알려줍시다. 그려려면 우리 체력부터 길러야겠죠. 운동화 끈 동이고 밖으로 당장 나가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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