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시내 Feb 08. 2024

끝과 시작의 바다 (1)

다음 생은 고래로 태어나고 싶어

1.  

  얼마 전, 엄마가 말했다. 미국에서 바다 수영을 즐기던 이들이 몇이나 죽었다고. 지구 온난화로 바닷물 온도가 높아진 탓에 비브리오균이 급속도로 불어나 작은 상처에도 급성 패혈증을 일으켰기 때문이란다. 심하진 않았지만 어릴 때부터 아토피를 앓아온 탓에 몸 구석구석 작은 상처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었던 내가 생각나신 모양이었다. 그리곤 제법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을 덧붙였다.


"우리 딸, 바다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어떡하니?"  


그러게 말이다. 나는 바다를 참 좋아했다. 언제부턴가 한결같이 갈구하고 동경하는 곳. 알 수 없는 전생을 바다에서 보낸 건 아니었을까 싶을 만큼. 다음 생이 있다면 고래로 태어나 평생을 거칠 것 없이 바다를 누비며 살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스스로의 죽음을 고찰하고 고민하는 게 유행처럼 번져나갔던 때, 내 숨이 다 하고 나면 영원히 바다에 머물겠노라 마음먹었을 만큼 바다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언젠가는 그 어떤 좋다는 화장품으로도 충분히 채우지 못한 피부의 건조함이 혹, 바다에서 멀리 떨진 도시에 살아서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여기까지 이르니 정말 궁금한 거다. 나는 왜 바다를 이토록 좋아하게 됐을까. 무엇이 자꾸만 나를 바다로 이끄는 걸까. 위험의 순간에도 바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보통은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경험을 하면 무서워서 근처에도 못 간다는데 나는 그 경험 덕분에 오히려 바다에 대한 마음이 푸른색으로 더 짙어졌다. 


  이야기 나온 김에 잠시 그날을 떠올려보자면, 해외에 놀러 갔다가 수심이 5M 정도 되는 리조트 수영장에서 놀고 있을 때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수영을 꽤 하는 편이라 별 문제없었지만 너무 편하게 놀고 있었는지 '수영을 전혀 하지 못하는' 아빠가 얕은 풀인 줄 알고 말릴 새도 없이 깊은 물로 뛰어들었던 게 시작이었다. 


생존 본능이란 무엇인지. 수심이 예상보다 깊자 놀란 아빠는 나를 밟고(?) 물 밖으로 나갔지만 나는 그 반동 때문에 저 바닥까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갑작스럽게 빨려 들어가느라 충분히 들이쉬지 못한 탓에 부족한 숨을 느끼며 손짓 발짓을 했지만 물의 끝자락은 탄탈로스의 샘처럼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을 듯 닿지 않았다. 그렇지만 부서지는 햇살을 한껏 머금어 쉼 없이 일렁이는 수면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가라앉은 채 올려다봤던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다. 


숨이 차오르고 희미해지던 나의 일부를 느끼면서도 힘을 내어 물 위로 올라올 수 있었던 건 푸른 물결과 햇살이 보여준 숨 멎을 만큼 황홀한 장관 덕분이 아니었을까. 말 그대로 정말 잠시간 숨이 멎어 그나마 남은 숨을 머금고 헤엄칠 수 있었던 거다. 어쩌면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순간이겠으나 조금 웃기지만, 잠시나마 온전히 바다의 일부가 된 듯 해 절대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았다. 내가 언제나 꿈꾸던 순간. 마치 인어가 된 것만 같았다. 그래 맞다. 인어였다. 가장 처음, 태초에 인어가 있었다.



(2)에서 계속 →

작가의 이전글 운수 좋은 날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