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를 3월이 흐르고, 어느새 4월 중순 공개 수업날이 다가왔다. 한 달 전부터 공지된 공개 수업이라 이 날은 특별히 남편도 휴가를 냈다. 아들의 기관 생활 첫 수업을 마주하기 위해서라는 낭만적인 이유 100%라면 좋았겠지만, 사실은 아이 공개 수업을 보고 실망하고 주저앉을 나를 위로하기 위한 이유가 80% 이상이었을 것이다.
공개 수업날 아침, 아이에게
"이따 엄마 아빠가 갈 거야. 오늘 공개 수업 날이라고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지?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해!"라고 또 잔소리를 하고.
어쨌거나 시간이 흘러 아침 10시 30분, 나는 내 아이의 교실 앞에 서있다.
학부모들이 거의 모이자, 선생님은 교실 뒷문을 열어주셨다. 우르르 몰려 들어가 스물네 명의 자리 중에 내 아이 자리를 한눈에 찾았다. 아이에게 손을 흔들고, 우왕좌왕함도 잠시, 선생님의 짧은 인사말과 함께 수업이 시작되었다.
1학년 교실이라 그런지 보조 선생님 한 분이 교실 뒤에 서계셨다. 아무래도 담임선생님 한 분이 아이들 한 명, 한 명 살필 수 없기에 보조선생님께서 뒤의 아이들을 챙겨주시는 것 같았다.
공개 수업은 국어 과목이었고, 아직 4월이라 <자음> 수업을 하고 있었다. 수업은 꽤 알차고 흥미롭게 진행되었고, 선생님이 말씀하신 자음자를 각자 가지고 있는 자음 카드에서 찾아들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아이는 한글을 떼고 학교에 입학했기 때문에 당연히 자음 카드를 다 알고 있을 텐데, 그놈의 시지각이 발목을 잡았다.
그리 많지도 않은 카드 사이에서 자음 ㅌ을 찾으라는 선생님 말씀에, 헤매고 있는 나의 아들. 결국 지켜보시던 보조 선생님께서 아이 옆으로 가서 찾는 걸 도와주셨다. 다 알고 있는 걸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아이가 야속해서 나는 그만 교실을 나가 버렸다.
집에 그냥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는데 옆에서 남편이 나를 다잡았다.
"여보, 조금 느려서 자음 카드 좀 못 찾는 게 뭐 어때서. 그래도 자리에 앉아서 열심히 하려고 하고 있잖아. 그리고 솔이 한글 다 쓸 줄 알잖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왜 그렇게 예민하게 그래."
"아는 건데 저렇게 하는 게 싫단 말이야, "
"어떻게 우리 마음에 다 차겠어. 그래도 다른 남자애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기도 하는데 우리 애는 자리에 얌전히 잘 앉아있는데 뭘."
남편의 말에 다시 교실로 돌아가 살펴보니, 분주하고 정신없는 틈에서 아이는 자리에 잘 앉아 있었다. 손끝이 야무지지 못해 선생님의 지시사항을 100% 수행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 모두 한 명씩 앞으로 나와 간단한 발표를 했는데 우리 아이도 기죽지 않고 큰 소리로 웃으며 씩씩하게 발표를 하고 들어갔다.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내 기준이 너무 높은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느린 아이를 키운다는 방어막인지, 나는 아이가 아쉬운 소리 듣는 게 너무 싫다. 아쉬운 소리, 싫은 소리는 지금껏 병원에서, 센터에서 차고 넘치게 들었다. 그래도 지난 2년 동안 치료에 매진하며, 학교 갈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해서인지 그 아쉬운 소리가 지금도 너무 싫고 속상하다. 하지만 알고 있다. 그런 말을 듣지 않고는 발전할 수 없다는 것. 특히 우리 아이는 1부터 100까지 모두 하나씩 말을 해주고, 알려줘야 배우는 아이라서 선생님의 지적과 꾸중이 아이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거라는 것도 안다.
그래도 잘했으면 좋겠다. 걱정 없이 공개수업을 기다리고 손뼉 치는 학부모이고 싶다. 아이를 세상 제일 사랑하지만, 그래서 이런 마음을 갖는 게 미안하지만, 한 번쯤은 나도 그런 학부모이고 싶다.