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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물리화, 기록 습관

공부보다 습관 3 - 미래의 시점에서 기록하라

  라스코나 알타미라 동굴벽화를 보면 인류는 문자가 없던 선사시대부터 기록을 남기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벽화에서 흔히 보이는 동물 그림은 당시 인류가 수렵의 성공과 풍요로운 삶을 기원했으며 동굴 벽에 새겨 오랫동안 남기고 싶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알타미라 동굴벽화. 이들이 기대한 미래는 뭐였을까? Shutterstock / EQRoy

  메모하고 기록하는 습관은 성공하는 인생의 필수요소로 이야기되곤 한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주머니에는 항상 작은 수첩과 펜이 있으니 너도 성공하려면 그렇게 따라 하라고 들으며 자랐다. 하버드나 예일대 졸업생 중 목표를 명확한 문장으로 기록해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사회적으로 월등하게 성공하고 부를 이루었다는 연구 결과는 자기계발서 단골 메뉴다. 성공한 사람들은 기록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길래 그렇게 열심히 기록한 것일까? 그리고 왜 자꾸 기록이 성공하는 삶과 상관있다고 회자되는 것일까?


기록의 의미. 생각을 물리적 현상으로 바꾸는 힘

  흰 종이 위에서 까만 글씨들이 생겨난다. '합격', '연봉 4000', '5kg 감량'. 플래너에는 다음 주 전공 수업 발표, 이달 말 취업 면접 준비 등 각종 to do list가 생겨난다. 교수님께서 강조하신 이론에 노란 형광펜이 지나간다. 기말시험에서 이 이론이 꼭 출제될 것 같아 별을 5개나 달았다.

  기록의 목적은 기록자의 현재 생각을 종이 위에 표현하여 미래에 실현시키는 것이다. 기록자는 임용시험에 합격해서 교단에 서 있길 원한다. 5kg을 감량하여 작아져 못 입던 옷들이 넉넉해지는 물리적 현상을 경험하길 원한다. 기말시험에서 별표 5개 이론이 나와서 일필휘지 하는 모습이 현실이 되길 원한다. 원하는 기업의 최종 면접에서 떨지 않고 자신감 있는 답변을 하길 원한다. 그러므로 기록이란 기록자의 생각을 물리적 현상을 만들기 위한 일이다.


  동굴벽에 조각까지 하며 들소 그림을 그렸던 구석기인들은 그림을 그리지 않은 이보다 짐승들 앞에서 자신 있게 돌화살을 던졌음에 틀림없다. 십수 년 전 가지고 다녔던 낡은 수첩을 들춰보았다. 대학교수가 되기 위해 연구나 논문 출판과 관련된 To do list들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처럼 기록이란 생각을 물리적 현상으로 바꾸기 위해 인류가 개발한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도구이다.


크리에이터의 '생각'은 종이 위에 '기록'된 후 비로소 콘텐츠로 '현실'이 된다. / Unsplash


  기록의 방법. 사용될 시점에 맞추어 기록하기

  학기 초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플래너나 노트를 준비하면서 열심히 기록한다. 실제로 학기 초엔 학생들이 열심히 필기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수첩이나 노트에 채우지 못한 빈 공간이 점점 생겨나면서 기록을 지속하지 못한다.

  기록은 정보의 습득과 활용의 시점을 메우는 일이다. 갑자기 떠오른 영감을 잡아채서 냅킨이든 뭐든 손에 잡히는 대로 그려서 활용하는 이제석은 광고 디자인 천재로 불린다. 이들은 현재와 미래를 잇는 일을 습관적으로 한다. 정보를 얻는 시점과 정보를 활용하는 시점의 간격*을 참지 못한다. 그들의 머리는 이미 정보가 필요해진 미래를 살아내고 있으며, 그들의 손은 얻은 정보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성공한 인사의 양복 주머니에서 나오는 작은 수첩의 깨알 같은 글씨는 바로 그 간격을 기록이라는 것으로 메꾸는 증거다. 그렇다면 기록의 방법은 기록이 사용될 미래의 시점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될  있는 형태로 만들어 두는 것이다.

  기록을 지속하지 못하는 이유는 현재 시점에서 편리한 방식으로 기록하기 때문이다. 기록의 목적은 활용이다. 그렇다면 그 미래에 사용될 시점에 기록한 내용이 잘 활용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강의 중 노트필기는 복습하거나 시험을 준비할 때 잘 활용될 수 있는 형태로 기록해야 한다. 그것이 종이로 된 노트인지 pdf 파일에 태블릿으로 필기할 것인지는 그 기준에 맞추어 결정할 수 있다. 단권화가 좋은지 분권화가 좋을지도 노트가 활용되는 시점을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 플래너에 계획을 빼곡하게 세우지만, 정작 플래너를 잘 안 열어본다. 저녁엔 해내지 못한 일들과 놓쳐버린 일들 때문에 기분이 썩 좋지 않다. 나도 가죽 커버로 된 묵직하고 비싼 유명 플래너를 구입해서 쓰긴 했지만, 무겁기도 하고 손에 들기도 애매한 사이즈라 휴대를 안 하게 되는 불상사가 생긴 적이 있다. 플래너는  때보다 찾아볼  쉽게 열려야 한다. 필요할 때 검색이 안 되는 정보는 의미 없다. 

