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이는 어릴 때부터 말이 늦었다. 그리고 어린이집을 다니며 또 알게 되었다. 솔이는 말뿐만 아니라 소근육, 인지, 사회성 등 대근육을 제외한 모든 부분이 또래보다 늦다는 걸. 그래서 다섯 살에 어린이집을 보낼지, 유치원을 보낼지 정말 많이 고민했었다. 흔히들 어린이집은 보육 중심, 유치원은 교육 중심이기 때문에 느린 아이들은 어린이집이 더 맞다고들 하기에 더 망설였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유치원을 보내고 싶었다. 조금 더 다양한 규칙 속에서 솔이가 적응했으면 했고(학교에는 더 많은 규칙들이 있으니까), 유치원에서 더 많은 자극을 받길 바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느린 아이=어린이집, 이라는 무언의 공식을 깨고 싶었다. 조금 느린 친구들도 유치원에서 잘 적응할 수 있다고 믿었고, 지금도 그 믿음은 변함이 없다.
다섯 살에 처음 다니던 A유치원은 집에서 통학버스로 30분 이상 걸렸지만 큰 산을 끼고 있었고 규모도 제법 컸기에 (말은 느리지만) 활발한 우리 솔이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정 어린이집에서 너무 큰 규모의 유치원으로 옮겨서 솔이가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우리 솔이는 거기서도 잘해줬다. 잘한다는 것의 기준이 숫자로 등수를 매기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
여섯 살에도 당연히 A유치원을 계속 보낼 생각이었다. 그곳은 영어 중점반과 일반반이 있었는데 솔이는 일반반이었다. 영어 교육 때문에 그 유치원을 선택하는 엄마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나와 남편은 산을 끼고 있고 흙을 밟고 자랄 수 있다는 점이 맘에 들어서 선택한 유치원이었다. 영어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기에 여섯 살에도 일반반으로 진학할 예정이었는데 어느 날 유치원에서 걸려온 전화,
"원장 선생님께서 미리 알려드리라고 해서 전화드려요. 여섯 살 친구들은 일반 반인 친구들이 얼마 없어서 한 반 구성이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영어 중점반으로 진학하셔야 할 것 같아서 전화드렸어요."
이 전화를 받고 나는 미련 없이 A유치원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 내 아이의 학습권이 침해당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때의 A유치원에 서운한 마음은 지금도 잘 해소되지 않는다.) 그리고 근처 비슷한 유치원을 알아보다가 내 기준에 더 부합하는 B유치원을 찾았다. 숲 체험 중심에, 집에서도 훨씬 가깝고, 학습보다 놀이를 중요시하는 B유치원.
그리고 사실 유치원을 옮기는 과정에서, 특교자에 대해 알게 되었고 며칠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특교자 신청을 해서 집 근처 국공립 유치원으로 진학해야 하나 하는 고민. 며칠을 고민하다가 결국은 특교자 신청을 하지 않았다. 나는 다섯 살 솔이의 1년을 믿었었다. 솔이는 빠릿빠릿, 센스 있게 잘하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묵직하게, 아주 천천히, 은근하게 해내는 아이 었다. 나중에 솔이가 자라서 결국 일반 친구들과 함께 경쟁하고 연대해야 할 텐데, 그렇다면 일반 친구들이 많은 환경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결국은 특교자 신청을 하지 않고 일반 사립 유치원인 B유치원으로 옮겼다.
B유치원 첫 상담 시간에 선생님께, 솔이는 조금 느린 아이지만, 시간이 걸려도 해내는 아이이니, 옆에서 조금만 믿어주시고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시면 좋겠다고 부탁했었다.
B유치원은 A유치원 보다 학습량은 적었지만, 매일매일 바깥 놀이를 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한 학년 규모가 4~5반 정도로 솔이가 적응하기에 딱 좋았다. (전에 다니던 유치원은 13반까지 있었다.) 그리고 목공놀이, 숲 체험, 도서관에서 책 빌리기, 저금하기, 이야기 할머니와 책 읽기 등등 겉만 번지르르한 활동이 아닌 책임 있고 단단한 프로그램들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다행히 지금도 여전히 반에서 제일 느리고 조금 서투른 아이지만, 유치원 가는 걸 아주 좋아하는 귀염둥이로 자라고 있다. 그리고 매우 잘하고 있다. (내 기준엔)
일곱 살 가을을 보내고 있는 솔이는 요즘 여덟 살이 되면 학교에 간다는 것에 많이 설레는 것 같지만, 사실 나는 지금도 걱정이 한 무더기다. 이대로 특교자 신청을 하지 않고 입학할 생각인데 이게 맞는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가 한 가지 믿는 것은, 우리 솔이는 시간이 걸리지만 늘 그렇듯 해낼 것이다. 은근하게 잘할 것이다. 그래서 기다려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