플래너 활용성을 높이기 위해 디자인된 가방 ^^ / unsplash


  종이에 쓰는 것이 좋을지, 앱을 사용하는 것이 좋을지도 판단해야 한다. 좋은 양서를 읽고 독서노트를 쓸 때, 종이에 사각사각 써 내려가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느끼는 것이 목적인지, 이 내용을 나중에 다시 읽어보고 어딘가에 인용하는 것이 주목적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디지털 노트는 #태그를 입력해두면 오래된 노트라도 쉽게 검색되고 언제든지 접근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논문이나 책을 읽고 에버노트에 기록해 둔 것들은 여러 번 다시 찾아보면서 여러 군데 인용하게 된다. 종이 자료는 단기간 내 활용은 좋지만 오랜 시간 후에는 거의 활용되지 않는다.


기록의 실천. 자신만의 기록 시스템 만들기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타이핑을 할 것인지 핸드 라이팅을 할 것인지 신중하게 고민하는 것이 좋겠다. 연구에 의하면 TED 강연을 듣는 60여 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단순 정보를 암기해서 쓰는 것은 타이핑으로 필기한 집단이 점수가 높았고 정보를 분석하고 종합하여 정리하여 기술하는 문제의 경우 종이에 펜으로 쓴 집단의 점수가 높았다.

  서울대, 고려대, 포항공대를 동시에 합격한 학생은 자신의 공부 비결을 빠른 손이라고 하였다.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으면, 풀리는 문제들을 빨리 풀면서 손을 빠르게 움직여 생각의 흐름을 유연하게 만든 후 다시 문제를 대하면 관점이 달라져 풀 수 있게 된단다. 그를 관찰한 선생님은 그의 손을 한 곳에 머무는 법이 없는 바람과 같다고 표현하였다.**

  그렇다면 어떤 과목인지에 따라, 선생님의 강의 스타일, 시험문제 스타일에 따라 어떤 필기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지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손으로 적겠다거나 모든 것을 타이핑하겠다는 고집은 버리는 것이 좋다. 그 중간 단계로 태블릿에 펜슬로 핸드 라이팅 하는 방식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내용을 기록할 때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기록하는 것이 좋을지 나름의 기록 시스템을 구축해두는 것이 좋다. 그래야 기록을 지속할 수 있으며, 기록이 활용될 수 있으며, 기록이 보존될 수 있다. 선사시대 사람들이 동굴 밖이 아니라 동굴 안쪽 벽에 기록을 했다는 점은 나름의 기록 시스템이 구축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과 중에 생기는 일정은 구글 캘린더에 입력한다. 잠자기 전 캘린더의 내용 중 내일 일정을  플래너에 옮겨 적는다. 아침에 기상한 후 PC를 켜고 에버노트에 접속해서 글을 쓰고, 글이 완성되면 SNS에 올린다. 강의 준비, 보고서나 논문을 쓰는 반복적인 절차들은 Workflowy에 정리하면서 절차들을 다듬어 간다. 강의자료나 발표자료는 주제별로 폴더를 만들어 ppt로 작성한다. 시간 될 때 읽어야 할 웹사이트나 유튜브 영상들은 카톡 나와의 채팅방에 링크를 남겨 둔다. 설문조사라든지 일회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들은 사진을 찍어두거나 해서 처리하고 삭제해 버린다. 하버드 학생들이 썼다는 인생의 목표는 종이에 써서 책상 앞, 모니터 앞 등 자주 볼 수 있는 곳에 붙여둔다. 이 모든 것이 복잡하다면 그냥 단권화 전략을 쓰자. 두툼한 플래너 한 권에 다 처리하는 것이다. 아니면 Notion으로 디지털 단권화도 해보면 좋겠다.


생각 - 기록 - 현실

  수천억 원의 자산을 이룬 성공한 사업가는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시각화하여 포토샵으로 영화 포스터로 만들어서 회사에 붙여두었다고 한다. 물론 주인공은 자신이다. 그리고 자신이 얻고자 하는 부의 숫자를 모든 웹사이트 패스워드에 기록했다고 한다. 그리고 사이트에 로그인할 때마다 자신의 목표를 상기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매일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1 문장으로 만들어 100번씩 썼다고 한다. 그만의 무식하지만(?) 영리한 기록 시스템 때문에 그는 자신의 꿈을 매일 아침 100번 노트에서, 회사 벽에서, 웹사이트에 접속할 때마다 잊지 않았고 그것은 곧 현실이 되었다고 하였다.***

  이 분이 구석기시대에 태어났다면 분명 알타미라 동굴 그림의 원작자였을 것이다. 그는 기록의 의미와 힘을 알고 있다. 동굴벽과 회사벽이라는 차이만 있다. 현재 시점 그의 자산을 우리와 비교해보면 그는 우리의 수천억 배의 생산성을 발휘하고 있다. 그의 학력은 비록 대학 중퇴지만 독서량만은 어마어마하다. 읽고, 생각하고, 기록하는 일로 부를 얻었다.


말이 가진 힘을 매번 증폭시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글로 써 놓는 것이다...(중략) 나는 말의 힘을 믿는 사람이다. 한번 말을 하고 나면 잊기 전까지 그 힘이 사라지지 않음을 믿는다. 그리고 그 말에 힘을 부여하고 계속해서 그 힘이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 액자에 써서 걸어놓거나 그에 알맞은 이미지를 만들어 포스터로 제작하여 걸어놓는다. 내가 내 개인적인 새로운 목표나 회사의 새로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첫 번째로 하는 것이 바로 그런 일이다. 나는 매번 그런 방식으로 수많은 목표를 달성해왔다. 김승호(저) 생각의 비밀에서 발췌



참고문헌


*리더의 습관. 한근태 (EBS 클래스 e강연)

**행여 공부를 하려거든. 정경오 (주)양철북출판사

***생각의 비밀. 김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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